[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위기는 어디에 있을까? 비트코인 캐시 하드포크의 여파가 수습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주요 암호화폐 시세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엄연히 말해 실체적 위기가 아니다. 진짜 위기는 시장의 교란에 있다.

최근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한국법인을 자처하는 바이낸스 코리아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대명사로 불리는 바이낸스가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업계가 들썩였으나, 현 상황으로는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낸스 코리아는 실제 바이낸스와 협약을 맺었다고 주장했으나, 증빙서류는 사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그림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교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암호화폐 광풍기를 지나 금융 당국 중심의 규제가 시작되는 한편, 암호화폐 상장(ICO) 업계는 심각하게 변질됐다. 지금도 주요 밋업에 참석하면 나이 지긋한 4050 세대가 많이 보이는데, 물론 이들도 암호화폐 시장에 관심이 많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밋업 종료 후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에어드랍 행사에서 코인이나 '주우려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ICO는 씨가 말랐고, 시장은 혼탁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직도 ICO를 매개로 폰지 사기 소식이 종종 들린다.

최근 트렌드를 보면, 블록체인의 탈 중앙화를 지향한다면서 중앙화의 화신인 암호화폐 거래소가 득세하는 장면도 괴이하다. 기술력도 의문이다. 현재 국내 거래소들은 자체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해외 기업인 암호화폐 지갑 빗고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즉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빗썸이나 업비트 등에서 거래를 해도 코인은 해외에 있는 빗고의 지갑에 저장되고 거래되는 방식이다. 이를 정상적인 거래소라고 계속 믿고 맏겨야 할까. 잊을 만 하면 터지는 해킹 소식도 불안하다.

▲ 국내 암호화폐, 블록체인 업계가 어렵다. 출처=갈무리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면서 전체 시장도 무너지고 있다. 신규 자금 유입이 차단되면서 전체 시장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으며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4대 거래소에만 집중된 규제는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 빅4 거래소들이 실명계좌만 운영하는 사이 중소 거래소들은 소위 벌집계좌를 '돌리며' 몸집을 키우고 있으며 이들 중소 거래소들은 과도한 상장 수수료, 인센티브를 받으며 배를 불리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최근에는 간편한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의 맹점을 파고들어 코인 상장을 위한 일회성 수단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아예 퓨어빗처럼 '먹튀'를 위해 존재하는 거래소까지 탄생했다. 한 때 업계를 뒤흔들었던 팝콘코인 등 석연치 않은 암호화폐 상장도 아직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았다. 최근에는 거래소를 통해 물의를 일으켰거나, 소위 다단계 업계에서 악명을 떨친 이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해 '놀라운 제2의 인생'을 누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는 한편 사건사고에 신음하는 가운데, 결국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규제 일변도의 압박은 피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 과거 미국의 금주법 파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1920년대 미국은 '술'을 공공의 적으로 상정한 소위 금주법을 단행했다. 여러 정치적 의도까지 뒤섞인 이 강압적인 법은 '건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의도로 시작됐으나 오히려 밀주들이 퍼지며 마피아 집단의 배만 불려주는 효과를 불러왔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도 금융감독원 중심의 규제 일변도가 아니라, 가능성은 살려두는 선에서 시장을 교란하는 '악마'들을 걷어내는 쪽에 집중되어야 한다. 현재의 무조건적인 규제 일변도 행간을 보면, 업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작정 '안된다'고만 강조하며 오히려 방치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마치 게임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어른이 다가와 "이건 하면 않되고, 저것도 하지 말아야 해'라고 말하고는 사라진 것 같다. 옳바른 가이드 라인이 있다면 재미있고 건전하게 게임을 즐겼을 아이가, 어른이 사라지고 무법의 상태가 된 게임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국내 P2P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P2P 업계는 금감원의 표적이 되는 등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 연체율은 6.60%로 급상승했다. 이디움 펀드의 경우 연체율이 100%에 이르는데, 과연 정상일까? 다행히 빅3인 테라펀딩과 피플펀드, 어니스트펀드의 연체율이 그나마 낮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기에는 시장의 흐름이 너무 불안하다.

역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금주법처럼 시장을 압박해 풍선효과로 부작용만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시장의 장점을 살려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닌, 가능성을 살리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