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무너졌다. 사법신뢰도 깨졌다. 이른바 ‘양승태’ 코트가 저지른 ‘사법농단’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동안 사회적 존경을 받아오던 대법관 등 고위법관들은 줄줄이 수사를 받기 위해 포토라인에 섰고, 법원 내부에서조차 비리에 연루된 법관은 혐의가 밝혀지는 대로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앞으로도 이들을 공정하게 심판할 별도의 특별재판부가 필요한지, 사법농단에 의해 오판된 사건에 대해서는 재심이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남아 있지만, 어쨌든 이번 정권 들어 시작된 ‘사법적폐’ 척결의 노력은 그렇게 결실을 맺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의 ‘사법적폐’는 이뿐인가? 달리 표현해 만약 사법부가 이번 ‘사법농단’ 사태만 사법부의 역사에서 완벽히 도려낼 수 있다면, 땅에 떨어진 사법신뢰도 회복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법부로 다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요즘 판사들의 과로사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직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정확한 사인까지 알 수는 없지만, 불과 며칠 전에도 40대 초반의 고등법원 판사가 이유 없이 자택에서 돌연사하는 일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량을 이겨내지 못한 탓으로, 일선의 판사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 얼마나 살인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판사들은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무엇보다 공직자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사법정의가 이 정도라도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들 덕분이다.

문제는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 판사들이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변호사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른바 ‘전관예우’에 대한 제도적 규제와 제약이 늘어나면서 재조 법조인들도 섣불리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기보다는 조직 내에서 정년을 채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이상 같은 직업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해당 분야의 대가(大家)가 될 기회가 제공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날이 그날 같은 희망 없는 일상의 반복일지도 모를 일이다.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판사 역시 예외일 수는 없지만, 법원이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우리 국민의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을 생각해 본다면 판사의 매너리즘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매년 전국 변호사들의 의견을 모아 법관 평가를 하고 있지만, 몇 년간 연속해 최하위 평가를 받고도 여전히 조직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는 모습을 보면, 사법개혁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판결문 작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않는 조정을 강권하며, ‘알아서들 하세요, 저는 판결 못합니다’라며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판사(2016년 법관평가 문제 사례), 일흔이 넘은 당사자에게 ‘그렇게 사시니까 좋습니까?’라고 비아냥거리는 판사(2017년 법관평가 문제 사례)는 이미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권력삼아 국민을 피해자로 몰아가는 사법 ‘가해자’이지 않은가.

어디 그뿐이랴.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전관예우’, 10년째 정착하지 못하고 있으나, 정작 최대 수혜자인 로스쿨 교수들만이 완전무결한 제도라고 강변하는 ‘로스쿨’ 문제 등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도 보이지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법농단’이 ‘사법적폐’의 전부라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들 있다. 과연 ‘사법적폐’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