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중랑구 신내동(新內洞)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신내동의 이름을 한자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新內 새로울 신, 안 내자로 안에 새로운 동네라는 이름이다. 이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제 강점기시절 신현리와 내동리의 글자를 한 자씩 따와 합쳐 만든 이름이다. 신현리는 새우개마을이라는 뜻을 한자로 옮겨 신현(新峴)이 되었고 내동리는 봉화산 안쪽에 있어 그리 불렀다고 한다. 1963년을 기준으로 양주군 구리면 신내리에서 동대문구로 편입되며 신내리에서 신내동이 되었고 1988년 중랑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팔자의 눈에 의미 있는 것은 봉화산이다. 이름에 봉화산의 기운이 내재되어 있다. 도시풍수에서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에 인접한 산과 물 그리고 해당 지역의 토지의 기운이다. 봉화산 인근에는 육군사관학교가 있다. 이곳은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년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던 인물들이 배출된 터다.

잠시 봉화산을 살펴보면 이렇다. 봉화산은 여러 산맥이 이어져 있는 산은 아니며 동쪽으로 아차산의 능선이 이어져 있다.

높이 160.1m이며 봉우재라고도 부른다. 1963년 1월 1일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조망으로 도봉산과 양주 일대가 보이며 서쪽과 남쪽으로도 서울이 잘 보이는 조망권이다. 앞에 중랑천이 있고 이 중랑천이 한강과 연결되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인근에 산 중에 남산과 아차산을 제외하면 한강이북권 중 물을 앞에 둔 산으로써는 가장 명산이라 할 수 있다. 중랑구 일대가 산업화 시대에 개발에 밀렸지만 터는 매우 좋은 터였다. 어쩌면 풍수를 보는 이가 이 명당 터를 건드리지 않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봉화산의 이름은 한자로 烽火, 봉화 봉 불 화자를 써 봉화를 피우던 산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과거엔 봉우재라고도 불리던 곳이며 북쪽 양주의 한이산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목멱산(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지난 1994년 11월 7일 봉수대를 복원했다고 한다. 봉화산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으며, 이곳은 약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 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라 하는걸 보면 기운이 센 터로 보인다.

현재 산신각은 1992년 여름에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3일에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산신각(도당)에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봉화산 도당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렇게 봉화산이라는 특별한 기능과 의미가 있으며 제를 지내던 터인 데다가, 조망이 좋아 서울과 경기를 관장할 수 있는 곳에 육군사관학교가 있다는 것은 풍수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신내동에 재건축이나 부동산 개발소식은 없지만 류경기 중랑구청장의 인터뷰를 보면 신내차량기지 이전 및 중랑구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중랑구 신내동의 경우 중랑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이 좋다. 신내IC와 중랑IC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며 북부간선도로가 가로지른다.

별내의 개발도 호재로 보이며 주변에 녹지가 많아 도심휴양을 목적으로 한 개발이나 발달이 진행될수록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는 바람에 의해 움직인다. 바람은 풍수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풍수학문 중에서도 가장 첫 글자다. 이런 바람의 영향을 자연이 막아준다면 산과 물 그리고 나무다. 앞으로 녹지를 유지한 채 도시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이미 명당의 특별한 터인 것은 분명하니 더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