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집을 버리고 RV에 사는 사람들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출처= 페니 브링크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로버트와 제시카 마인호퍼 부부가 2015년에 RV(레저용 차량)로 이사 간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은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2000ft2(56평)의 집에서 살다가 어떻게 250ft2(7평)도 안 되는 작은 트레일러로 들어갈 수 있느냐, 집에 있던 세간살이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냐, 6살과 9살 된 아이들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 혹시 중년의 위기가 온 것이 아니냐 등. 그러나 설득이 가장 어려운 사람은 제시카의 부모였다. 제시카의 부모는 브롱스(Bronx)의 가난한 라틴계 마을에서 자랐고 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왜 딸 부부가 이주 노동자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인호퍼 부부가 RV의 삶을 선택한 것은 재정이 궁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원해서 한 일이었다. 그들은 오래 동안 꿈꿔왔던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여겨졌던 ‘벽돌 집’을 버리고,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가지고 원할 때만 일을 하며 여행을 즐기는 삶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었다.

“우리는 4명의 가족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싶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진정한 의미는 행복이지, 차고 두 개 딸린 침실 네 개짜리 집이 아닙니다.”

<워싱턴포스트>(WP)가 마인호퍼 가족 외에 12명의 현대 유목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취재한 결과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7평 내외의 작은 트레일러에 살면서 비록 벌이는 시원치 않더라도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는 없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풀타임 RV족(族)’, ‘디지털 유목민’, 또는 ‘워크앰퍼스’(Workampers)라고 지칭했다.

대부분의 현대 유목민들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하다. 제시카 마인호퍼는 정부 계약업자로서 원격으로 일하기 때문에 RV에서 로그인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은 야영지 청소, 농장이나 포도원 수확, 경비원 등 이른바 긱 워크(Gig Work, 필요할 때 단기로 일을 하는 노동 형태)를 선택한다. 이들은 3만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 페이스북의 워크앰퍼스(Workampers) 그룹이나 워크앰퍼 뉴스(Workamper News) 등을 입소문으로 긱 워크 일자리를 찾는다. 아마존과 J.C. 페니 같은 대기업들은 성수기 동안 창고 일자리에 RV족을 특별히 모집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RV 산업협회(RV Industry Association)에 따르면 미국에서 풀타임 RV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100만명이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서(집을 마련할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RV족이 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들의 선택에 의해 RV족이 된 사람들이다. 데이터 회사인 스태티스티컬 서베이(Statistical Surveys)에 따르면, 지난해는 미국의 RV 판매량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RV 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 가구 중 1050만 가구가 적어도 한 대 이상의 RV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2005년 750만 가구에 비해 40%나 증가한 것이다.

풀타임이든 주말용이든 ‘RV에서 사는 것’(RVing)에 대한 관심이 특히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RV 산업협회는 2016년 조사에서, RV 신규 판매의 절반이 45세 이하에게 판매되고 있으며 특히 유색인종 구매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년 전인 20세기 때만 해도 백인 은퇴자들이 RV차의 가장 큰 고객층이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 로버트와 제시카 마인호퍼 부부는 RV에 살면서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출처= 마인호퍼 가족

로버트 마인호퍼(45)와 제시카 마인호퍼(40) 부부는 3년 동안 RV 생활을 해왔지만 아직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계획은 없다.

현재 그들은 조지아주(Georgia)에 있으며 지난해에는 메인주에서 플로리다까지 6개월 동안 여행했다. 그들이 보유한 RV차량은 2016년형 포레스트 리버 그레이 울프(Forest River Grey Wolf) 26DBH 여행용 트레일러다(그들은 2만2000달러에 이 트레일러를 사서 트럭 뒤에 견인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돈을 벌기 위한) 일상적인 일이 허용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RV로 전국을 여행하며 사는 어느 한 가족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라고 안 될 게 뭐가 있어?” 다음은 제시카의 말이다.

“우리는 둘 다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지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집도 장만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우리는 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하고 또 일하고 계속 일만 했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지요.”

로버트가 애틀랜타에서 항공사 일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이들 부부는 애틀란타에서 자신들의 두 아이와 개와 고양이를 기르면 살 만한 ‘적당한 집’을 살 충분한 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것이 RV 라이프였다. 제시카는 원격으로 일할 수 있다고 회사를 설득했다. 아이들에게 홈스쿨(재택 학습)시키고 미국 내 어느 곳에서든 RV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버트는 항공사에서 4일 일하고 4일 휴가를 얻는데, 이 휴가는 가족과 함께 RV에서 보낸다.

그러나 제시카는 도로 위에서 지내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집에서 잔디를 깎는 대신 타고 다니는 RV차량을 늘 유지 보수해야 한다. 자동차 용품들이 집 안의 살림살이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허드렛일은 집에서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탁소에도 자주 가야 한다.

“하지만 RV에서의 삶은 어느 날엔 해변, 그 다음 날엔 산이나 호수에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지요. 그것이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주었습니다.”

마인호퍼 부부는 RV 삶을 즐기면서 자녀들이 있는 가족들을 많이 만났지만, 자기들 같은 라틴계 가족은 만나지 못했다. 일부 유색 인종 사회에서는 그런 생활이 궁핍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마인호퍼 부부는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 ‘현지 생활 직접 맛보기’(Exploring the Local Life)를 보라고 권장한다. 그들의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끌면서 수입에도 보탬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