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9월 17일, 보스키가 체포된 지 약 2년 후인 1988년 9월, 밀켄은 자신을 기소한다는 연방 검찰의 통지를 받았다. 드렉셀은 이미 밀켄을 공격하는 정부의 협조자로 돌아섰다. 밀켄에 대한 기소는 시간 문제였다. 밀켄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정부는 1989년 3월, 밀켄과 그의 동생을 공갈, 증권사기, 우편 전신 사기 등 무려 98개 죄목으로 기소했다.

정부가 밀켄과 그의 동생에 대해 98가지의 죄목으로 기소했지만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SEC가 드렉셀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알려진 것들이며, 언론을 통해서도 이미 보도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공소장에는 새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부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일으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110페이지짜리 공소장 중 2페이지에 밀켄이 드렉셀에서 받은 보수가 적혀 있었다. 그가 드렉셀로부터 받은 보수가 1983년에 4571만달러, 1984년에 1억2380만달러, 1985년에 1억1353만달러, 1986년에 2억9477만달러, 1987년에 5억5000만달러였다. 사실 충격을 넘어 경악할 만한 금액이었다.

정부는 밀켄이 받은 놀랄 만한 보수를 전면에 공개함으로써 공소장의 다른 부분들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밀켄의 보수 자체만으로 그의 유죄를 증명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이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밀켄에 대한 기소는 월가에서 힘 깨나 쓰는 자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법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받은 보수 때문이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1987년에 밀켄이 받은 5억5000만달러의 보수는 아무리 탐욕의 시대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밀켄이 받은 엄청난 보수는 즉각적으로 수많은 비판을 불러왔다.

그러나 정부가 1980년대에 부자를 증오했던 일반 대중의 반감을 밀켄의 기소에 이용했던 전략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번 것이 범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는 밀켄이 그 어머어마한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에 대해서 일반 대중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밀켄이 많은 신흥 부자들이 허세를 부리며 거들먹거리는 것과는 달리 검소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1978년 캘리포니아로 이사 왔던 당시의 집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었다. 그의 검소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기 어려운 보수로 인해 그는 ‘탐욕의 시대’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물론 연방 검찰의 공소장 어디에도 밀켄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돈을 번 것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없었다. 단지 정부의 핵심적인 주장은 밀켄과 보스키가 불법적인 비밀 협약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년 6개월의 조사와 정부 측 협력자의 증언, 그리고 드렉셀까지 동원했지만 정부는 밀켄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밀켄은 정부의 기소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밀켄과 그의 화려한 변호사 군단은 즉각적으로 세기의 재판이 될 재판을 준비했다. 그러나 밀켄은 기소된 지 약 1년 후 그의 유죄를 인정했고, 영원히 무죄를 주장할 기회를 포기했다.

밀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부와의 싸움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1989년에 그와 그의 변호사들은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잃기 시작했다. 그해 연방 검찰은 드렉셀의 전 직원이었던 리사 존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승리했다. 그해 여름, 프린스톤/뉴포트 사건에서 드렉셀과 특정한 세금 거래를 한 행위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다. 배심이 존스와 같이 드렉셀의 직급이 낮은 직원의 행동에 대해서 유죄를 평결했고, 드렉셀과 지저분한 세금 거래를 한 프린스톤/뉴포트에 대해서도 유죄를 평결했다면 밀켄에 대해서는 어떻게 나오겠는가?

만약 밀켄이 재판에서 이겨서 무죄가 선고된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밀켄은 저축대부조합(S&L, Saving and Loan) 위기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었다. 밀켄은 S&L 위기와 관련한 책임 문제로 다시 기소될 가능성에 직면했다. 여러 주들에 의한 기소가 우려됐다. 헌법상 이중처벌 금지 조항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연방 정부에 의해 두 번 처벌되는 것은 막아 주지만, 주정부가 기소하는 것까지는 막아 주지 못한다. 정부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밀켄은 눈앞에 직면한 소송은 고사하고 잠재적인 소송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드디어 1989년 말경, 언론은 새로운 이야기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기존의 죄목에 추가해서 새로운 기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밀켄과 그의 변호사들은 무엇을 변호해야 하는지조차도 몰랐다. 1988년, 정부는 드렉셀에게 했던 것처럼 밀켄에게도 최후통첩을 했다. 검사는 밀켄이 6개의 죄목을 인정하고 6억달러를 지급한다면 새로운 기소는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대가로 정부는 동생인 로웰에 대한 모든 혐의를 내려놓을 것이며, 밀켄에 대해 어떠한 추가적인 기소도 하지 않을 것을 보장했다. 또한 검사는 법정에서 밀켄에 대한 형량 구형을 하지 않을 것이며, 형이 선고된 이후에도 정부 측에 협력하지 않아도 좋다고 약속했다. 지난 3년간 그를 괴롭혔던 조사로 결심이 약해진 밀켄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밀켄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왔고 그의 가슴은 찢어졌다. 정부의 딜은 마지막 기회를 제공했고, 그것은 시련의 끝이었다. 밀켄에게 동생 로웰의 면책은 중요했다. 정부 측에 협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은 추가적인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검사가 형량을 구형하지 않겠다는 의도는 밀켄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밀켄은 6가지 죄목에 대해 유죄 인정이 요구됐다. 다시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정부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전설은 이제 범죄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밀켄은 보스키와의 거래를 포함해서 6개의 죄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밀켄은 권력과 부, 그리고 미국 최강의 변호사 팀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를 파괴하고자 올인(All In)하는 정부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첫 번째 죄목은 밀켄, 보스키 그리고 머니매니저인 데이비드 솔로몬이 “일련의 불법적인 증권거래를 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공모 혐의였다.

두 번째 죄목은 이러한 공모와 관련해 주식을 파킹했다는 것이다. 이 죄목과 관련해서 밀켄은 보스키가 피시바흐 거래에서 허위로 신고하는 데 불법적으로 교사·방조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세 번째 죄목은 보스키 회사가 “골든 너깃(Golden Nugget)이 MCA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는 것을 시장이 알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MCA 주식을 매입하도록 불법적으로 “유인”했고, 드렉셀이 이 거래에서 보스키가 입을 수 있는 손실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죄목은 이러한 약속을 추가적으로 확인해 주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죄목은 밀켄이 솔로몬과 펀드의 주식 매각과 관련해서 수수료 보장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죄목은 솔로몬과 상호 거래를 하면서 솔로몬이 허위의 세금 신고를 하도록 불법적으로 “방조(Aiding And Assisting)”했다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죄목이 1980년대 금융의 제왕인 마이클 밀켄이 최고의 악당으로 비난받은 죄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