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국내 항공사들이 외형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조종사 인력 불균형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시아지역, 특히 중국 항공 수요가 늘어나면서 조종사가 대폭 유출됐다. 그런데 신생 항공사까지 들어설 전망까지 나오면서 조종 인력 부족 가속화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조종사 부족은 글로벌 문제다. 항공기 조종사 수요를 채우기 위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조종사 정년을 연장하는 등 앞다퉈 새로운 정책을 펴내고 있다. 국토부는 국제 항공 기준과 부기장과 기장의 인원 배분을 근거로 탄력적인 조종사 운용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 항공업계는 한시적으로라도 조종사 정년을 67세로 2년 늘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현실은 국적항공사(FSC) 60세, 저비용 항공사(LCC) 65세에서 멈춰있다. 복잡한 조종사 인력 유동 속에 이들의 정년은 다가오고 있다.

▲ 올해 1월 말 기준. 자료=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LCC 외형 확대와 부족한 항공인력

국내 항공여객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최근 5년간 국내 항공여객은 연간 성장률(CAGR) 9%를 유지해왔다. 2016년 연간 항공여객은 1억명을 넘어섰고 2017년에는 1억1000명에 근접하게 성장했다. 이런 성장의 상당 부분을 국내 LCC가 주도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저비용 항공사들의 운송여객수는 연 24%씩 성장하여 2017년 3800만명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국내 양대 FSC의 운송여객수는 연 3% 성장하는 데 머물렀다.

공급 측면 성장도 LCC가 두드러진다. 2008년 9대에 불과했던 국내 LCC의 운용항공기수는 2017년 말 6개 LCC 합산 121대까지 증가했다. 올해 말까지 총 24대의 항공기를 추가로 도입할 계획으로 현재 항공기수 대비 증가율이 20%에 달한다. 항공협정을 통해 확보된 신규노선의 LCC 배정이 증가하면서 저비용 항공사의 운항 노선수도 늘었다.

김종훈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저비용 항공사가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면서 “시장을 선도하는 LCC들은 폭넓은 잠재수요시장으로 주력 시장에서 30% 내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항공업계 성장의 발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승 NH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LCC의 여객 수송증가율은 FSC를 압도한다”면서 “향후 3년간 LCC 기재증가율을 보면 연 평균 16%에 이른다. 신기종 도입이 확대되면 LCC의 운항 영역은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의 이면에는 항공기 조종 인력 부족이 있다. 국토부가 전현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제주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서울, 에어인천 등 국내 저가항공사 7곳 중 항공기 1대당 조종사 수 정부 권고(항공기 1대당 12명=기장 6명+부기장 6명)를 준수한 항공사는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 이스타항공, 에어서울 등 5곳이다. 에어부산(10.4명)과 에어인천(11명)은 권고 수준에 못 미친다. 이는 최대 90명에 달하는 조종사 훈련생을 포함한 결과다. 훈련생은 기장이나 부기장 형태로 실제 조종에 투입될 수 없다. 훈련생을 제외한 실제 조종사로 계산하면 에어서울을 포함한 4곳이 권고 수준에 미달하는 조종사 인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해외로 이직한 조종사의 수는 지난 2014년 24명에서 2015년 92명, 2016년 100명, 지난해 145명으로 급증했다. 항공사별로 보면 ▲대한항공이 166명(42.2%)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아시아나항공 81명(20.6%) ▲진에어 42명(10.7%) ▲에어부산 41명(10.4%) ▲제주항공 29명(7.4%) ▲이스타항공 26명(6.6%) ▲티웨이항공 5명(1.3%) ▲에어서울 2명(0.5%) ▲에어인천 1명(0.3%)으로 조사됐다. 조종사들은 중국으로 가장 많이 이직했다. 중국으로 이직한 조종사 수는 전체의 85.5%인 3366명으로 집계됐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현재 기준에서 운항승무원 숫자는 부족하지 않지만, 채용시장 자체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장 수급 불균형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필요한 조종사 수요가 늘어나면서 글로벌 조종사 수요 3분의 1이 이 지역에 몰리고 있다. 이 지역으로 유출되는 인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조종인력 亂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최근 발표한 ‘조종사 및 항공 기술자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오는 2037년까지 향후 20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항공기 조종사가 26만1000명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 가운데 중국의 항공기 조종사 수요가 12만85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나머지는 대부분 정비 인력이다. 보잉의 추세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 여객 운송실적은 14%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이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인력이 집중되고 있다. 여객 수송실적의 성장률을 보면 북미지역은 4%, 유럽은 6%다.

중국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연봉과 업무 환경에 있다. 중국 항공사들의 연봉은 러시아나 브라질 등과 비교하면 4배 이상 차이난다. 여기에 중국 항공기가 취항하는 중동과 아시아에는 이착륙 환경이 다양하다 보니 중국 항공사 근무 경험을 지닌 기장은 업계에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크다.

국내 A 항공사 기장은 “조종인력 부족 문제는 글로벌 전역에 걸쳐 있는 시급한 과제다”라면서 “러시아에선 지난해 380여명에 이르는 조종 인력이 중국으로 이직했다. 미국 공군도 민간항공사로 옮기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동계 항공사는 고액 연봉에 65세 정년까지 보장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어 “중국과 가깝다 보니 한국에서 유출되는 인원 역시 상당하다”면서 “물론 승진의 한계를 느끼고 퇴사 후 리턴하는 인력도 생겨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조종사 여건이 마땅치 않아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의 말을 빌리자면 국내에서도 메이저 항공사에서 60세 정년을 맞은 조종사들이 65세까지 근무를 보장해주는 저비용 항공사로 옮겨가고 있다. 숙련된 저비용 항공사 부기장들은 메이저 항공사로 이직하고, 저비용 항공사는 메이저 항공사에서 오래 비행한 부기장을 데려다 기장으로 활동하는 등 이직을 종용하는 시스템이 됐다. 문제는 LCC로 이직한 퇴임을 앞둔 베테랑 조종사들의 정년이 임박해 있다는 점이다. 젊은 기장들이 굳이 LCC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 데다 고액 연봉을 주는 중국 인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신생 항공업체도 이르면 내년 들어설 예정이다. 국내 조종인력 숫자는 복잡하게 꼬여있다.

위기가 현실이 되자 미국은 무인조종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 유출을 막기 위한 상여금을 4만8000달러로 높였다. 상여금을 올린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항공사의 취항과 항공기 증가로 빚어진 조종사 구인난에 숨통을 틔우는 정책을 발표했다. 일본은 지난 2014년 64세인 조종사 연령 상한을 1~2년 연장했다. 대신 조종사의 승무시간을 80%로 완화했다. 건강과 체력 진단 항목을 늘리며 인력 부족을 대비하고 새로운 인력 충원까지 시간을 벌고 있다.

국내 상황은? 정년 연장 가능한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항공사들은 조종사의 정년을 65세에서 67세까지 2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근 신규 항공사 진입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조종사 인력이 더 필요해질 전망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조종사 인력은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다. 부기장을 기장으로 승진시키면 되지만 일정 조건이 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 B씨는 “기장의 운항수가 빡빡해 근무환경이 악화된 상황이다. 글로벌 형세까지 본다면 앞으로는 기장 요원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년을 늘릴 수 없다면 한시적으로 연장해야 한다. 기장 은퇴속도가 부기장의 기장 승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부기장은 최소 3년 6개월 3500시간, 4년 4000시간의 비행 경력이 있어야만 기장으로 채용할 수 있다. 부기장 인원이 기장이 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씨는 또 “비행기 1대를 도입하면 조종사 6세트(기장·부기장 각 1명씩을 1개 세트로 간주)가 필요하다”면서 “LCC 업계가 항공 성장세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조종인력 부족은 상당한 리스크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조종사 정년을 늘린다면 이에 따른 건강과 체력 관리 시스템을 추가로 도입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조종사들은 CPL과 ATPL 기준으로 40세까지는 1년마다, 그 이상은 6개월마다 한 번씩 메디컬 테스트를 받는다.

기장인 A씨도 “지금 상황에서 보면 60세 이후라도 운항승무원 관리체계는 글로벌에서 보편화 되고 있다”면서 “항공사에서 여러 테스트를 거치지만 정년이 지나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연장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60세 이상 조종사들은 정밀 메디컬 테스트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중국으로 조종 인력이 유출되는 이유 중 하나다. 한시적으로만 늘려 인력 유동성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한국은 ICAO에서 제시하는 65세 정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서 “국내 법규도 이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변했다. ICAO 기준 조종사는 65세까지 현역으로 일할 수 있다. 조종사는 60세까지 국제상업운송운항에 투입되는 비행기에 기장으로 활동하긴 어렵다. 다만 단독이 아닌 2명 이상의 60세 이하 조종사와 함께 운항한다면 65세 미만까지도 기장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이어 “기단 수가 늘더라도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부기장들이 계속해서 기장으로 승진하고 있는 데다 자칫하면 젊은 조종사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일본의 경우는 정년을 연장했지만 기준은 국내선만 운항하고 신체검사를 강화하는 방식이 도입됐다”면서 “일본은 비행기 운항을 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발생해 이러한 조처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기장과 부기장의 조종사 고용 불균형은 시급한 문제다”라면서 “현재 부기장급 인력이 넘쳐흐른다. 부기장급 경력을 많이 키워줄 필요가 있다. 5년 정도 미래를 내다본다면 기장의 정년 연장으로 수급 불균형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학계는 조종사 부족 현상을 막기 위해 항공교육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신입조종사 채용조건의 가장 핵심은 비행시간이다. 조건은 항공사별로 250~1000시간까지 다양하다. 국내 교육 시스템은 70~250시간을 조종한 뒤 비행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들이 민간항공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는 부가적으로 많은 비행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이 수반된다. 지난해 1700명의 조종사 중 400명의 운송용 조종 인력들이 배출됐다. 이 중 40%만이 조종사 활동을 하고 있다.

허 교수는 “정년을 늘린다면 ‘정년 보장’이 아닌 ‘정년 연장’의 개념으로 기장의 고용 계약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년 연장에 따른 메디컬 테스트를 강화하고, 정년 보장이 아닌 연장 개념으로 항공사 부담까지 완화한다면 제일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허 교수는 “한시적으로 정년을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면서도 “그러나 항공업계 노동조합과 마찰 문제로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