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에 검은색과 흰색의 세로 선들이 블록을 지어 꽂혀있다. 선들은 바닥에서 천정을 잇는 5m 길이 단위로 두 가지 무채색 톤의 그룹을 이루며 관람객의 시선 움직임을 덮치는 거대한 일렁임 혹은 몰입 공간 차원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기(氣), 칼날처럼 곧게 세워진 선(線), 촉각을 자극하는 지(紙)이며, 전체적 인상은 거대한 할큄의 흔적 같기도 하다.

 

우리가 보는 선은 화면 위에 안료로 그린 선이 아니라, 몇 겹의 한지와 판화용지를 벽면에 수직이 되게 5~6㎝ 깊이로 꽂고 세로로 이어서, 이 세로 선을 좌우 3㎝ 간격으로 반복시키면서 그 크기가 가로 6.8×세로5m에 이르게 만든 입체적인 선이다.

또한 이것은 쉽게 이해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막막한 상태의 신성(神聖)으로 미묘한 변화의 울림이 느껴지는 작품으로서 ‘벽’이기도 하다. 날을 세운 한지 ‘선’을 벽에 박는 이 혁신은 벽 전체가 거대한 화면으로 탄생하여 새로운 회화의 영역에 가담하게 한다.

 

이 회화는 표면 위에 질료가 만나는 회화에서 나아가, 작가(서양화가 송광익,송광익 작가,한지작가 송광익,한지추상화가 송광익,KOREA PAPER,宋光翼,지물(紙物),SONG KWANG IK,ARTIST SONG KWANG IK,ソン・グァンイック)가 행하는 오랜 시간의 노동이 벽 표면층 혹은 공간에 질료 변화를 만드는 다차원적 사건이며, 조각과 수공예, 회화의 경계 너머 영역에 위치한다.

 

벽 작업의 건너편에는 작가의 두 번째 혁신 ‘바닥에 뉘어서’가 있다. 바닥에서 20㎝정도 띄워서 뉘어놓은 가로 2.2×세로2.4m 크기의 작품인데, 가로2×세로4㎝ 정도의 백색 한지를 패널 표면 위에 일직선으로 세우고, 그 선을 무수하게 반복시키면서 한지의 끝이 자연스럽게 구겨진 평면이 되도록 한 작업이다. 무수히 많은 기원들을 모아놓은 서낭 마당의 상징처럼 보인다.

△글=정종구/봉산문화회관 전시기획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