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OTT 강자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을 바탕으로 아시아 전역에 시장 장악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방송협회가 21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출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공정 계약과 시장 교란을 문제 삼았다. 업계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영향력 약화와 더불어, 넷플릭스의 공략이 가져올 후폭풍에 집중하고 있다.

▲ 넷플릭스의 국내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넷플릭스

한국방송협회 "소탐대실의 우 멈추라"
LG유플러스는 16일부터 IPTV를 통해 넷플릭스 콘텐츠를 제공하며 U+tv 이용 고객들은 국내 자체제작 넷플릭스 콘텐츠는 물론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 오리지널 시리즈와 해외 콘텐츠인 미드, 영드 일드, 영화, 다큐멘터리까지 IPTV 대형 화면에서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협회는 21일 성명서를 통해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의 협력에 우려를 보였다. 협회는 "두 회사의 협력은 우리나라 미디어산업 전반을 파괴하는 뇌관이 될 것이 자명하므로 현실적인 국내사업자 보호정책방안을 마련할 것을 정부 당국에 촉구한다"면서 "LG유플러스도 근시안적인 경영방식으로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고 관련 사업을 전면 철회하길 요청하는 바이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각 국에 진출하며 소위 '약한 고리'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회는 "(이런 방식으로 넷플릭스는) 불과 진출 몇 년 만에 EU VOD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며 사실상 독점 사업자로 등극했고 그 결과 유럽의 콘텐츠 시장은 초토화되고 있다"면서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넷플릭스의 진출을 구글 유튜브에 빗대어 표현했다. 유튜브가 불공정 경쟁으로 국내 동영상 시장을 장악한 사례를 들며 넷플릭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점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협회는 "유튜브는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 85.6%(2018년 상반기)를 차지하는 무서운 괴물"이라면서 "(이러한 성과는) 국내 사업자와는 달리 인터넷 실명제 등의 규제도 회피하고, 정당한 대가 없이 불법 저작물들을 마구 유통하고, 심지어 제휴 통신사로부터 캐시서버까지 헐값으로 제공받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기회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넷플릭스도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다. 협회는 "망사용료와 캐시서버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넷플릭스는 플랫폼 수익의 최대 60%를 배분받는 국내 콘텐츠 사업자와 달리, 이번 제휴를 통해 수익의 대부분인 85%에서 90%까지의 배분 조건을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는 국내 사업자에 대한 단순 역차별을 넘어 국내 콘텐츠 제작재원으로 돌아가야 할 수익을 거대 글로벌 기업이 독점하게 되는 것으로, 결국 국내 미디어 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위협하는 불공정 행위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넷플릭스와 LG유플러스의 PIP 방식을 두고, 국내 사업자는 불가능한 현재의 상황을 개탄하기도 했다. 협회는 이를 두고 "역차별"이라는 표현을 썼다.

▲ 한국방송협회가 성명을 발표했다. 출처=한국방송협회

협회는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파괴될 수 밖에 없으며 콘텐츠 제작자들의 '줄 세우기'가 만연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공급망도 일견 매력적이지만 이는 거대한 자본을 미끼로 삼아 국내 콘텐츠 시장을 소위 하청업체로 만들려는 전략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협회는 마지막으로 "정부 당국에 촉구한다. 정부는 한시바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공정한 틀과 규칙을 마련하라. 그리고 국내 사업자들이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온 한류 콘텐츠와 국내 미디어 산업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보호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또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는 "플랫폼 사업자 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일시적 선택이 국내 문화 및 미디어 산업의 미래에 어떠한 비극적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직시하고, 소탐대실의 우를 당장 멈출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역차별 문제를 걷어내는 한편, 넷플릭스의 손을 '성급하게' 잡은 LG유플러스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가 만났다. 출처=LG유플러스

후폭풍 시작...치열한 격론 불가피
넷플릭스는 올해 3분기 매출 40억달러,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4억280만달러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신규 가입자도 696만명을 기록, 글로벌 가입자 수 1억2700만명을 돌파해 고무적이다.

문제는 성장 한계론이다. 당장 가입자 증가수가 예전만큼 높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3분기 신규 가입자 비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난히 큰 대목도 성장 한계론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는 현지 사업자들에 막혀 힘을 쓰지 못하는 곳도 있으며, 유럽에서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으나 당국의 규제에 직면한 것도 불안요소다.

경쟁자들도 몸을 풀고 있다. 전통의 경쟁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애플도 콘텐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디즈니는 내년 스트리밍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며 훌루의 영향력 확대도 눈길을 끈다. &T도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 6월 인수한 타임워너를 활용해 내년 4분기부터 서비스를 출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아시아 시장에 눈을 돌리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아직 10%도 되지 않는 점유율을 보이는 등 성장의 여백이 넓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시장은 한류 콘텐츠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최근 한국을 교두보로 하는 넷플릭스 콘텐츠 전략이 대거 발표된 행간이다.

국내 미디어 업계, 특히 지상파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중간광고 등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목에서 잡음이 커지고 있으며 직접수신율도 낮으며, 콘텐츠 존재감은 유료방송에 밀리는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플랫폼 경쟁력을 대거 상실한 지상파에게 엄청난 위기로 다가온다. 유료방송도 비슷하다. LG유플러스를 제외한 IPTV 사업자들은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가 성급하게 넷플릭스를 '끌어들여' 시장 질서를 혼탁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지상파가 넷플릭스 자체에 반감이 있다면, IPTV 사업자들은 케이블 인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려는 타이밍을 놓친 것에 안타까워하는 기류가 읽힌다.

▲ 넷플릭스의 국내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가 불공정 관행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문제며, 이는 한국방송협회의 지적이 옳다는 말이 나온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 줄 세우기에 나서는 장면도 고무적인 것은 아니다. 국내 콘텐츠 업계가 넷플릭스의 아시아 시장 하청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견 가능성이 있다. LG유플러스는 부정하고 있으나 콘텐츠 계약에 따른 수익 배분이 9:1 비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지상파가 초월적 지위를 무기로 지금까지 갑질을 자행했으며, 넷플릭스가 그 간극에 파고들어 업계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일리가 있다. 협회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공급망이 큰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국내에만 국한된 지상파 플랫폼보다 넷플릭스 플랫폼에 올라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콘텐츠 제작자들의 현재 상황 인식이다. 당분간 격론이 불가피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