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현대·기아자동차의 부진으로 수많은 협력사가 위기에 봉착했다. 금융당국도 위기에 빠진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기업회생과 워크아웃을 두고 기업의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금융사가 구조조정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소극적인 구조조정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 부품업체를 법원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완성차 부품업계는 금융권이 워크아웃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금운용 환경이 열악한 법정관리보다, 유동성이 원활한 워크아웃을 통해 빠른 출구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자율구조조정 지원 시스템(ARS)'을 도입하는 등 출구전략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국은 '비오는 데 우산 뺏지 말라'며 금융권을 질책하고 있지만, 손실을 우려하는 금융권의 태도에 상황은 여의치 않다. 

▲ 부산시 강서구에 위치한 금문산업 본사 모습. 사진=금문산업

금문산업을 통해 본 그들의 곤욕

1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1차 협력 부품업체 89개사 중 42개사가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차 부품업체 협력사들이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 악화로 연쇄 위기에 봉착해 있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6월 현대차 1차 협력업체인 리한이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한 데 이어 금문산업과 이원솔루텍 등이 잇따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올해 초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이후에도 다수 기업들이 구조조정 절차를 밟았다.

이 가운데 현대차의 1차 벤더사인 금문산업은 유동성 위기로 지난 2월 최대 채권자 부산은행과 기업워크아웃을 협상했으나 끝내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당시 부산은행은 금문산업에 대한 실사 후 재무구조의 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회사의 워크아웃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부산은행은 채권을 매각하여 손실을 최소화하는 등 구조조정 방향을 틀었다. 금문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통장 압류를 당해 150곳의 협력사로부터 거래가 단절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회사는 최근 회생법원으로부터 최종 인가를 받고 정상 영업 중이다.

문제는 금문산업과 같이 재정위기를 겪는 자동차 제조업체의 구조조정에 채권금융회사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 A씨는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금융회사가 실사하면 리스크에 방첨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중소형 자동차 부품 74개사 영업이익 및 적자기업수(우측) 추이. 자료=퀀트와이즈, 신한금융투자

살릴 수 있으면서도 왜 피하는가?

자동차 협력사들은 되도록 워크아웃을 선호하고 있다. 아직 법정관리에 대한 인식이 기업가치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권은 법정관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주채권금융기관이 돼 구조조정을 리딩하지 않고 법원에 넘기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법정관리는 기업의 재무 유동성을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금융회사와 상거래 채권자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A기업의 주거래 통장은 압류된다. A기업은 회사 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직원 급여까지 줄 수 없는 단계까지 오게된다. 

특히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이기 때문에 모든 채권자를 참여시키고 법적 요건도 까다로워 장기간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 의결조건 역시 까다롭고, 적용대상도 '부실기업'만이 가능하다. 채권금융기관 주도의 '자율협약'이 있지만 채권단 동의를 받아내기 쉬운 대기업에만 대부분 적용된다.

반면 워크아웃은 원금 상환 유예, 이자 감면, 신규 자금 조달 등의 요건에 대해 총 신용공여액의 75% 이상만 동의하면 진행이 가능하다. 구조조정 절차 속도도 빠른 데다 자산 운용에 있어서 법원에 간섭이 없다. 무엇보다 워크아웃 절차 진행 상황에서 파이낸싱도 받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경우에 다라 채무를 조정하고 출자전환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또 부실징후기업까지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대다수 기업들이 선호한다. 다만 상거래채권이나 조세채권은 조정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워크아웃은 이러한 장점이 있지만 금융권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금융권 관계자 A씨는 “사실 워크아웃 절차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회사에서도 꺼리는 현상이 다반사”라면서 “특히 법원이 중재 역할을 하면서 채권단과 시시비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 B씨는 "금융기관이 도산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보니, 기업을 구조조정 방향을 기획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례가 적다"면서 "구조조정 구조 자체가 어렵다보니 실무자들은 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B씨는 또 "결국 금융기관은 기업을 일반 채무자과 다를 바 없이 취급한다"면서 "어려워지는 업황 시기에 지원과 함께 미래를 그리는 구조조정을 시도하지 않는다. 즉 미래를 보고서 회사와 같이 가겠다는 개념이 아닌 셈"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B씨는 "구조조정 기업을 지원할 자금이 준비돼 있다고 하더라도 정책이 정비되지 않아 기업들이 지원받기 어렵다"면서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있지만 실제로 공론화가 돼 있지 못해 금융기관 실무자들조차 잘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 Program) 개요. 사진=서울회생법원 제공

현재 국내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위기에 봉착한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출구전략 역시 빈약할 수밖에 없다. 서울회생법원은 자동차 업계의 이런 점을 인식해 자율 구조조정 절차인 ‘자율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는 회생신청에 돌입한 기업에 대해 본격적인 법정관리 결정인 개시 결정을 미루고 그사이 법원과 채무자 회사가 채권자와 자율협약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자율구조조정은 우선 회생 법원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보호장치를 갖추고 채권자와 워크아웃을 협의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회생절차로, 협의가 이뤄지면 회생절차를 취하하고 워크아웃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법원 밖에서 기업 워크아웃을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법원에 회생신청을 해 놓고 워크아웃을 협의한다는 점에서 일반 워크아웃과 차이가 있다. 앞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다이나맥이 첫 자율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돌입, 성공적인 구조조정 절차를 치렀다.

완성차 업계는 다양한 구조조정 절차가 고안된 점에 대해서는 환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유가 기업가치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인천시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 한 관계자는 “거래처에서는 회사가 회생절차에 돌입했다고 하면 이를 파산절차로 오인한다”면서 “아직 회생절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3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서진산업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공정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금융당국, 워크아웃 분위기 조성할까?

완성차 업계는 자동차 업황이 호전되기 전까지 채권금융사들이 구조조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일몰 당시 금융사들은 기업들의 구조조정 공간이 없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할 때는 금융사가 손실을 문제 삼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센터장 박상인 교수)가 밝힌 상장기업 워크아웃 구조조정 결과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워크아웃 중단율이 19%에 이른다. 이는 채권은행과 기업간에서 맺는 자율협약 중단율 15%와 법원의 법정관리 중단율 9%에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구조조정 평균 기간도 982일로 자율협약 710일, 법정관리 578일보다 길었다. 또 졸업률을 따져보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주도의 워크아웃 졸업률은 17%로, 일반은행 주도 졸업률 82%와 중소기업은행 주도 졸업률 100%에 비해 크게 낮다.

금문산업 회생절차를 대리한 안창현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정부가 채권기관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촉법을 부활한 만큼 금융사가 회사의 재무적 상황을 중심으로 채권 회수 중심의 워크아웃을 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기업가치를 산정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워크아웃 절차를 진행해야 자동차 업체들이 출구전략을 다져 지체없이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경기도 화성시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을 방문해 “시중은행은 특정 산업에 리스크가 감지된다고 그 산업의 여신을 일괄 회수하기보다는, 경쟁력은 있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면서 “금융당국과 정책금융기관도 위기극복을 위한 유동성 지원과 주력산업의 구조혁신을 위한 금융지원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