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은 ‘디지털 운전석’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온통 스크린으로 채울 계획이다.   출처=삼성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자동차가 움직이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차세대 스마트폰이 된다면, 삼성전자가 경쟁사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지만, 2년 전 80억달러(9조원)에 미국 자동차 기술 제조업체 하만인터내셔널 인더스트리(Harman International Industries Inc.)를 인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산업에서는 비교적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만과 짝을 이룬 삼성전자는 현재 자동차에 탑재되는 최고 수준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시장에서 가장 큰 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삼성은 초연결형 자동차용 최첨단 계기판 기술인 디지털 조종석을 만들어 계기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온통 스크린으로 채울 계획이다. 이 화면을 통해 운전자는 자동차 실내 온도부터 집에 있는 냉장고의 온도까지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고, 웹 서핑을 하며 스트리밍 비디오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의 디지털 조종석이 시장에서 상용화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니까 2021년이나 2022년 자동차 모델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삼성은 운전자 없는 자동차 인테리어의 최고 디자이너이자 부품 공급업체가 되기 위한 경쟁에 본격 나선 것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HIS 마킷(HIS Market)의 루카 드 암브로기 AI 및 자동차 연구원은 “사람이 더 이상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차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삼성의 야망은 다운로드 속도가 빨라지는 차세대 5G 무선 네트워크가 등장함에 따라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삼성은 지난 8월, 향후 3년간 5G, 인공지능, 자동차 기술 등과 같은 분야에 220억달러(25조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스마트폰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를 거쳐 현재는 회사의 자동차 전자공학 연구개발팀을 이끌고 있는 이원식 팀장은 “커넥티드 자동차는 기술 분야에서 가장 기대가 큰 분야 중 하나이지만 5G가 없었다면 이러한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집중력 방해 문제

디지털 조종석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재현하려는 삼성의 구상이 직면한 가장 큰 장애물은 안전에 대한 우려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J.D. 파워(J.D. Power)나 소비자 보고서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자동차의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운전자의 집중력을 산만하게 한다며 경고해 왔다.

이와 같은 안전에 대한 우려와 몇몇 기술적 장애로 인해,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모든 기능들을 자동차에 적용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가수나 노래를 검색하는 기능은 대개 차단되어 있다. 또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식당에서 차량까지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앱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행 중에는 전체 메뉴를 볼 수 없다.

시장 조사 및 컨설팅 회사 SBD 오토모티브(SBD Automotive)의 모 알보더 커넥티드 카 연구원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차량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과 안전한 운행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드로이드라는 이점

자동차업계 컨설턴트들에 따르면,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커넥티드 카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추진하는 것도 삼성에게는 커다란 이점이다. 삼성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세계 최대 제조업체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는 지난 10월, 2021년부터 출시될 자사의 자율주행차 운영 체제로 구글을 선택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trategy Analytics)의 자동차 커넥티드 모빌리티 담당 이사 로저 C. 랭토트는 “삼성은 기존 스마트폰 팀을 자동차 애플리케이션 및 기타 목적으로 쉽게 재배치할 수 있다”며 “삼성이 이미 수억개의 커넥티드 기기들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삼성은 디지털 조종석에 장착된 세 개의 서로 다른 디스플레이에서 안드로이드를 동기화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만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없었다면 각각의 화면이 다른 칩셋(Chipset)에서 각기 따로 작동되었을 것이다. 결국 삼성의 이런 개발 덕분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하만이 구축한 네트워크

삼성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이점은, 지난해 삼성이 인수하기 훨씬 이전부터 하만이 수십 개의 자동차 제조업체와 맺어온 긴밀한 유대관계다. 삼성 경영진은 하만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고, 하만과 거래하는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도 하만이 삼성 인수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만의 제품 중에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주행 중에 아마존의 알렉사(Alexa)나 삼성의 빅스비(Bixby) 같은 여러 디지털 보조 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 커넥티드 카 소프트웨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또 인공 지능을 사용해 운전자가 어떤 팟캐스트(Podcast)를 좋아하는지 예측하며, 자녀가 자동차를 몰고 특정 영역을 벗어나면 부모들에게 경고를 보내주기도 한다.

하만이 이전부터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해 온 덕택으로, 삼성은 이미 커넥티드 카 업계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삼성-하만 듀오는 2017년에 48억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며 파나소닉-산요 듀오의 51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공급 업체가 되었다.

이 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과연 소비자들이 커넥티드 카 시대의 그런 모든 부가 기능들을 실제로 원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리서치 및 컨설팅 회사 가트너(Gartner)의 스마트 모빌리티 담당 카슨 아이서트 상무는 “지금도 차 안에는 너무 많은 기능들로 넘친다”며 “자동차에서 집안의 가전제품들을 조절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