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완다그룹이 매각을 결정한 원 비버리 힐스에 맞닿아 있는 알라젬 소유의 비버리 힐튼 호텔.    출처= LA Times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사 완다그룹이 캘리포니아 비벌리 힐스에 고가(高價) 개발 부지를 매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기업들이 미국 부동산을 떠나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부동산에 눈독을 들여온 중국 부동산 회사들이 지나친 부동산 매입으로 과부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부동산 회사 케인 인터내셔널(Cain International)과 알라젬 캐피털 그룹(Alagem Capital Group)이 공동 투자한 벤처 캐피털이 L.A의 8 에이커(약 1만 평) 부지를 매입하기로 합의했다고 케인의 조나단 골드스타인 최고경영자(CEO)가 15일 밝혔다. 매입 가격은 최소한 4억 2천만 달러(47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중개인들에 따르면 완다 그룹이 ‘원 비버리 힐스’(One Beverly Hills)라고 명명한 이 부지는 로스엔젤레스 최고 프리미엄 개발 지역 중 하나다. 이 부지가 위치해 있는 월셔 불르바드(Wilshire Boulevard) 지구는 고급 쇼핑가인 로데오 드라이브(Rodeo Drive)와 업무 단지인 센추리 시티(Century City)와 가까워 호텔과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한 최고 입지로 소문난 곳이다.

완다그룹은 중국의 부동산 매입 열풍이 불었던 지난 2014년에 비벌리 힐스에 있는 이 8에이커 지구를 4억 2천만 달러에 매입했다. 회사는 이 지역에 고급 주택과 부티크 호텔을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현지 노동조합과 하청업체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결국 올해 초에 이 부지를 매물로 내놓았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완다는 중국에 영화관과 부동산 외 여러 기업들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 그룹이다. 완다는 최근 몇 년 동안 현재 건설 중인 시카고의 93층 건물 비스타 타워(Vista Tower)의 지배 지분을 포함해 미국 부동산 지분 취득에 열을 올렸다.

완다는 또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강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지난 2016년 미국 영화 및 미디어 회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Legendary Entertainment)를 35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지만, 이후 미국 시장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서 AMC 엔터테인먼트 홀딩스(AMC Entertainment Holdings Inc)의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

한 때 앞다퉈 매입했던 미국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는 곳은 완다만이 아니다. 이름을 알 만한 다른 유명 중국 투자 기업들도, 부동산을 포함한 특정 유형의 해외 투자를 축소하라는 중국 정부의 압력에 따라 미국 자산 처분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외환 위기 이후 몇 년 동안, 수백억 달러를 미국 부동산에 쏟아 부으면서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Waldorf Astoria Hotel), 바카라 호텔(Baccarat Hotel) 같은 유명 부동산을 낚아챘다. 그러나 올해 2분기에 중국 투자자들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순매도를 기록했다. 데이터 회사인 리얼 캐피털 어낼리틱스(Real Capital Analytics)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매각 행진은 3분기에도 계속 이어졌다.

호텔 업계의 거물 베니 알라젬(Beny Alagem)으로 대표되는 알라젬 캐피털과 케인 인터내셔널은 이미 공동 합작으로 월도프 아스토리아 비버리힐스 호텔(Waldorf Astoria Beverly Hills Hotel)과 비버리 힐튼(Beverly Hilton) 등 두 개의 이웃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에 매입한 원 비버리 힐즈 부지가 비버리 힐튼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우편번호 90210이 부여되는 탐스러운 부지 17 에이커(2만 평)를 몽땅 보유하게 됐다.

케인의 골드스타인 CEO는 "우리는 상징적인 지역에서 상징적인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비버리 힐튼 호텔과 원 비버리 힐스 부지를 합한 총 1백만 평방피트(2만 8천평)가 넘는 공간을 개발하는 것은 일생 일대의 큰 기회”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부지 매입 계약이 이 달 안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에 완다가 이 부지를 매입하며 이 지역에 고급 주택과 부티크 호텔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바로 옆 비버리 힐튼 호텔을 소유하고 있던 알라젬의 자회사 오아시스 웨스트 리얼티(Oasis West Realty)는 완다의 프로젝트가 교통 혼잡을 가져올 것이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완다는 호텔 노동조합과 충돌했고, 지난 해 말 원 비버리 힐스에서 완다와 계약했던 하청업체들은 공사 지연으로 수백만 달러의 빚이 발생했다며 이 부지에 대한 유치권 소송을 벌였다.

두 개의 큰 부동산이 맞닿아 있으면서 양측이 자신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서로 다투게 되자 완다 측이 지난 달 알라젬에게 부지 매각을 타진해 왔다고 알라젬 관계자는 밝혔다.

캐나다의 부동산 그룹 트리플 파이브 월드와이드 그룹(Triple Five Worldwide Group)도 한 때 이 부지 매입 협상에 나서기도 했지만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금리 인상, 건설 비용 증가, 고급 아파트 수요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협상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방침을 바꿔 통화 안정을 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동산을 포함한 특정형태의 아웃 바운드 투자를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하이난 항공그룹(HNA)과 그린랜드 홀딩그룹(綠地集團, Greenland Holding Group) 같은 중국 기업들도 부채를 상환하고 국내의 규제와 시장 압력에 부응하기 위해 노른자위 부동산을 속속 내놓고 있다.

애널리틱스들은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 및 국가 안보에 대한 긴장 고조가 이들 투자자들이 자본을 회수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