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초고령 사회가 현실이 되며 사람들은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각광을 받고 있으나 현재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사실상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지금이라도 업계 활성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출처=보고서 갈무리

‘급성장’ 디지털 헬스케어 막는 규제는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디캠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공동으로 펴낸 ‘스타트업 코리아 디지털 헬스케어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헬스케어,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국내에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헬스케어 관련 규제로 인해 많은 서비스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시장이 점점 커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여전히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적법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할 만큼 여러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보고서는 미국과 국내의 사례를 들어 두 나라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차이를 보여준다. 간단한 모바일 앱으로 건강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원격진료, 디지털 헬스케어의 수혜를 받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원시적인 환경을 대비시켰다.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은 디지털 헬스케어가 주도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누적투자액 Top100에 국내 스타트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유가 뭘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성장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 높은 수준의 의료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인프라가 일상과 맞닿아 있어 최신기술을 헬스케어에 다양하게 접목할 수 있는 환경도 충분하다.

▲ 출처=보고서 갈무리

문제는 규제다. 보고서는 “규제는 스타트업이 헬스케어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헬스케어 전문 벤처캐피털이나 엑셀러레이터들은 투자 대상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적법성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정도”라면서 “실제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누적투자액 Top100 기업 중 63개는 국내에서 온전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누적투자액 기준으로 보면 그 비중은 약 75%로 더욱 증가한다. 이처럼 국내 규제환경은 새로운 헬스케어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는 크게 3가지다. 보고서는 사업에 제한을 받는 스타트업 중 44%는 의사-환자의 원격의료 금지로 인해, 24%는 소비자 직접의뢰(Direct-To-Consumer, 이하 DTC) 유전자검사 항목을 제한하는 규제로 인해 발목이 잡힌다. 마지막으로 7%는 데이터 관련 규제로 인해 진입이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원격의료 금지, DTC 유전자검사 항목 제한, 데이터 관련 규제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데이터 규제는 혁신 기반의 조성을 막는 원흉이다. 보고서는 “혁신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집된 헬스케어 데이터를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비식별화)로 가공해야 한다. 헬스케어 데이터는 비식별화 단계를 거쳐야지만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데이터를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헬스케어 데이터 간 연계(통합)도 되어야 한다. 이종 데이터의 통합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전자정보까지 연계된다면, 개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인프라도 비교적 잘 구비되어 있다는 평가다.

데이터 활용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데이터 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강력한 사전동의 규제를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한계점을 인지하고 2016년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나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비식별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해 비식별화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았다.

헬스케어 데이터 간 연결 및 통합이 미흡하다는 점도 꼽힌다. EMR 간 연계의 경우, 국내 의료기관의 EMR 구축률은 90%대로 높지만 의료기관 간 의료정보 교류율은 1%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EMR 구축률이 80%에 불과하지만 의료정보 교류율이 약 40%(2015년 기준)에 육박한다.

원격의료 규제도 문제다. 국내에서는 원격의료를 의료인 간 원격협진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맞춤형 질병예방을 막는 DTC 유전자항목 규제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2016년부터 DTC 유전자검사를 허용했다. 하지만 검사 가능 항목은 ‘포지티브 규제’ 34방식을 적용하여 탈모, 체질량 지수 등 질병과 연관성이 낮은 12개의 웰니스 항목으로 한정했다. 이외에도 매주 제한적인 서비스만 가능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 출처=보고서 갈무리

해결 방안은?

보고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제안을 했다.

의료정보 활용을 위한 비식별화 규제 명확화가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의료데이터는 민감한 정보인 만큼 철저한 보호 방안을 마련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개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면서 “의료정보의 정의에 개인 식별이 가능한 항목을 명시하고, 비식별화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선결 조건을 마련한 뒤에는 비식별화 정보의 활용 범위를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료정보보호법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처럼 의료데이터의 개인 식별을 금지하면서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보고서는 “의료데이터 거래를 악용하는 사례를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되어야 하며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주체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허용 범위의 점진적인 확대도 거론된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장점을 보다 적극 활용하고 원격의료를 통해 환자중심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제한하지 않도록 원격의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원격의료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대학병원 쏠림 현상’과 같은 사회적 쟁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규제와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고 봤다.

DTC 유전자검사 허용 항목 확대도 제시됐다.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웰니스 관련 항목은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 항목을 무분별하게 확대하기보다는, 과학적으로 유전자와 질병 발병의 연계성이 증명된 항목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혁신 의료기기의 승인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는 한편 규제기관의 전문인력 양성을 주장했다. 신의료기술평가에 유연한 접근을 보여주는 한편 인허가 기간 단축 등도 주장했다. 나아가 다양한 지원 정책과 성장의 기반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