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테슬라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일(현지시간) IT 전문매체 리코드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때는 일주일에 120시간을 일했다”면서 “직원들도 모델3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주당 평균 100시간 일을 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갖은 악재에 휘말리면서도 어떻게든 성과를 내는 테슬라의 성공 이면에는 ‘죽도록 일하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리코드의 기사가 나온 후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파이팅’을 외치며 조직을 이끄는 일부 시니어들은 테슬라의 영웅적인 분투에 찬사를 보냈으나 대부분은 ‘직원들에게 주 100시간 일을 시키는 것이 자랑인가?’라는 차가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후자의 경우 그 이면에는 ‘미친 듯이 일하는 것이 자랑인 시대가 정상인가?’와 ‘미친 듯이 일해서 장기적으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는가? 또 성과를 낸다면 그 과실은 누가 가져가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과 연결됩니다.

 

열정페이..그리고 짭스병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 파문으로 온 사회가 떠들썩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폭행사태로 본 IT 노동자 직장 갑질 폭행 피해 사례 보고회를 열었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폭로됐습니다.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기 위해 법무팀을 동원, 업무 방해죄로 고소하겠다고 겁박하는 한편 IT 업계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며 직원을 압박하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직원을 괴롭히고 과중한 업무를 부여해 허덕이게 만드는 일도 많았고 이 외에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폭로됐습니다.

현장에는 인터넷 강의 업체로 유명한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다 사망한 고 장민순 씨의 언니 장향미 씨, 스타트업 혹사 노동에 시달린 후 문제를 제기한 후 지금까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디자이너 김현우 씨가 등장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을 살펴보려 합니다.

에스티유니타스는 에드테크 업계의 잘 나가는 샛별이자 스타트업 성공신화를 쓴 곳입니다. 이른바 '공단기'로 유명한 인터넷 강의업계의 큰 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입니다만 내부 사정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장향미 씨는 동생이 2년 8개월의 근무기간 동안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한 주가 무려 46주라고 폭로했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말이 않되는 업무시간입니다. 심지어 끊임없는 질책과 압박, 업무를 제 시간에 달성하지 못하면 반성문까지 쓰게 했다고 합니다. 장 씨에 따르면 동생에게 과도한 압박을 가한 상사들은 대부분 윤성혁 대표와 가까운 인사라고 하더군요. 채식주의자인 고 장민순 씨에게 육식을 강제했다는 대목에서는 한 말을 잃었습니다.

▲ 채식주의자에게 육식을 권하는 장면도 확인됐다. 출처=갈무리

폭로가 끝난 후 질문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으냐?" 장향미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스타트업 업계의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무슨 뜻일까. 장 씨는 "스타트업들은 체계가 없고, 몸집이 커져도 여전히 체계가 잡혀있지 않는 상태가 많다. 에스티유니타스도 마찬가지다. 몸집은 커졌지만 여전히 체계가 없고 주먹구구로 일이 진행되니 상사의 말 한 마디에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장 씨는 이어 "동생은 보고를 위한 디자인 시안만 수 십장 만들어야 했고, 이를 회사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주먹구구 운영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스타트업은 체계가 없고 명확한 내부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내부에서 간결한 업무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의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문제는 스타트업의 대표나 경영진들이 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한다는 겁니다. 마치 일론 머스크 CEO가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과도한 업무량을 언급한 것처럼. 장 씨는 "에스티유니타스도 '스타트업은 당연히 이래야 한다'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체계를 만들지 않고 그 부담을 직원들에게 전가했다"면서 "스타트업 특유의 문제가 동생의 비극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우 씨의 주장도 비슷했습니다. 체계가 없는 스타트업.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표. 이 과정에서 고통받는 직원들. 김 씨는 이 대목에서 '짭스병'을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대표는 체계가 없어 직원들이 어려운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직원들에게는 혁신을 보여준다며 믿고 따라오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스타트업이 광신도 집단이 되는 순간"이라면서 "체계도 없는 조직을 이끄는 대표가 짭스병(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이 혁신을 가졌다고 착각하고 내실에는 충실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단어)에 빠지면 구성원들은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듣는 3자 입장에서는 얼굴이 다 화끈거려지는 열정페이의 씁쓸한 단면입니다.

▲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물론 스타트업 특유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기업과 달리 찬란한 미래를 위해 현실을 저당잡히는 경향이 있고, 이를 무작정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최정예 소수정예가 혼신의 힘을 다해 거인에게 통렬한 일격을 날리기 위해 스타트업은 더욱 강하고 비장해져야 합니다.

다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된 분투를 거듭하는 구성원들에게 "내가 스티브 잡스다. 날 따라오라"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태를 거듭하면 그건 범죄입니다. 구성원들을 따라오게 만들려면 내가 진짜 스티브 잡스가 되던가, 아니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만드는 실제 원동력이 필요합니다. 그 원동력은 혹세무민이 아닌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어야 하며, 현재의 구성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입니다.

발표회를 보면서 가슴이 참 답답했습니다. 업계를 출입하며 한 번 쯤 들었던 이야기들을 실제 확인하니 가슴이 철렁합니다. 이런 상화이라면 제가 사랑하는 스타트업 업계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저는 무엇 때문에 기사를 쓰고 비즈니스를 조명했던 것일까.

장향미 씨와 김현우 씨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으며 그 누구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부도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장향미 씨는 지난해 12월 동생이 너무 힘들어하길래 고용부 서울강남지청에 근로감독을 요청했으나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서울강남지청은 "올해 근로감독 일정이 끝나 내년에 하라"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다음해 3월 고 장민순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장향미 씨의 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장 씨는 "칼에 찔려 죽어가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외쳤는데 노동부는 외면했다"면서 "노동부는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회사의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윤성혁 대표의 사과를 받은 장민순 씨의 사정은 더 낫다고 봐야 할까요. 이번 발표회를 보며 저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스타트업은 다 그런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들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보며 또 한 번 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