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대기업 협력 중소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공정경제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좋아졌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폐청산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기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다운 성과다.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후 원청 대기업 등 사업자와의 거래는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설문에 응답자의 68%가 ‘기존과 변화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개선됐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6.3%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 민주화 측면에서는 큰 그림을 잘 그렸으나 세부적인 각론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기대 이하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가운데, 전체 경제 상황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산업연구원은 11월 27일 2019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 6월 전망했던 3.0%에서 2.7%로 하향 조정하는 한편 내년 GDP 성장률을 2.6%로 계산했다.

가계부채는 1500조원을 넘겼고 제조업도 휘청이고 있다. 제조업 설비 가동률은 최근 70%까지 주저앉았고 전체 고용은 감소일로다. 통계청이 11월 27일 발표한 ‘광업·제조업 조사 잠정결과’를 보면 조선과 자동차 증 주력사업의 출하액이 전년 대비 각각 -24.7%, -1.8%로 밀린 가운데 종사자 10인 이상 사업체 수는 전년 대비 1.0% 늘어난 6만9790개에 그쳤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보수 야당은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는 한편 강력한 대정부 투쟁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청와대가 꺼낸 홍남기-김수현 2기 경제팀 카드의 ‘약발’을 두고도 이견이 갈리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1월 25일 경제상황에 대해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엄중한 상황인식을 밝히는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해 암담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으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역시 의문부호가 달린다.

경제 전반의 상황이 어려워지는 한편 앞으로 뚜렷한 반등 포인트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처방전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소통이라는 점도 밝히고 싶다.

올해 초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보수 야당의 지지자들도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북한이 평화를 위한 공조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강조하며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지만, 최소한 극한으로 치닫던 지난해를 고려하면 상황은 많이 낙관적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소통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오해와 불통을 기민하고, 빠르게 수습했다. 필요하다면 양 측을 오가며 직접 소통에 나서 오해를 불식시켰다. 평양을 방문해서는 현지 시민들을 만나 인사를 하는 등 나름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평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상정하고 진행 과정에서 불거지는 모든 불편한 감정들을 소통이라는 무기로 털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국민들은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보답했다.

경제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제조업은 파탄나고 국가 주요 경제 지표는 곤두박질치고 있으나 문재인 정부는 별다른 액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소득성장주도 정책의 효과를 두고 힘 있게 추진하는 것도 좋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다양한 의견을 일종의 적폐로만 몰아붙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소통의 부재다.

국가 정책에서 통수권자가 모든 것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소통 창구는 열려야 다양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고, 또 현실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7일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과 만나 “GDP나 경제성장률보다 국민의 삶의 질의 지표가 더 중요하며 사람 중심의 경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보 양보해 맞는 말이라고 해도, 지금 산업 현장에서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터트리는 사람들이 문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소통이 없으면 현실감각을 상실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