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이른바 ‘레몬법’이라고 불리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은 리콜 관련 결함 입증 책임을 국가기관이 아닌 제작사에 모두 전가하는 방향이다. 완성차 업계는 결함의 원인을 파악하고 시정 조치해야 하는 책임을 제작사에 돌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함으로부터 소비자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정부 당국의 책임을 제작사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전문가는 리콜 판단의 기준점을 명확히 하고 처벌 규정을 재검토하는 것을 선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순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장안은 정부가 결함조사에 착수한 경우 제작사가 결함 여부를 입증하는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점이다.

업계는 이러한 조항이 기존 법률체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형법의 관점에서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유죄로 추정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벗어난다는 의미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시정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한 리콜에 맞닥뜨릴 위험도 있다. 업계는 명확한 결함 여부 규명 없이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면 제조사와 소비자간 소송만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품사 부담 가중될 수도

논의 중인 개정안은 국내 제작사와 부품사들에만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염려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주요 연구시설과 생산시설 등이 해외에 있다. 결함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한 담당기관의 수사 및 조사 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실질적인 손해배상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또한 리콜은 국내 시장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글로벌 이슈 사항으로 파급 효과가 크다.

국내 리콜 사항이 미국 등 해당 국가의 판매 차량과 같을 경우 해당 국가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제조사 본국에서 리콜한 경우 해외 시장에서는 리콜 사안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더라도 리콜을 강제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국내의 과도한 제재는 불필요한 통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규제 강화가 해외메이커입장에서는 시장 진입 장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해외 메이커는 본국에 통상 이슈를 제기할 수 있다. 실제 한미 FTA 협상 시 미국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국내 안전, 환경 기준의 완화를 요구해 관철한 사례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만으로는 리콜 문제 해결 어려울 것

박 의원의 발의한 개정안에는 ‘제작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지체 없이 시정하지 아니하여 생명, 신체 및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입는 자가 있는 경우, 그 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을 책임진다’라는 규정도 추가됐다.

자동차 제조사는 최대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 배상책임을 진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관련 내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제작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도입 자체 정당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정권에서 논의 중인 개정안대로라면 제작사가 결함 없음을 입증하지 못한 경우,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 결함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작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게 된다.

제조사는 대규모 리콜, 형사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고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리콜 요건 명확화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법리상 체계 정당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민사법 영역의 손해배상책임 조항 자체가 공공의 안전을 다루는 행정법인 자동차법에 삽입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리콜에 대한 기준부터 확실히 잡아야

제작사와 국가기관 상호 협의로 초기부터 리콜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제작사가 결함 관련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거나, 늑장 리콜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리콜 요건의 대상과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점에 있다. 또 규제 당국은 피해가 커지고 나서야 개입해야 한다는 구조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리콜 요건을 더 명확히 하는 것 물론, 초기 단계부터 규제 당국이 개입해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기반으로 제작사와 국가기관이 상호 협의하여 조기에 리콜 검토가 이뤄지도록 하는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함으로 인해 사망이나 상해가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건수가 일정 비율을 초과하거나 무상수리한 부품의 결함 건수가 일정 비율을 넘는 등의 상세 요건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명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개정안 중에는 합리적인 시정 요건은 형성하지 않고 제작사에 대한 제재나 부담만 가중하고 있다”며 “리콜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어려운 것은 물론 제작사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등 입법 체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