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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아무도 못한 일 하면? 아무도 몰라줘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11.27  17:35:05
   

전후반은 물론 연장전까지 혈투를 치르는 축구 선수들을 보면, 아주 가벼운 충돌이나 스침에도 필드에 드러눕는 선수들을 보게 된다. 격투기 종목에서 막판 라운드에서 한 점이라도 더 뺏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수들을 볼 때도 그렇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있다. ‘쟤들은 밥 먹고 저거 밖에 안 하면서 그걸 못 견디나?’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흔히들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들 한다. 딱히 꼬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몸에 열이 높을 때 입이나 코에서 나는 냄새로 체력적으로 무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상 생활에서는 쉬이 경험하기 힘들지만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거나 할 때 볼 수 있다.

우리 나라가 국토도 좁고 인구수도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거나 남북극점까지 돌파한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나가고 얼굴의 털이란 털에는 모조리 허연 고드름이 덕지덕지 붙은 가운데서도 정상에서 태극기를 자랑스레 펼치고 있는 모습을 가끔 접하게 된다. 그럴 때 또 많은 사람들은 ‘그냥 두꺼운 옷 입고 뚜벅뚜벅 가다 보면 에베레스트 오르는 거 아냐?’라고들 한다. ‘안 가서 그렇지 가면 못 갈까?’ 하는 사람도 있다.

 

‘밥 먹고 저것 밖에 안 하면서, 저 정도 밖에 못해????’

아마도 어떤 종목이라도 국가 대표로 뛰는 선수라면 보통의 일반인들보다는 체력이 월등할 것이다. 그런 선수들이 나가 떨어질 정도의 상황이라면 극한의 상황임에 틀림 없다. 그걸 애써 폄하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무식한 발언임에 틀림 없다. 북한산이라도 코스를 정해서 꾸준히 다녀봤기 때문에 북한산 836미터의 열 배가 넘는 8,848미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상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산은커녕 동네 뒷산조차 한번 가볼까 말까 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이 된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가을이 되면 대기업 대관 담당들은 속이 더 타 들어가기 시작한다. 가을엔 국정감사를 한다. 포퓰리즘에 막말이라도 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이 엄한 기업가들 불러다가 면박 주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그런 꼴불견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자주 이용된다. 뜬금없이 ‘사퇴하세요!’라고 언성을 높여서 개그보다 더한 웃음거리를 제공했던 예도 있듯,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들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이는 쇼가 펼쳐지는 시기다.

가끔 막걸리 잔도 나누곤 하는 친한 후배가 하나 있는데, 10월이 가까워지자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다. 각 업종별로 대표격 대기업 수장들이 주로 국감에 불려나가게 되는데, 후배 회사 회장도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대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의 능력은 그런 리스트에서 이름을 빼는 것으로 실력이 가늠되곤 한다. 물론 국내 10대 그룹 내에 끼게 되거나 재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기업이라면, 리스트에서 빠지는 것은 불가능이고, 대신 최대한 면을 살리는 쪽으로 전선을 펼치는 것이 방법이다.

“기업이 많이 성장했으니 한번 불려갈 때가 되기도 했지.”

“선배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규모로 보면 그럴 만도 하지만, 아직 준비가,,,,”

“하긴, 나가서 괜한 소리 듣게 되면 엄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

“그러게요. 그래서 보좌관이며 온갖 루트를 다 접촉 중입니다.”

“후배는 능력이 출중하니 잘 되겠지.”

“그런데, 빠지고 나면 그 공을 회사에서 알아주기나 할까요?”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살 떨리는 전쟁을 보통의 회사원들로서는 짐작도 힘들다. 말로 그 상황을 전달한다고는 해도 감을 전혀 잡을 수도 없다. 국정감사 자리에 한번 불려가는 게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판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리 조직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서 혼이 나거나 망신 당하는 사건’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바람일 뿐이다.

네트워크가 보통이 아닌 후배는 수완도 보통이 아니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이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을 듯도 보였다. 그런데 정작 걱정은 바라는 대로 일을 이루었을 때, 사 내에서 제대로 인정이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때야 임원들도 이런 저런 걱정부터 앞서겠지만, 빠진 뒤에는 흔적도 없이 그냥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 달쯤 뒤 후배는 저녁 자리에서 환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의 노력이 보람이 있어 어렵사리 리스트에서 빠지게 되어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예상한 대로 정작 리스트에서 빠지는 대단한 일을 했음에도, 그 공을 회사 내에서는 크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음을 섭섭해 했다.

“이쪽 생리를 모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그 바닥 사람들은 다 알아 주잖아.”

달리 위로 해 줄만한 말이 없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CEO가 TV 화면에서 대답을 못해 쩔쩔 매는 모습이 비춰지거나, 정치인들의 밥이 되거나 놀림감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미리 막은 것. 사실은 이쪽 계통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을 회사만 몰라줘

예전에 재계의 돈주머니라고 불리던 엄청난 회사가 있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글로벌 2위 회사를 인수하여 세계 1등으로 거듭나기 위해 야심을 불태우던 때가 있었다. 마침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취약해서 어찌어찌 그 자리로 내가 들어갔다. 물론 최고 경영진과 인터뷰까지 하면서 무려 5개월 기간 동안 테스트하고 또 테스트한 보수적인 회사였다. 창립 후 54년 동안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 없었던, 그야말로 괜찮은 회사였다. 당시 재계 서열이 22위였다.

이탈리아 하고도 밀라노에서 세계 각국의 언론을 상대하려는 부푼 꿈을 안고 이직 했지만, 출근한 날 그 꿈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 무섭고도 끔찍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날이었다. 조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리만브라더스 파산이라는 기사가 실렸고, 세계 여기 저기 엄청나게 투자를 해뒀던 그 회사는 그날 부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거의 대부분의 투자는 곧바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했다. 줄 돈은 쌓이는데 받아야 할 돈은 꽉 막혀버렸다. 재계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회사는 어느 틈엔가 한 푼이 아쉬운 회사로 전락했다. 국내 11개 금융기관들이 목을 조여왔고, 날마다 조이는 강도가 높아졌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이듬해 실적마저 추락했고, 사업보고서 공시를 앞두고서는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55년 만에 첫 적자인데, 그 규모가 수 천억 원이었다. 여론의 십자포화부터 피해야 했다. 자칫하면 가까스로 지펴오던 재기의 불씨가 여론에 의해 꺼져버릴 수도 있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매일 매일 살 떨리는 위기였다.

공시 수 개월 전부터 만날 수 있는 모든 기자들과 씨름을 미리 했다. 모두가 처음에는 화들짝 했지만, 입이 아프도록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나의 입장에 서서히 동조되어 갔다. 일주일 여 전부터는 긴장감에 정상 생활도 힘들 정도였다. 만났던 기자들 또 만나서 다졌고, 못 만났던 기자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기어이 만나서 이해시켰다.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밤인지 낮인지도 관심 없었다. 오로지 마지막 순간까지 내 플레이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날, 회사의 모든 임원들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여론은 힘들게 재무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회사에게 오히려 격려를 보내줬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제서야 나도 평소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라는 말 밖에 달리 쓸만한 말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우려한 대로 그 뒤에, 오히려 내부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그 큰일도 그냥 넘어 갔는데, 왜 이런 찌질한 것들이 자꾸 기사로 나오냐?’는 원망만 가득했다. 기적을 일구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기적처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뭐 고생은 좀 했겠지’라는 정도도 감사했다. 애당초 그 바닥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은 관심도 없고 기억도 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음에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일, 의외로 그런 일은 우리 주위에 종종 있다. 그렇게 심장에 한 겹 한 겹 굳은 살을 쌓아가면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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