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암호화폐 블록체인 업계가 자본시장 중심의 규제 당국 압박에 밀려 아까운 시간만 지나가는 사이, 글로벌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며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암호화폐 투기와 사기 등 다양한 문제도 진지하게 해결해야 하지만, 한국이 디지털 자산 강국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는 지난 16일 대정부 제언 '홍콩이 금융허브가 된 이유' 보고서를 발간했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배제한다는 전제로, 의미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는 보고서다.

▲ 홍콩섬 풍경.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글로벌 금융허브 홍콩 '한 때 우리가 원했던 이름'
홍콩의 면적은 서울의 1.8배, 제주도의 60%에 불과하지만 현재 글로벌 금융허브로 군림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가별 금융센터지수를 보면 홍콩은 당당히 3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 서울은 33위에 간신히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고, 지리적인 위치나 중국의 경제적인 위상 강화에 따른 주장도 많지만, 홍콩은 이미 1970 년대부터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도 상해를 능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은 어떻게 글로벌 금융의 중심이 됐을까? 홍콩의 공식어는 광동어지만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가 통용되고, 중국에 반환된 후 표준 중국어도 잘 활용된다. ICT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만 언어의 다양성은 무시할 수 없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지금의 금융허브 홍콩을 있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 출처=체인파트너스

여기에 효율적인 정부와 풍부한 정보, 그 외 역사적 우연이 겹치며 홍콩은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홍콩에서 개최된 ‘아시아 금융포럼’에서 도널드 창(Donald Tsang) 당시 행정수반은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시스템,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 낮은 세금, 자유로운 자본의 유출입 등이 홍콩 금융허브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역사적 변곡점이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말 아시아 경제개발에 본 궤도에 오르며 홍콩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졌고, 중국 등소평 당시 주석 주도로 중국의 개방형 경제개발이 시작되는 한편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운신의 폭이 좁았던 일본이 침묵했던 것도 홍콩의 비상에 영향을 미쳤다.

더 자세히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 금융연구원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홍콩이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가 된 이유는 안정된 환율, 외환거래의 자유, 다양한 영업기회, 유연한 노동시장, 낮은 세율, 효율적인 정부, 외국인이 살기 편한 환경이다.

당장 홍콩의 조세는 금융 및 투자를 유치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자와 배당, 양도에 대한 세금이 없다. 2006년부터는 상속 및 증여세를 폐지했으며 역외에서 실현된 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차별없는 조세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법인세율은 아시아 최저수준이다.

홍콩 정부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72년 무역거래, 무역 외 거래, 자본거래와 금 거래 등에 대해 모든 통화로 항상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외환관리제를 폐지했고 1974년에는 금수출입 규제를 없앴다. 1978년부터 외국은행들에게도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은행인가까지 허용했다.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후에도 홍콩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2003년 중국 기업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경제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고 2006년에는 중국 정부의 적격국내기관투자자(QDII, Qualified Domestic Institutional Investor) 제도 시행을 계기로 중국 자본을 더욱 유치했다. 2017년 7월부터는 10 조달러 규모의 중국 채권시장이 홍콩과 연결되는 채권통(债券通)도 시작됐다. 홍콩은 중국 자본의 해방구이자, 글로벌 시장의 자본이 모이는 금융허브로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홍콩의 성공은 사실 한국이 그 무엇보다 원했던 것이다. 홍콩은 가능했고, 한국은 불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도 중국과 미국, 일본의 간극에서 전략적 요충지의 활용에 나섰다면 홍콩이 가진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라는 별명은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미흡과 지나친 폐쇄주의, 그 외 많은 '실기'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는 평가다. 홍콩이 보여준 안정된 환율, 외환거래의 자유, 다양한 영업기회, 유연한 노동시장, 낮은 세율, 효율적인 정부, 외국인이 살기 편한 환경 중 한국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출처=체인파트너스

우리가 No.1 될 수 있었던 '디지털 자산'
아시아 실물 금융허브의 자리는 이미 홍콩이 차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파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아시아 금융허브의 위상은 홍콩에 빼앗겼지만 디지털 자산, 크립토 금융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기회는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때 한국의 원화(KRW)는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의 37%를 차지했다.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에서는 한국을 크립토 금융의 월스트리트로 표현했으며, 이는 유사 이례 처음있는 일이었다. 현재 코스피가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 출처=체인파트너스

지금은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이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6% 수준에 불과하다. 암호화폐 투기논란이 벌어지며 당국이 규제에 나서 시장 자체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1차 골든타임은 지났다.

흥미로운 대목은 기존 금융허브 홍콩의 발빠른 행보다. 홍콩 금융선물위원회(SFC, Securities and Futures Commission)가 최근 규제영역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암호화폐 거래소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펀드 운용사를 대상으로 라이선스(license)를 발급한다는 내용도 함께 발표하며 법제화에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소와 펀드를 합법의 틀으로 안겠다는 뜻이다.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를 넘어, 아시아의 크립토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보고서는 홍콩의 행보 중 암호화폐 펀드에 주목했다. 펀드는 쉽게 자금을 모으고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펀드의 태생과 의미, 나아가 한국의 미래애셋 성장사를 통해 그 파급효과를 설명하는 한편 자금 모금 측면에서 암호화폐 업계에 미칠 파급력을 조명했다. 보고서는 홍콩이 펀드라는 무기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크립토 펀드를 운용할 경우 디지털 자산 역사도 바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 출처=체인파트너스

"아직 늦지 않았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도 놓치고, 이제 크립토 허브의 기회도 놓친 한국에 '넥스트 스테이지'는 없을까. 홍콩의 2연승을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 마지막 일발역전의 기회는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다. 실업률은 최고치를 찍고 제조업 중심의 경제 환경은 줄줄이 파탄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한편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도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 가능성이 제기되며 위태롭다.

4차 산업혁명 중심의 체질 개선 시도가 이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야심차게 출범한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의미있는 존재감을 심어주지 못한 가운데 이와 관련된 역량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 대형 은행 UBS가 지난 2016년 발표한 4차 산업혁명 준비도, 세계경제포럼(WEF)의 2016년 네트워크 준비지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17 년 디지털 경쟁력 지수를 합산해 4 차 산업혁명에 대한 주요국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4차산업 경쟁력은 세계 19위 수준이다. 기술력도 경쟁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 출처=체인파트너스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영역에 여전히 집중하는 한편,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에도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후자가 바로 암호화폐, 디지털 자산이다.

한때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37%를 차지했던 원화 비중이 6% 선으로 주저 앉았으나, 이는 절망적인 후퇴는 아니라는 평가다. 국내 ICO(암호화폐 상장)도 최근 주춤하고 있으나 2014년부터 누계 ICO 모금액은 200억달러를 넘기는 등 기초체력이 탄탄하다.

▲ 출처=체인파트너스

보고서는 홍콩의 행보를 통해 한국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비교우위를 보이고 있는 크립토 허브를 매개로 삼아 디지털 자산 시장의 1인자를 노려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는 국내에 자금이 많이 몰리고 있고, 펀드 수요도 높다"면서 "이미 중심지가 될 잠재력이 높은 시장을 적극 밀어주는 편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