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원할 때와 그들이 필요로 할 때가 맞지 않아서, 여러 번의 제안은 있었지만 제대로 성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이 바닥도 그리 넓지 않다. 아무리 헤드헌팅 업체에서 회사명을 밝히지 않고 업종과 대략적인 업무 환경 얘기만 하는데도, 들어보면 어딘지 금방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국내에서도 꽤 큰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전화를 걸어서 필자를 확인하자마자 장황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당시 필자가 소속된 회사와 업무 상황은 엄청난 데 비해 연봉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혹시나 하며 전화 내용에 은근 마음을 두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몇 마디 더 들어 보니,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모 대기업의 팀장직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통성명도 없었고 얼굴도 알지는 못했지만, 그 회사 팀장이 이직한 지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팀장 역시 2년 전쯤에 다른 팀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드헌터 업체로부터 제안을 받고 이직했고, 당시 근무 중이던 이전 팀장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그 뒤로는 소식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 상황이 다시 반복되면서 필자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약발 떨어지기 시작하면 새 사람 찾는 적폐가

“아, 거기군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혹시 그 회사 상황에 대해 좀 아십니까?”

“예? 저는 그 업체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고 전화 드렸습니다만….”

“당연히 인사 쪽에서 연락했을 것이니, 해당 팀 사정은 모르시겠죠.”

“예.”

“하지만 그 회사는 좀 특이해서 아셔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현재 팀장이 있습니다. 제 실력이면 그 팀장을 제치고 갈 수는 있겠지만, 그분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야 합니다. 아마 그분도 다른 사람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있겠지만요.”

“미처 그런 내용까지는 몰랐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주제넘은 말 같지만, 그런 사정은 아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 죄송합니다.”

그때는 온 세상 기자들을 다 만나고 설치고 다녔을 정도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에 괜히 주제넘게 헤드헌터에게 이러쿵저러쿵 훈계조의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가 났던 이유는 새 사람을 찾던 그 기업이 사람에 대해서 최소한의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와서 효과를 보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서 시들해질 때가 되면, 여지없이 새 사람을 뽑아서 기존에 있던 사람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반복되었다.

식당에도 개업 끗발이라는 것이 있듯이 커뮤니케이터도 새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면 주위 기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인정이라는 것을 베풀게 된다. 그리고 일 년 정도 지나면 자리가 잡혔다는 생각에 요구사항도 늘고, 기업 이슈에 대해서도 깐깐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회사에서는 그 팀장 약발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새 사람을 찾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회사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일하는 사람들은 그냥 소모품이 되는 것이다. 대기업 팀장급 정도의 경험과 연배면 거기까지 들어간 무형적 유형적 투자는 엄청나다. 또, 그 시기이면 자녀들도 한창 돈이 들어갈 때인데, 그런 사정을 모르고 섣불리 내디뎠다가는 수렁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기업마다 경쟁력을 입에 달고 있고, 진정한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들 한다. 말로는 사람이 제일이라 하지만 둘러보면 말과는 딴판인 세상이다.

형편이 나은 기업이라면 인력을 여유 있게 운영하면서 팀원들이 역량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선배들로부터 업무에 대한 스킬뿐만 아니라 외부사람들 만나는 자리에 따라 다니며 네트워크도 넓혀 가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고 인적 역량을 키워가는 길이다. 어느 정도 연차가 되면 기업 측에서도 그런 경험을 인정하여 직급도 높아지고 맡게 되는 일의 질도 달라지게 된다.

PR, IR, 대관 할 것 없이 커뮤니케이션 업무에 있어서는 역량이라는 것이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선수끼리라면 몇 마디만 섞어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그 업무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다면 이해가 불가하다. 이 때문에 어떻게 보면 사람을 길러내는 것보다는 경험 많은 노련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비용이나 효과 측면에서는 훨씬 낫다.

신기하게도 우리나라는 선수층은 지독히도 얇은데 올림픽 같은 데서는 메달을 따내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탄생한 능력이 대단한 한 사람에 기대는 그런 상황에서는 스포츠강국이라고 불릴 수 없다. 피겨스케이팅 종목이 그렇다. 걸출한 한 사람이 줄곧 1등을 도맡아 왔지만, 그 1등 뒤를 좇아가는 2등은 레벨이 한참 아래라, 그가 은퇴한 이후로는 세계무대는 우리나라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배구 팀에서도 브라질 출신의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한 한 팀이 우승을 늘 차지했다. 아무리 외국인 공격수 한 명에게 몰아주는 몰빵 배구라고 손가락질을 했어도, 승리는 그 팀의 차지였다. 어느 틈엔가 구단의 재력에 의한 팀 승리라는 방정식이 트라이아웃제로 변경됐다. 어느 정도 외국인 선수들의 실력이 하향평준화되자 늘 우승을 도맡아 왔던 그 팀은 예전의 성적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런 팀을 강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나무 한 그루 심었다고 사막이 비옥해지지 않아

독립을 해볼까 생각하며 한때 먼저 독립해 회사를 꾸려나가는 선후배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다녔다. 막연하게는 장밋빛 전망을 그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질에 대해 듣게 되면서 이게 아닌데 싶던 차에 모 언론사 데스크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차나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뚱맞게 같이 차 마실 사람이 모 그룹 회장이었다. 첫 대면 자리에서 만난 지 십여 분 만에 다짜고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채근했다. 독립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기에 며칠의 고민 끝에 이직을 택했다.

그간의 노하우를 후배들을 위해서 쓸 생각에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이는 몇 주 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기업 규모가 전에 근무하던 곳들보다는 비교도 안 되게 작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점은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새 사람 들여서 그의 능력으로만 뭔가를 해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이 팀 막내가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 정신이 있었고, 글도 어느 정도 되었다. 배우려는 열성도 있었기에 이런저런 질문도 많았다. 어떤 분야라 하더라도 사회 초년병으로서의 물을 벗고 나면 업무를 잘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선배의 능력에 대한 동경은 가지기 마련이라 많은 것을 알려주려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스케줄을 잡아 나갈 때였다.

“직원들 데리고 미팅 자리에 나가지 마라.”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경고의 전갈이 날아들었다. 차 한 잔, 밥 한 그릇 더 먹어 봐야 비용이 얼마나 늘 것이며, 그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를 해도 뭘 얼마나 성과를 더 올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기자들과 상대하거나 만남을 가질 수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또 한 가지 경고가 다른 팀이나 사업부에 찾아가서 함부로 뭘 물어보거나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회사의 전반적인 돌아가는 상황에 훤해야 한다. 재무적인 것에서부터 영업 마케팅 기획 전략 등. 그런데 알고자 한다면 최고 경영진에게만 물어보고 그가 알려주는 것만 알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안이든 바깥이든 뭔가 할 수 있는 여지를 잘라버린 셈이었다.

불과 한 달 남짓 되었을까, 막내 여직원은 더 큰 세상을 찾겠다면서 사직서를 던지고 나가버렸다. 다행이 금방 이직이 되었는데, 상장을 준비 중이던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실무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중간 중간 전화와 메시지로 필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어느 기자를 처음 만났는데,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필자의 얘기가 나왔고, 기자가 필자를 잘 안다며 반가워했고, 그 뒤로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되어 일이 수월해졌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연락이 반가워 필자는 또 나름대로 추가로 노하우를 전수했다. 결국 사내에서는 불가능했던 후배의 능력 기르기가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가능해졌다.

대규모 이슈들을 진행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쪽팔리기 싫어서’ 늘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 성과를 냈다. 그리고 몇 해 뒤에 재계약하자는 걸 뿌리치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그 순간 그 회사에는 그 업무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회사가 된 것이었다. 그 직후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 몇 달 뒤에 또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또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길러야 내 사람이 된다. 출중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영입했다면 그런 능력과 DNA가 조직 내에 이식되도록 해야 한다. 한 사람이 열 보를 가는 것보다는 열 사람이 일 보 전진하는 것이 조직의 발전이다. 사막에 튼튼한 나무 한 그루 심었다고, 그 땅이 저절로 비옥해지지 않는다. 그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 나무 주위에 다른 나무와 풀들도 함께 자라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