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1866년 중국 상하이에서 리델주교와 천주교신자들<사진=한국교회사연구소제공>, 한불자전 26.7×18.5㎝

“사전은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다. 늘 옆에 가까이 놓고 봐야 된다. 모든 문화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홍윤표, 전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장, 전시영상 中>

훈민정음 반포572돌을 맞은 올해 한글날을 기념하여 우리말사전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사전의 재발견’기획특별전이 지난 9월20일 오픈하여 12월25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역과 연결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옆 전시장 주변단풍이 만추의 정취를 선사했다. 13개 기관에서 제공한 총122건 211점을 선보이는 이번전시는 사전의 학술연구발표가 아니라 지난 140여 년간 우리말사전의 발자취를 한자리에 모아 다루는 최초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 (왼쪽)조선말 큰사전 원고 최종수정본/한글학회(전 조선어학회)에서 지은 총6권의 우리나라 최초의 대사전 ‘큰사전’. 25.5×18.0㎝, 을유문화사 발행.

주요 대역사전 및 미공개 원고본

△한불자전(韓佛字典) 필사본 최초공개=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선교단의 펠릭스 클레르 리델(Félix Clair Ridel, 1830~1884)주교가 188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판한 ‘한불자전(Dictionnaire Coreen-rancais)’의 원형인 ‘한불자전 필사본’(1878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이 최초로 공개되고 있다. 최초 한불사전이자 한국어 대역사전의 효시라고 평가되는 귀중자료다.

이와 함께 △한국어 낱말을 먼저 배열한 최초의 국한 대역사전인 이준영 등이 편찬한 ‘국한회어(國漢會語, 1895 규장각한국학연구원소장), 서재필 박사가 A~P까지 작성한 ‘영한사전 초고(英韓辭典 草稿, 1898 독립기념관소장), 이승만 박사가 옥중에서 A~F까지 집필한 ‘신영한사전 초고(新英韓辭典 草稿, 1903~1904,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소장) 등 미완성 사전 원고본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 (왼쪽)큰사전 완성 기념사진(1957년10월9일). 아랫줄오른쪽부터 한종수, 유제한(柳濟漢), 정인승(鄭寅承), 정인서, 권승욱(權承昱), 이강로(李江魯). 뒷줄 맨 왼쪽이 정재도, 맨 오른쪽이 김민수(金敏洙) 그리고 사무직원들.<사진=한글학회제공>

△최초의 우리말사전원고 ‘말모이’=1910년대 주시경과 제자들이 집필한 첫 우리말사전원고로 최종적으로 출판되지 못하였다. 말을 모아 만든 것이어서 사전이름도 ‘말모이’라고 하였는데 표제항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만 남아 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조선어학회(이후 한글학회)에서 1929년부터 13년 동안 작성한 최종수정본 ‘조선말 큰사전 원고’(한글학회 소장)를 관람할 수 있다. 이 원고는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의 증거물로 일제에 압수되었다가 광복직후인 1945년 9월8일 경성역 조선통운창고에서 발견됐다. 2만6500여장 분량으로 ‘조선말 큰사전’ 권1(1947), 권2(1949)를 간행하고 1957년 총6권의 우리말 대사전인 큰사전 편찬기틀이 되었다.

권6에 실린 ‘큰사전의 완성을 보고서’에서 당시 최현배 한글학회이사장은 “큰사전 여섯 권이 이에 완성되어, 한글날기념식장에서 이를 발표하고 우리국민에게 바치는 식을 행하게 되었다. 우리 배달겨레도 제 말씨의 사전을 가진 버젓한 문화겨레의 반렬에 참여하게 된 것을 삼천만 동포로 더불어 함께 축하한다.(요약)”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