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부도가 임박한 그 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나.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1997년, 기자의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일터에서 가져오신 신문 1면에는 IMF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부모님께 물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아는 범위 안에서 나름 정성껏 설명을 해 주셨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외가 쪽 친척 어르신께서 운영하는 회사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모님은 그게 IMF 때문이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또는 IMF 사태로 일컬어지는 ‘그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6·25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20년 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부도’의 위기상황 한 가운데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영화에서 영화라는 미디어 특성을 살린 극적 전개는 거의 없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은 어떤 연출로 꾸미는 것 없이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동아시아의 신흥 개발 도상국가들에 투입된 막대한 달러 자본들은 일제히 미국으로 회수됐다. 이 국가들은 그간 유입된 해외 자본으로 개발에 대한 투자를 명목으로 많은 부채를 쌓았는데 외국 자본이 순식간에 철수하면서 그간 쌓인 어마어마한 부채들을 당장 갚아야 했지만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모두 외환 부족 위기를 겪었다. 이렇게 주변국들에게서 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그 여파가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누군가는 기회를 노렸고,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렸다. 출처= CJ엔터테인먼트

국내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차입(借入) 경영으로 방만한 운영을 해왔고, 이렇게 90년대 초반 경제성장으로 쌓은 외화(달러)들은 서서히 바닥이 났다. 달러 근간의 해외자본들이 급기야 우리나라에서도 손을 떼면서 외환보유고는 바닥나 40억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환율은 폭등해 원화 가치는 땅으로 떨어졌다. 위기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게 돈을 빌리는, 구제 금융을 요청한다. 이렇게 당시에 실제 일어난 사실만 나열해도 이렇게 영화 같은 시나리오가 또 없다.  

영화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을 대거 도산시키는 구조조정으로 알짜 기업들을 헐값에 ‘먹으려는’ 미국 투기세력과 IMF의 결탁, 국가 재난상황을 알면서도 숨겨가면서 ‘대기업 길들이기’의 새 판을 짜는 정치권, 우리 경제에 대한 IMF의 과잉간섭을 우려해 구제 금융요청을 막으려는 이들, 폭등하는 달러와 폭락하는 부동산에 대한 투기로 엄청난 돈을 번 졸부들, 부채를 갚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소기업 사장들 등 다양한 관점의 시선으로 당시의 상황을 해석한다. 상상력은 없다. 영화는 가상의 인물들을 상정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수없이 많이 있었다.   

나라가 망해가는 기로에서 누군가는 기회를 이용해 축배를 들었고 누군가는 가족들과 직원들을 지키지 못하는 상실감과 무기력감에 피눈물을 흘렸다. 영화는 이 대조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말미에서 또 한 번의 아주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에 모두 담겨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영화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의 대사 한 마디로 영화 <국가부도의 날> 리뷰를 마친다.  

“두 번 당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