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이 합의안 의회 승인, 노딜(No Deal) 브렉시트, EU와의 재협상,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묻는 제2의 국민투표 등 4가지 갈림길 앞에서 어디로 갈지 불분명하다.   출처= CigiOnline.org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영국은 지난 주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협상에 큰 진전을 이뤘지만, 자국내에서 의회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며 표류될 위기에 처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지난 주 영국 내각이 이 협상을 동의했다고 말했지만 의회의 반응은 달랐다. 지난주 테레사 총리와 EU간의 합의안은 갈 길이 여전히 멀다. 우선 당장 분열된 영국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 만약 의회 통과를 이끌어 낸다면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마침내 로드맵을 갖게 될 것이다.

도미니크 랍 브렉시트부 장관 등 각료 4명은 합의안에 반발하며 줄사퇴했다. 의회에서도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극심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를 지칭)에 격동의 날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메이 총리와 EU간 합의안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상당 기간 EU의 관세동맹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 핵심이다.

메이 총리는 의회에 출석해 "(의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더 큰 불확실성과 분열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합의안 통과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가 발언대에 선 3시간 내내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합의안 의회 승인, 노딜(No Deal) 브렉시트, EU와의 재협상,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묻는 제2의 국민투표 등 4가지 갈림길 앞에서 어디로 갈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가업들은 여전히 좌불안석이고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하고 있으며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에 빠졌다. CNN이 브렉시트 협상의 최대 쟁점, 그리고 협상 성사가 기업, 시장, 경제에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요약 보도했다.

최대 쟁점

브렉시트 합의안이 격렬한 논쟁을 부르는 이유는 최대 협상 난제였던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해결한 방식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섬 안에서 499㎞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275개의 도로를 통해 매일 3만명과 4만대의 차량이 현재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오간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에는 국경 검문과 세관 검색을 실시해야 하므로 하나의 경제권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영국과 EU는 상당 기간 영국이 EU의 관세 동맹에 그대로 머물기로 합의했다. 지금처럼 영국이 EU와 계속 무관세로 교역하고 EU 회원국에 적용되는 갖가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하드 브렉시트파는 "브렉시트를 원한 민의를 거스르고 주권 국가로서 독립성을 해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동맹에 머무르는 한 미국, 중국 등 제3국과 자율적인 무역협정을 맺을 수 없으므로 '주권 포기'라는 주장이다.

기업

영국과 유럽연합의 기업들은 혼란스러운 브렉시트 과정 속에 십 수 개월을 보냈다. 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써 새로운 무역 장벽이 생기는 시나리오다.

그 위험은 이번 합의안에서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기업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리테일 컨소시엄(British Retail Consortium, BRC)을 포함한 기업집단은 이번 잠재적 합의 소식을 환영했다.

BRC의 헬렌 디킨슨 대표는 "2019년 3월에 노딜 브렉시트라는 벼랑 끝으로 가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소비자들이 즉시 물가 인상에 직면하게 되고 많은 일상 제품들이 부족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제조 회사들도 이번 협상 합의 소식에 환호를 보냈다. 독일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 지멘스의 위르겐 마이어 영국 법인 대표는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협상 합의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안에는 영국 기업에 대한 대부분의 거래 규칙이 그대로 유지되는 일종의 과도 기간이 담겨 있다. 지난 주 발표된 양측의 공동 선언문은 금융 서비스 거래에서의 긴밀한 관계와, 교통과 에너지에 대한 광범위한 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번 합의안이 성사되지 못하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영국의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브렉시트 문제 담당 책임자인 앤드류 그레이는 "우리는 기업들에게 협상이 완전히 비준될 때까지는 협상안 통과와 노딜 브렉시티 두 상황 모두에 대한 대비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번 합의가 이혼 조건만을 다루고 있으며, 과도 기간 이후 영국과 영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간의 향후 무역 관계에 대해 그다지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은 이번 협상에서 “향후 상품 무역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협상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고만 언급했다.

▲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의회에 출석해 "(의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더 큰 불확실성과 분열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합의안 통과를 호소했다.   출처= DiversityUk.org

시장

영국의 파운드화는 2016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이후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면서 현재 투표 당시 보다 14%나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협상 합의안이 성사되면 파운드화는 다시 회복될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프랑스 소시에터 제너랄(Societe Generale) 은행의 키트 주키스 외환 전략가는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언론에서 보도된 합의안이 법적으로 통과된다면, 파운드와 유로화 모두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Berenberg bank)의 칼룸 피커링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합의안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두 단계에 걸쳐 상승하게 될 것”이며, 영국 국채 수익률과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주식도 동반 상승하는 이중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의회가 12월에 이번 합의안을 통과시킬 때 파운드화의 첫 번째 상승이 발생하고, 이듬해 투자자들이 영국에 대한 전망을 갱신할 때 두 번째 상승이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평가 회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만약 이번 합의안이 성사되지 못한 채 영국이 EU 블록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이른 바 노딜 브렉시트 상황이 발생하면 파운드화의 대(對)달러 가치가 15% 추가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

경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브렉시트 합의안 성사만이 곤경에 처한 영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렌버그의 피커링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잠재 성장에 대한 장기적인 위험은 여전히 크지만, 이번 합의안이 성사되면 적어도 과도 기간에는 영국 경제가 상당히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번 합의안이 성사되면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올해 1.3%에서 2019년에는 2%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경제는 브렉시트 투표 이후 불황에 빠지는 것은 겨우 모면했지만 급격히 둔화되었고 투자도 크게 줄어들었다. S&P는 최근,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 경제는 혼돈에 빠져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