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2012년 구속된 아버지의 형사 공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가 운영했던 병원에서 의료장비를 가져갔다가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해 B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B경찰서를 관할하는 C지방경찰청은 A씨에 대한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2년 7월 출입기자들에게 ‘절도 피의자를 검거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언론사들은 A씨의 피의사실이 담긴 기사를 앞 다투어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A씨는 검찰에서 이 사건에 대한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당시 언론사들의 보도는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A씨는 언론사들이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C지방경찰청의 보도자료만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한 것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10개 언론사를 상대로 각 1,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1심 판단은 당시 C경찰청이 배포한 보도자료는 경찰이 절차에 따라 작성, 배포한 것이기 때문에 언론사들로서는 그 내용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기사 내용 역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므로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언론사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해당 보도자료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언론사들이 추가적인 취재를 할 것을 전제로 배포된 것인데, 각 언론사들은 추가적인 취재도 하지 않고 만연히 이를 보도한 과실이 있으므로, A씨에 대하여 각 15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언론은 신속한 보도도 하여야겠지만, 언론이 갖는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을 고려해 보았을 때 다른 사람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충분한 사실 확인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고의는 없지만,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언론사의 보도행위가 비록 형사적으로는 책임을 면할 수 있을지언정, 민사적인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그 동안 우리 법원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에 기대어 언론사에 허위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다면 그에게 출판물에 이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09조 제1항)가 성립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보도내용의 진위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기자에게는 따로 형사적인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대법원 1994. 4. 12. 선고 93도3535판결 참조). 그러나 원칙적으로 ‘고의’범에 대해서만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형사적인 관점과 달리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는 민사적인 관점에서는 보도에 있어 사실확인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자와 그 기자를 고용한 언론사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근본취지인 것입니다.

이에 따른다면, 현재 특종을 잡기 위한 신속 보도, 클릭수를 올리기 위한 선정성 대결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우리 언론의 보도관행에도 수정이 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혐의 없음 ‘불기소처분’의 가능성이 있는 사건, 비록 기소는 되었지만 항소 또는 상고의 여지를 남겨두어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자와 언론사는 주의를 해야 하고, 부득이 보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사자에게 사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기사에도 반영해 기자와 언론사가 사실 확인을 위한 취재 노력을 다하였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방론으로 수사기관이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관행에도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형법상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는 피의사실공표죄(제126조) 규정에 따라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지득(知得)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지난 20일 법제처장은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관련 공무원들이 함부로 이를 외부에 공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사·교정·치안 분야에서의 인권보호를 위한 행정규칙‘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보고도 했었죠. 더 이상 ’기레기‘소리를 듣지 않는, 신속하면서도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로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언론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