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Says “김 팀장, 부탁한 제안서 언제까지 되는 건가요? 벌써 다음 주에 고객사 가서 제안 프레젠테이션해야 하는데 말이지….”

직장 생활의 시작은 마감으로 시작해 마감으로 끝이 난다.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스스로가 정한 마감에 의해 나름의 여유있는 생활을 만끽하고 있지만, 그래도 타인과의 약속한 마감은 늘 존재한다.

늘 마감에 시달리는 것은, 업종과 직무와 관계없이 모든 직장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칼럼을 작성하는 와중에도 마감을 독촉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맙소사.

직장 생활 속에서는 늘 마감신에 기대어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일을 미루기 십상이었다. 물론 그 일을 타인에게 미루지 않았다. 필자가 해야 하지만, 당장 하기 싫고 정해진 기간에 딱 맞추는 것을 즐겼다. 마치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 영웅과 같이 말이다.

그 영웅은 마감에 허덕이고 있는 필자를 늘 구해냈다. 마감의 힘을 빌려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리치는 힘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극적인 순간에는 늘 번뜩이는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늘 그런 상황을 즐겼다. 일부러 일을 미뤘고, 그 미루기를 통해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해 마감 직전에 분출하곤 했다. 그런 방법이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잘 통했다. 성과도 괜찮았고, 이상하게 일이 더 잘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효율보다는 효과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더욱 필자를 있어 보이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말로 하면 ‘있어빌리티’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객사에 강의를 가야 하는데, 강의 일정을 착각해서 그날 아침에 알게 됐던 것이다. 그래도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기초를 잡아놓은 강의안을 아침 기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처음부터 만들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약 2시간, 120페이지 정도를 만들어서 도착하자마자 4시간가량을 강의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인간의 위기대처력이란 말이다. 그렇게 마감신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신과 함께 한 지 20여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학생 때도 그렇고 직장인 때에도, 지금 나와서 혼자 생활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 마감신이 원망 또는 애석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닌 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일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오면 참 좋으련만, 정해진 시기와는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정확히는 정해진 마감보다 일찍 오거나, 메모 또는 기록할 수 없는 상황에 오는 곤란함 말이다.

그럼에도 늘 기다리고 기대하게 된다. ‘신 내림’ 말이다. 그 신은 우리가 고대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신의 도움에 의해 마감도 지키고, 마감을 통해 나온 여러 결과물의 질적인 면도 보장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감신이 매번 오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A4 3~5장 남짓한 칼럼 원고는 늘 필자를 괴롭힌다. 매주 1회 발행이라는 <이코노믹리뷰>와의 약속 때문이다. 물론 승낙은 필자가 먼저 했다. 1년을 미루다가, 이제는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한 지가 벌써 1년을 넘어가고 있다.

매주 ‘직장에서의 생존’이라는 큰 테마를 가지고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계속 고민한다. 운이 좋게 한 번에 생각이 정리되어 일필휘지로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 2~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계속 붙잡고 있다가 때로는 졸작이 또는 정말 필자다운 글이 나올 때도 있다.

1년을 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감신은 너무나 가끔 온다. 그래서 원망스럽다. 기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상하게 그 기한에 임박해야만 좋은 생각이 막 떠오른다. 그래서 늘 생각의 끈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래도 마감신을 기다리며, 늘 스스로에게 명분을 내세우면서 ‘미루기’를 거르지 않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 또는 목요일이면 칼럼을 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막상 쓰면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지만, 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 및 방법을 달리 하면서, 나름의 괜찮은 솔루션을 찾았다.

첫 번째는 마감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다. 약속은 타인과 한다. 다만 그 데드라인을 타인의 기준보다 조금 앞서서 필자가 정한다. 칼럼을 작성하는 것은 워드 파일, 이 파일을 게재일 하루 전에만 전달하면 다음날 페이지에 올라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그러면 중간에 오타 체크부터 시작해 관련된 다양한 변수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 미리 스탠바이해놓으면 위와 같은 ‘쫄림’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그래서 필자보다 타인을 배려해 조금 일찍 정해놓은 기한을 최대한 1차 데드라인으로 설정해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두 번째는, 미루는 것을 미루는 것이다. 마감의 여유로부터 오히려 탈출해 늘 관련된 생각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감에 직면했다고 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데 직접적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미루는 것을 미루게 됨으로써, 보다 여유 있는 업무처리가 가능해졌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제목 또는 주요 표현 등은 나중에 수정할 수 있지만, 1차 탈고 또는 완료를 미리 해서 더욱 나은 결과물을 위해 일하는 과정을 정비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일의 연속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것이다. 일이란 맺고 끝내는 것이 불명확한 것이다. 물론 전체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 있지만, 개인들의 업무는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멈춤’이라는 기능을 사용해 가끔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것이다. 내가 일을 해왔던 지금까지를 되돌아보고 현재 방향을 벗어나지 않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늘 다독인다. 늘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깨에 힘을 주는 듯한 모습을 최대한 제거한다. 힘이 들어간 만큼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타인과 함께 연결해 협력 구조 속에서 협업을 진행할 때, 주도적으로 일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것을 습관화했다. 다행히 독립한 이후에는 첫 번째 주도권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으려는 것과 일의 연속성 속에서 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100% 만족은 없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마감신을 믿지 않는 것이다. 신의 계시처럼 가끔 올 수 있다. 다만 그 신의 계시가 일정한 타이밍으로 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온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좋은 기억을 제외한 대부분 마감신의 등장은 극적이었지만,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아니었던 적이 많다. 단지 필자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위와 같은 노력으로 물론 그 나쁜(?) 버릇에서 지금은 탈출했다. 완전한 탈출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마감신으로부터 은혜를 받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더 노력 중이다. 스스로가 그 마감신을 언제든 불러올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 말이다. 필요할 때마다 꺼낼 수 있도록 스스로 정한 여러 마감 시한을 최대한 활용해 일을 미루지 않고, 미룬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정한 여유의 선을 넘지 않도록 다잡는 것이다.

마감신이란 결국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 마감신이 언제든 내려올 것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가 가진 ‘성실함’으로 그가 오든 오지 않든 간에 개인적으로 정한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그 실력이란 가끔씩 오는 마감신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책상에 앉아서 여러 생각을 글 또는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옮기고 있다. 그 꾸준함을 믿고 종기가 생기도록 앉아서 성실함을 키우는 것이다.

미룸이 꾸준함으로 대체될 때, 성실함이 곧 습관이 된다. 가끔은 그래서 효율이 효과를 능가하기도 한다. 효과적인 마감신에 기대어 고효율을 기대하지 말고, 평소에 잘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