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SK이노베이션이 최근 폭스바겐사로부터 배터리 수주에 성공함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의 약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삼성SDI를 매섭게 추격함과 동시에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후발주자라는 이미지도 벗은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폭스바겐이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높게 평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과 삼성SDI보다 뒤처져 있었다고 평가받던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완성차 업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차전지 분리막 분야에서처럼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완제품에서도 세계적인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 공장. 출처=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주액 40조원 추정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수주를 받았는지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업계는 120GWh, 전기차 200만대 분량의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폭스바겐의 북미 수출용과 일부 유럽용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 수주로 SK이노베이션의 수주 잔액은 약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수주 잔액 1위인 LG화학의 70조~80조원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구체적인 액수와 수주량은 공개할 수 없지만 업계 추정치 정도로 보면 무방할 것”이라면서 “폭스바겐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제조 능력을 인정한 만큼 추후 계획에 따라 물량을 공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북미 수출 전기차용 배터리는 미국과 유럽 공장에서 생산돼 공급될 예정이다. 미국에는 공장을 짓기 위해 최종 후보지 3~4곳을 두고 검토 중이고 유럽에서도 헝가리를 포함해 신규 공장 후보지를 검토 중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서산 공장을 4.7GWh(기가와트시) 규모로 만들기 위한 공장 증설을 시작했고, 해외 공장인 중국 창저우와 헝가리 코마론에 각각 7.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전망대로 배터리 공장 증설과 신설이 완료되면 SK이노베이션은 총 19.7GWh 규모의 생산량을 2020년까지 달성할 수 있게 된다.

120GW로 알려진 이번 폭스바겐 수주 물량을 20GWh의 생산규모로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 SK이노베이션은 추가 공장 증설계획도 검토 중인 만큼 감당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현재 알려진 배터리 공장 증설, 신설에 더해 미국 공장 신설이 추가되면 폭스바겐 수주 물량 충당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기존 공장 증설 규모도 상황에 따라서는 더 크게 할 수 있는 여력도 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이 11월 16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진행한 서산 배터리 공장 탐방에서는 좀 더 공격적인 배터리 생산 라인 증설 계획이 나왔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완성차업체가 대량생산을 위한 전기차용 플랫폼을 개발해 급격하게 수주가 증가함에 따라 2022년까지 55GWh로 생산능력을 확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생산 설비 현황. 출처=SK이노베이션

 

▲ 폭스바겐 MEB 툴킷. 출처=키움증권

SK이노베이션, 폭스바겐 MEB 프로젝트의 주축이 되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배터리 수주로 인해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 프로젝트인 MEB(Modular Electric Drive) 프로젝트의 파트너가 됐다. MEB는 전기차 플랫폼 중 하나다. 특히 폭스바겐은 로드맵E(Roadmap E)에 기반해 2025년까지 전기차 300만대를 생산해 1위에 오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순수 전기차(BEV) 50종을 포함해 80개의 모델을 생산할 계획이다. 로드맵E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MEB 플랫폼으로 2020년부터 2028년까지 64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2025년에는 연간 150GWh 용량의 배터리가 필요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처럼 배터리 수요가 늘어나는 폭스바겐의 상황이 이번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급사 선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폭스바겐은 MEB프로젝트의 첫 번째 파트너로 한국의 LG화학, 삼성SDI, 중국의 CATL을 택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용량의 배터리가 폭스바겐의 첫 번째 파트너사에서 공급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LG화학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MEB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된 것은 맞지만 구체적 액수는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의 CATL 선정은 중국 판매 전기차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것으로 보여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실상 LG화학과 삼성SDI의 독무대라고 보는 해석이 업계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번 SK이노베이션의 가세로 폭스바겐의 MEB프로젝트에서 중국 외 지역에서는 한국 업체의 3파전이 시작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주 규모를 떠나서 SK이노베이션이 선두주자였던 LG화학과 삼성SDI와 당당하게 전기차 배터리에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했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배터리 수주는 이미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경쟁기업 대비 SK이노베이션이 기술적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실적 확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2022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이 판매로 현실화된다면 매출액은 6~7조원을 기록할 전망이고, 수익성 측면에서 SK이노베이션은 다임러향 전기차 배터리 판매가 본격화되는 2020년에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원재료 상승을 판가에 전가할 수 있도록 계약이 변경됐다는 점, 생산효율성 개선, 협상력 향상 등으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폭스바겐의 전기차 판매량은 240만대로 1위에 오를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조달량도 2016년 0.8GWh, 2020년 24GWh, 2025년 132GWh로 전망됐다.

▲ 2025년 업체별 전기차 판매량 예상치. 출처=SNE리서치, 키움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