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입니다. 이 스포츠에 경쟁만큼 가슴 뛰는 스토리 구조는 없습니다. 선수들의 경쟁, 지도자들의 경쟁, 팀들의 경쟁. 경쟁은 관중들의 흥미뿐 아니라 경쟁자간의 승부욕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에서 보면 스포츠의 경쟁은 정해진 것이 없는 비선형적 스토리텔링의 전형적인 구조입니다. 얼마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강의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기사에서 나타난 경쟁구도를 살펴봤습니다. 스토리의 인물구도에 비유하면 선수는 주인공, 감독은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이고 경쟁선수는 주인공의 적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주인공을 경쟁하게 하자, 선수 경쟁

“양의지-이재원 포수 전쟁 점입가경 ‘KS 마지막 누가 웃을까?’”, “닮은 듯 안 닮은 양의지와 이재원의 ‘절친 포수 시리즈’”, “‘승부 뛰어넘은 우정’ 포수 듀오 이재원-양의지의 KS 절친노트”, “‘화려한 도미’ 양의지와 ‘진흙투성이 가자미’ 이재원”

<스포츠서울>, <스포츠경향>, <스포츠월드>, <노컷뉴스>의 기사 헤드라인입니다. 모두 프로야구 2018 한국시리즈의 두산 베어스과 SK 와이번스의 포수 양의지와 이재원의 ‘안방마님 대결’을 경쟁구도로 잡고 쓴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은 두 선수의 2006년 입단 동기로 올 시즌 마치고 나란히 FA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는 내용, 두 선수의 커리어 비교, 경기 스타일의 차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 프로축구를 보면 <스포츠경향>에서는 올해 프로축구 최고의 젊은 피를 가리는 영플레이어상의 경쟁을 현대가의 경쟁구도로 “올 최고의 젊은 피 현대가(家)의 집안싸움”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잡았습니다. 울산 현대의 신형 엔진으로 불리는 한승규와 전북 현대의 젊은 수호신 송범근의 경쟁에 공통 모기업인 현대가(家)를 덧붙인 셈이죠.

 

# 조력자를 경쟁하게 하자, 감독 경쟁

“‘초지일관’ 김태형 VS ‘변화무쌍’ 힐만”, “‘형님’ 김태형 VS ‘친구’ 힐만… 외유내강 두 명장 대결”, “힐만 ‘불펜 휴식, 나쁘지 않아’ 김태형 ‘누가 유리? 이기는 팀’”

프로야구 2018 한국시리즈와 관련해 <중앙일보>, <국민일보>, <스포츠경향>이 내놓은 기사 헤드라인입니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과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Trey Hillman) 감독을 경쟁구도로 잡고 갖가지 기사를 쏟아냈죠. 두 감독의 경기 전략, 리더십, 스타일을 다뤘습니다. 심지어 우천으로 경기가 연기되자 이에 대한 심경도 어느 팀이 유리한지를 두 감독의 말을 인용해 경쟁구도로 삼았습니다.

두 감독을 경쟁구도로 잡은 헤드라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포츠한국>의 “‘어우두’인가 ‘매직힐만’인가”였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올해 포함해 한국시리즈를 4년째 치러 두 번 우승과 준우승 한 번을 했죠. 올해도 정규시즌 우승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해서 팬들은 ‘어차피 우승은 두산’이라는 의미로 ‘어우두’라 합니다. 재미있는 신조어죠. 물론 올해는 ‘매직힐만’의 마술이 더 강력했지만요.

 

# 팀을 경쟁하게 하자, 더비 경쟁

더비(Derby)란 경마 경기의 하나인데, 축구에서는 같은 지역이 연고지인 두 팀의 라이벌 경기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유명한 더비로는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와 맨체스터시티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맨체스터 더비’가 있습니다.

K리그에도 이 더비 경기가 많습니다. FC서울과 인천유나이티드의 ‘경인 더비’, FC서울과 서울E의 ‘서울 더비’, 전북과 전남의 ‘호남 더비’,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가 있습니다. 물론 K리그를 대표하는 더비로는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죠. 또 연고지 중심의 더비뿐 아니라 모기업이 같은 전북과 울산의 ‘현대가(家) 더비’와 전남과 포항의 ‘제철가(家) 더비’도 열기가 뜨겁습니다.

실업축구 리그인 내셔널리그에도 빼놓을 수 없는 더비가 있습니다. 바로 창원시청과 김해시청의 ‘불모산 더비’입니다. 불모산은 창원시와 김해시에 걸쳐있는 산으로 창원시청과 김해시청은 이 불모산에 있는 창원터널을 관통해야 경기장에 갈 수 있답니다. 축구에서 더비는 팀들의 경쟁구도를 만드는 탁월한 전략입니다. 라이벌 관계 두 팀을 이슈로 만들어 명승부를 펼친다면 팬들은 언제나 열광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