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EU 리더들은 이번 합의안이 현재로서 도출 가능한 유일한 합의안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터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메이 총리.   출처= A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유럽연합(EU)과 영국은 25일( 현지시간) 브뤼셀에서 EU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영국의 EU 탈퇴조건을 주로 다룬 브렉시트 협상을 공식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73년 EU에 가입한 영국은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 규정에 따라 내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게 된다. 역사상 첫 회원국 탈퇴라는 '아픈 경험’을 딛고 EU는 27개 회원국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다.

영국을 제외한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영국의 EU 탈퇴조건을 주로 다룬 브렉시트 합의문과, 브렉시트 이후 양측의 무역·안보협력·환경 등 미래관계에 관한 윤곽을 담은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공식 추인했다.

이어 27개국 정상들은 테리사 메이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1시간여 동안 브렉시트 다음 단계에 대해 논의했다. 이로써 EU와 영국은 브렉시트 합의에 대해 양측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아 이를 발효하는 비준절차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제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은 완전 해소된 것일까?

핵심 쟁점 브렉시트 이후로 미뤄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조건을 논의하는 협상이 25일 공식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갈 길은 험난하다. 당장 반발이 거센 양측 비준절차는 물론이고 향후 미래 무역관계 등 핵심쟁점 대부분에 대한 논의를 브렉시트 이후로 미뤘다는 점에서 오히려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상 첫 회원국 탈퇴'를 앞둔 EU는 영국을 시작으로 반(反)EU 움직임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것도 걱정 거리 중 하나다.

영국과 EU는 내년 3월 29일 브렉시트 이후 2년간의 전환기 동안 통상, 안보분야를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무역협정 외에도 향후 논의에서 불씨가 될 쟁점이 산재해 있다. 어업권, 영국령 지브롤터문제, 아일랜드 국경 하드 보더 등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이번 합의안과 정치적 선언에서는 '앞으로 논의한다'는 수준으로만 담겼다.

영국 가디언은 "양측이 브렉시트 합의와 함께 정치적 선언을 통해 '역사상 가장 쉬운 무역협상'을 약속했다"고 전하면서 "26페이지의 정치적 선언에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이 포함됐지만 구체적 계획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EU가 결코 영국에 특혜를 제안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라며 향후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합의안에 담긴 내용은

585페이지 분량의 브렉시트 합의문에 따르면, 영국은 내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더라도 오는 2020년 말까지 21개월간은 전환 기간으로 설정, 영국은 현행대로 EU의 제도와 규칙이 그대로 적용되지만 EU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양측은 전환기간에 무역과 경제협력, 안보 및 국방, 환경 문제 등 미래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협상하게 되며, 양측이 합의할 경우 전환기간을 최대 2년 연장할 수 있다.

또 영국은 EU 회원국 시절에 약속했던 재정 기여금을 수년간 납부해야 한다. 이른바 이혼 합의금으로 불리는 이 금액은 390억 파운드(57조3천억 원)'로 추산된 바 있다.

아울러 양측은 브렉시트 이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hard border, 국경 통과시 통관·통행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별도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영국 전체가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했다.

이 문제는 브렉시트 합의안의 최대 협상 난제였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섬 안에서 499㎞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275개의 도로를 통해 매일 3만명과 4만대의 차량이 현재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오간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에는 국경 검문과 세관 검색을 실시해야 하므로 하나의 경제권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영국과 EU가 상당 기간 영국이 EU의 관세 동맹에 그대로 머물기로 합의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당분간은 지금처럼 영국이 EU와 계속 무관세로 교역하고 EU 회원국에 적용되는 갖가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하드 브렉시트파는 "브렉시트를 원한 민의를 거스르고 주권 국가로서 독립성을 해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동맹에 머무르는 한 미국, 중국 등 제3국과 자율적인 무역협정을 맺을 수 없으므로 '주권 포기'라는 주장이다.

영국의 계산 차질

앞서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하고 이를 EU에 통보한 뒤 작년 6월부터 EU 측과 탈퇴를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당시 영국 경제는 그다지 밝은 편은 아니었다. 경제 쇠퇴를 겪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민을 줄이면 자신들의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언론들은 국민 투표가 단순히 EU에 대한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계급, 불평등,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도 부유한 이들은 잔류에 투표하고, 가난한 이들은 떠나는 것에 투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면은 젊은이들은 잔류를 선호했고, 나이 든 이들은 떠나는 것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가 세대 간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다.

당초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에 스위스나 노르웨이와 같이 단일시장에 참여하는 비회원국으로 남으려는 계산이었지만, EU는 추가 탈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영국의 단일시장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단기간 정치적-경제적 피해는 영국이 혼자서 고스란히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은 아무리 늦어도 2년 후 EU라는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이 자동적으로 차단되게 된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영국이 브렉시트 투표 당시 브렉시트의 피해를 영국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를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네 가지 시나리오

이번 합의안은 양측 의회에서 모두 비준을 받아야 효력이 생긴다. EU 의회는 비준할 가능성이 높지만 영국 의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관세동맹 잔류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아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만약 영국 의회가 합의안을 부결시키고 대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양측의 관계 설정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로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5일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문이 야당은 물론 여당인 보수당의 잔류파와 탈퇴파 모두에게 외면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계는 의회의 합의문 비준 실패 이후의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정확한 날짜는 공포되지 않았으나 관계자들의 전망에 따르면 영국 의회 표결 날짜는 오는 12월 10일 혹은 11일 경으로 예상된다.  

이날 하원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전개될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 합의문의 세부 조항을 수정한 개정안 상정, EU와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메이 총리의 후퇴와 조기 총선, 두 번째 국민투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