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Deep Learning)을 이용하는 딥 가문(Deep Family)에는 재즈 작곡도 하는, 프린스턴 대학에 있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만든 딥재즈(DeepJazz)가 있다(참고 1). 하지만 재즈는 역시 즉흥연주가 제 맛이다. 짜릿한 라이브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필자의 지인인 재즈 피아니스트 최현우(호서대)에게 인공지능이 재즈 연주를 하게 되면 당신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는 그는 당장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이 사람만큼 재즈 연주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최원호(목원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상과 니체를 좋아하는 그는 인공지능은 절대 사람처럼 연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들이 자주 거론되고 이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대체되지 않을 직업들로 화가, 사진작가, 작가, 지휘자, 작곡가, 연주가, 무용가, 성악가, 예능강사 등의 예술 관련 직업들이 일순위로 등장한다. 유명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어쩐지 이는 거꾸로 보이는 조사결과라고 생각한다(참고 1). 인공지능 연주기계는 어떤 연주자보다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다. 일반인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어려운 곡들을, 엄청난 연습을 통해 뛰어난 기예와 예술적 감수성으로 연주해내는 훌륭한 인간 연주자들처럼 인공지능 연주기계가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현대의 연주 경향은 연주 중의 실수가 없어야 하고, 틀에서 벗어난 연주는 이단이 되는 것이 21세기의 클래식 음악계라고 한다. 그러한 연주에 대해 “혹시 알파고를 이기고 싶은 거예요?”라고 손열음은 질문한다.

사실 인공지능 기계는 정확한 연주 이상도 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빌헬름 켐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연주를 좋아하지만 글렌 굴드의 연주가 유명하고 그 외에도 많은 명반이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는 것은 연주자의 곡 해석이고 그 곡 해석은 건반을 두드리는 힘의 강약과 시간의 타이밍이다. 같은 연주자도 같은 곳을 똑같이 연주할 수 없지만 한 곡에 내내 강약과 타이밍으로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인공지능 기계가 충분한 연주곡 데이터로 학습하면 켐프나 굴드 스타일의 평균율 연주도 할 수 있다. 연주보다 훨씬 덜 감각적인 바하 풍이니 모차르트 풍의 편곡은 명료한 화성과 대위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이라고 치부되는 음악이라도 바하 풍이나 모차르트 풍으로 편곡하는 것이 예술일 수 없고 연주라는 특성도 있기는 하지만, 켐프나 굴드 스타일로 연주한다는 것으로도 예술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예술은 ‘새로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주는 물리적으로 그 순간 해석된다는 의미에서 항상 새로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재즈 연주는 연주 현장에서의 즉흥적 연주로 새로움이 강조되는 장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재즈 연주와 인간의 재즈 연주가 2017년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있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블라인드 진행 방식으로 곡을 8마디씩 교차로 연주하면서 관객들은 연주를 듣고 어느 곡이 인공지능이 연주한 것인지 투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인간이 연주한 재즈곡이 근소한 차이로 선택되었다. 관객들은 인공지능의 연주와 인간의 연주 사이에서 재즈다움을 구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짜여진 8마디가 아니고 즉흥연주였다면 어땠을까?

음악이 이성을 끌어들이려는 성적 충동의 발성에 기원한다거나, 언어의 자연스런 억양에 음악선율을 담았다거나, 흥분된 감정에서 나오는 음성에 기원이 있다거나, 집단노동에서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할 때 지르는 감탄사 ‘이영차 이영차’ 등의 리듬이 기원이라고 해도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2011년 캐나다 맥길 대학의 과학자들은 뇌영상장치들(PET나 fMRI)을 이용해 음악에 반응하는 뇌를 관찰했고 음악은 뇌에서 섹스나 마약처럼 도파민을 방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참고 2). 도파민이 음악의 진행에서 음정의 추상적인 기대의 어긋남과 충족으로 절정을 만든다. 인간 지능은 환경의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지능적이 된다. 이러한 인간 지능의 핵심인 패턴 발견은 음악에서의 순수한 음정의 추상적인 패턴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패턴의 발견은 알고 있는 패턴으로부터가 아니라면 패턴인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새로운 패턴이란 알고 있는 패턴과 알지 못하는 패턴 사이에 존재한다. 재즈 연주의 새로움은 그러한 새로움이다.

음악 연주는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동작의 예술이지만 현재 인공지능의 음악 연주는 아직 인간의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동작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장치는 충분한 개발비와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고 인공지능 음악 연주가 충분한 상업성이 있어야 한다. 아직은 아니라는 점에서 최원호의 의견에 공감하고, 결국은 될 거라는 점에서 최현우의 의견에 공감한다. 그렇게 인공지능 음악 연주가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되면 손열음의 의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연주보다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새로운 연주가 중요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래는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음악에서도 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강요한다.

참고 1. Deep Jazz, https://deepjazz.io/
참고 2. 손열음, “혹시 알파고를 이기고 싶은 거예요?”, [중앙선데이] 2016.04.03. https://news.joins.com/article/19828924.
참고 3. Salimpoor, Valorie N; Benovoy, Mitchel; Larcher, Kevin; Dagher, Alain; Zatorre, Robert J., "Anatomically distinct dopamine release during anticipation and experience of peak emotion to music", Nature Neuroscience; New York Vol. 14, Iss. 2, (Feb 2011): 25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