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산업은행의 설립 취지는 구조조정이다. 말 그대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산업 혹은 기업의 경영상태 개선을 목적에 둔다. 궁극적으로는 국가 산업의 개발·육성을 목표로 한다.

약 1년 전 산은 구조조정실 담당자를 만났다. 금호타이어 매각 건 때문이었다. 그 의지가 확고함을 알 수 있었다. 경영개선이 주목적이라는 것이다. 박삼구 회장을 비롯한 금호타이어 측의 의견은 이미 안중에 없었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더블스타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산은의 자금부담도 커졌지만 구조조정에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최근 현대상선의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금호타이어와 유사하다. 자율협약과 워크아웃 조기 종료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이끌어 내려는 모습이다. 다른 점은 경영진이다.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회장이 진두지휘했지만 현대상선은 산은이 정한 인사가 이끌고 있다.

현대상선의 실적 개선이 가능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바로 산은이다. 모든 것을 결정했음에도 책임은 현대상선 경영진의 탓으로 돌리는 격이다.

설립 취지 목적이 구조조정에 있으니 부실기업에 강압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주주와 채권자의 권리를 넘나드는 산은의 모습은 일관성이 없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3년 9월 STX조선해양의 새 수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산은의 과도한 개입을 들 수 있다. 주채권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을 STX조선의 수장으로 밀어붙였다.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 양사 노조가 기술유출과 경영부실 우려로 크게 반발했다. 박 부사장의 자진 사퇴로 일단락됐지만 산은의 행동은 논란이 됐다.

당시 STX지주는 STX조선 지분 30.5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STX그룹이 부실로 힘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명백히 STX조선에 대한 최고 권리를 가진 주체였다.

채권단이 최후의 수단으로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그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1월 모그룹 금융계열사 관련 내부문제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다. 당시 현장에서 해당 계열사 고위 임원은 산은이 강제 구조조정 지시했다고 공표했다. 산은은 이러한 압박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자구안 제출 요구’라는 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산은 입장에선 압박이 아닐 수 있다. 늘 그렇게 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대 기업과 이를 바라보는 제3자 입장은 상당히 불편하다.

물론 압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니 신중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그러나 줏대가 없다. 현대상선의 부실 문제가 경영진 탓이다? 산은의 간섭을 받는 대다수의 기업들이 좀처럼 개선이 되지 않는 이유도 다 경영진 탓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현대상선) 기업 구조조정을 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고 말했다.

기업 내부의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산은에 묻고 싶다. 산은 자체가 ‘모럴 해저드’가 아닌지 말이다. 기업구조조정실은 왜 만든 것인지도 의문이다. ‘최고의 구조조정 전문가’ 집단이 모인 곳이라 강조하면서 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된 경우도 드물다. 경영도 간섭하고, 남 탓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남 탓을 하려면 계속 하라. 성공적 구조조정에 심취하고 싶다면 모든 질타를 끌어안고 가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산은의 역할은 아니다. 남 탓을 하고 싶다면 산은 내부 인력 수준부터 점검하길 바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산은의 일관성 없는 태도와 부진한 실력이 ‘내부의 적’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