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로펌에서는 이번 저희 회장님 논란도 일단 재판에 가면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라고 하던데요. 언론이나 온라인 그리고 공중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그런 원칙은 지켜지지 않는 듯합니다. 유죄추정의 원칙이라고도 하던데요?”

[컨설턴트의 답변]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으로 프랑스의 권리선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대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반영되는 이런 원칙은 지난 수백년간 인권에 대한 인류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혐의를 받는 사람이 자기 결백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 유죄로 보고 처벌하는 ‘혐의형 제도’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유죄추정의 원칙이죠. 일종의 마녀사냥이라 알려져 있는 중세의 악습도 그와 관련된 것입니다.

“너는 마녀다!”며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이 행해지고, 마녀라는 혐의를 받는 자신이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뚜렷한 증거도 없어도 마녀로 처벌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야만적인 형사 제판 제도가 불과 200여년 전까지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시민 혁명에서 주창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제9조에서 “누구든지 범죄인으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라고 선언한 것이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의 시발입니다.

이 원칙을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도 기소된 ‘피고인’은 물론, 수사 기관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누구든지 그를 범죄자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저 단순히 수사 기관에 의해 혐의를 받고 있음에 불과하다 인식하고 대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오히려 무죄라고 적극 추정해 주어야 한다는 법조인들의 공감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멋진 원칙도 여론의 법정에서는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들의 노력에 의해 법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제도화되었다 하더라도, 인간 스스로에 의한 여론의 법정에서는 아직도 유죄추정의 원칙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여론의 법정의 비합리성이나 야만성, 무지함을 탓하기도 합니다. 여론의 법정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주자는 인류애적 호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기관리를 하는 위기관리 주체는 현실화되지 않는 이상적 원칙에만 기대어 위기를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여론의 법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효력을 발휘하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버리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원래부터 여론의 법정은 혐의를 가진 자나 기업이나 조직을 대상으로 유죄추정의 원칙을 계속 지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위기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의 법정에서의 전략과 그 이후 실제 법정에서의 전략을 달리 가져가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위기관리 명언으로 ‘법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항상 거실을 지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순서적으로 여론의 법정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거실은 곧 여론의 법정을 의미하는 표현이 되는 것이죠. 여론의 법정에서 승리하지 못한 위기관리 주체는 실제 법정에서도 승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일부 여론의 법정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위기관리 주체가 수년 후 실제 법정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문제나 피해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유일한 성공은 여론의 법정과 실제 법정에서의 순차적인 동시 승리뿐입니다. 여론의 원칙이 실제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듯, 실제 법정의 원칙 또한 여론에 의해 단순히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여론의 법정에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야 제대로 된 위기관리 전략이 수립 가능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