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검찰은 드렉셀과 밀켄을 기소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드렉셀을 치고 나중에 밀켄을 치기로 했다. 드렉셀을 먼저 항복시키면 밀켄을 치기에 매우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일반 대중이나 언론은 몰랐다 하더라도 줄리아니는 드렉셀에 대한 혐의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부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드렉셀과 그의 핵심 인력들을 RICO법(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 Act of 1970) 위반으로 기소하는 것이었다.

RICO는 조직범죄에 관련된 자들을 체포하고 유죄를 받아내는 데 검사에게 강력한 수단을 제공해 주는 법인데, 특히 RICO로 기소되면 조직의 자산을 동결할 수 있었다. 금융회사의 경우에 자산동결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연방 검찰은 SEC가 드렉셀과 밀켄을 기소하기 한 달 전인 1988년 8월에 이미 프린스톤/뉴포트 사건에서 RICO를 사용했는데 아주 잘 작동했다. 다시 그것이 똑같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또한 줄리아니는 보스키 이외에 추가적으로 정부 협력자를 찾아낸다면 검사들이 이 사건을 진행하는 데 훨씬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RICO 기소의 위협에 직면한 드렉셀의 여러 임직원들은 면책을 조건으로 더욱 협조적으로 나왔다. 이들은 회사와 밀켄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했고, 그러한 협조 덕분에 대부분 면책을 받았다. 이들의 증언은 마치 드렉셀과 밀켄이 중죄를 지은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고, 검찰의 기소에 더 큰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쥐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줄리아니는 마지막으로 최강수를 두었다. 그는 드렉셀에게 유죄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RICO로 기소될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했다. 줄리아니의 요구는 드렉셀이 유죄를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밀켄에 대한 반대 증언을 요구함으로써 회사를 분열시켰다. 그러나 대다수가 정부와의 딜에 반대했다. 밀켄과 회사는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밀켄과 함께 일하는 임직원들은 더욱 강하게 반대했다.

CEO인 프레드 조지프는 중간에 있었다. 그는 싸우고자 하는 의지와 줄리아니와 타협할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1988년 12월 19일, 드렉셀의 이사회는 조지프의 권고를 따라 만장일치로 줄리아니와 거래를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조지프는 드렉셀의 임직원들이 참석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이사회의 결정을 전하면서 정부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임직원들은 조지프의 말에 대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인 12월 20일에 조지프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드렉셀이 줄리아니의 조건에 즉각 동의하지 않으면 회사는 12월 21일 오후 4시에 RICO 법에 의해 기소된다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강한 입장이었던 조지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24시간 동안 회의와 협상이 이어지면서 딜은 4시 30분까지 연장됐다. 결국 드렉셀은 유죄를 인정하고 정부와 화해하기로 결정했다. 드렉셀 이사회는 검찰과의 딜에 대해 16:6으로 승인했다. 드렉셀은 줄리아니에게 무릎을 꿇었다.

격렬했던 전투가 끝나고 연기가 가라앉자 드렉셀의 항복 조건들이 명백해졌다. 드렉셀은 6가지 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과 부당이득 반환으로 역사상 최고 기록인 6억5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밀켄을 해고하고 그에게 1988년 상여금으로 예상되는 2억달러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밀켄의 동생인 로웰 밀켄에게도 그의 보너스의 반만 지급하도록 했다.

드렉셀의 이사회가 검찰과의 딜을 승인한 것은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드렉셀이 6가지 죄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회사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드렉셀에게 쓰인 중죄 혐의가 그동안 누구도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던, SEC의 고소장에 기재된 ‘장부기록 위반죄(Books-And-Records-Type Offense)’라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드렉셀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기 위한 벌금과 부당이득 반환액 6억5000만달러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다. SEC나 연방 검찰은 드렉셀의 불법행위로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 결코 거론한 적이 없었다.

딜의 다른 조항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부와 드렉셀이 무슨 권한으로 밀켄이 1988년에 받기로 예정된 보너스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돈은 회사에 대한 기여로 인한 보상이었고, 어떤 불법행위로 인해 취득하는 돈이 아니었다. 당시 밀켄은 어떤 범죄 혐의로도 기소된 상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드렉셀은 어떠한 청문이나 재판도 없이 밀켄의 재산권을 몰수해서 자기들이 납부해야 하는 6억5000만달러의 일부분으로 지급해 버린 것이다.

정부는 드렉셀에게 밀켄의 조사와 재판에 증인으로 협조해 줄 것을 요구했다. 드렉셀이 밀켄을 해고하고, 그에 대한 정부의 형사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동의는 모욕적인 것이었다. 이에 더해 정부는 드렉셀이 결코 옛날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다. SEC가 회사의 준법감시인을 지명했고, 이사회 의장으로 전 SEC 위원장을 지낸 존 샤드를 앉혔다. 정부가 드렉셀을 공중분해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드렉셀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줄리아니는 검사로서 더 성취할 것이 없었다. 그는 드렉셀을 파괴했고 밀켄의 기소는 이제 시간문제였다(밀켄은 1989년 4월에 기소됐다). 1989년 1월,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뉴욕 남부지검 검사장 자리를 물러났다.

조지프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항복은 드렉셀 종말의 시작이었다. 그가 정부의 잔인한 처벌에 동의한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그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줄리아니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자비하고 부도덕하게 행동했고, RICO라는 괴물을 풀어놓는 것을 포함해서 어떠한 수단이라도 사용할 의지가 있었다. 드렉셀이 RICO로 기소되면 살아남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유죄 인정은 최소한 회사에게 살아남을 기회는 줄 것이고, 기회가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드렉셀이 재판에 갔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삼류 투자은행에서 비약적으로 성공해서 월가를 제패한 드렉셀이 동정받는 방어자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에 협력하는 증인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RICO의 위험 앞에서 정부에 협력을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길어지는 조사와 재판으로 인한 고통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유죄를 인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조지프의 선택은 정부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피셀 교수는 밀켄과 그의 동생을 해고함으로써 정부에 팔아넘기고, 보너스를 유예하고, 그들에 대한 불리한 증언으로 정부에 협조하기로 한 조지프의 결정은 비겁한 행동이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조지프와 다른 이사들이 정부와 딜을 한 것은 악마와 거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명분은 회사의 존속이었지만, 그들은 정부가 밀켄 형제를 감옥에 보내는 것을 돕는 대가로 그들의 자리와 급여를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놀라운 성공과 높은 급여는 밀켄의 덕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밀켄을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정부와 딜을 한 드렉셀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이제 조지프는 밀켄의 도움 없이 심하게 손상된 드렉셀의 불확실한 미래를 끌고 가야 했다. 그러나 악마에게 드렉셀의 영혼을 판 조지프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