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동안이라는 말을 꽤 듣는 편이다. 필자의 프로필 사진은 몇 년 안 된 것이다. 그 사진을 찍은 후, 필자는 스튜디오 측에 ‘뽀샤시하게 보정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사실 의사가 젊어 보이면 임상경험과 경륜이 적을 것으로 오인받기 때문에 좋을 것이 없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졸업장이나 면허증에 필자의 생년이 60년대인 것을 보고는 놀라곤 한다. 느닷없이 동안 ‘드립’을 하는 이유는 사실, 세월이 야속해서다.
자그마한 체구의 어딘가 낯익은 얼굴의 여성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누구시더라.
- 원장님, 저 기억하세요? 12년 전쯤 원장님이 눈, 코 수술을 해주셨어요. 그때 돌출입수술을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그제서야 기억이 분명해졌다. 당시 스물한 살의 앳된 ‘그’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였다. 원숙해진 그녀를 보며 참 세월이 많이도 지났구나 하고 슬쩍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보니, 필자 또한 12년의 세월을 거스르지 못했다. 필자의 프로필 사진이 실물보다 잘 나온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은, 필자의 껍데기는 비록 늙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돌출입과 얼굴뼈 수술에 대한 20년에 가까운 경험들은 필자에게 오롯이 녹아 있으니, 눈과 손이 옛날보다 더 섬세해지고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필자를 만나는 것보다 지금 만나는 것이 환자들에게는 분명 더 좋은 일이다. 대한민국 의사면허증을 받은 것이 1994년이고, 성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것이 1999년. 내년이면 의사가 된 지 햇수로 26년,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지는 21년이 된다.
12년 전, 유전자적 그리고 신체적으로 남자인 상태로 필자를 찾아온 환자는 꽃다운 21세였다. 자그마하고 여린 체구의 그는 분명 돌출입이었다. 필자는 그가 당연히 돌출입 수술을 하러 필자를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환자에게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환자는 여장을 하고 트랜스젠더 바의 밤무대에서 춤을 추는 무희였다. 그게 직업이자 생계였다.
갓 스물한 살의 무희인 그는 스스로 돌출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눈, 코 수술을 원했다. 이왕 여자로 살 거라면 돌출입수술로 ‘정말 예쁜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안타까웠다. 그렇게 눈, 코 수술을 해준 후 필자도 잊고 지냈다.
그랬던 그가 필자를 다시 찾아왔다.
그는 ‘그녀’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성전환수술을 마치고 육체적으로도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원장님, 12년 전 눈, 코 수술을 예쁘게 잘 해주셔서 그동안 제가 잘 지낼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이제 사는 것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이번엔 돌출입 수술을 하러 왔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술 날짜만 정하고 갔다. 필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오히려 필자가 감사했다. 스물한 살의 앳된 그가 서른셋의 그녀가 되었고, 이제 평생 소원이었던 돌출입수술을 하러 필자를 다시 찾은 것이다. 이런 신뢰는 필자에게 큰 힘이고 보람이다.
12년이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여자의 심장을 가진 그녀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남들보다 몇 배나 힘든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필자가 그녀의 인생에 아름다움을 선물해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도, 필자에게도 큰 행복이다.
돌출입 수술도 잘 마치게 된 그녀는 이제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긴 생머리의 완연한 여성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꽃길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살길 축복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필자는 병을 고치는 의사는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돌출입의 콤플렉스로 짓눌린 마음이 치유되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자연스럽고 완벽한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필자의 사명을 다하고 싶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것이 필자에게 큰 축복이자 존재의 이유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