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롱 관람’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나온 용어다. 영국 록 그룹 퀸과 리드싱어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관한 영화라서 개봉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싱어롱 관람 행사가 있다는 기사를 접하니 더 보고 싶어졌다. 싱어롱 관람은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메가박스, 롯데씨네마, CGV 등이 싱어롱 상영관을 따로 준비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영화를 보다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졌다’라는 평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는데, 영화관 관계자가 그 멘션을 보고 이 행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하니 정말 궁금하다.

록 그룹 퀸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밴드였다. 물론 레드 제플린 같은 하드 록 밴드도 인생 밴드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Love of my life’나 ‘We are the champion’ 같은 노래 역시 주윤발의 영웅본색 시리즈만큼 우리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필자의 기억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일반 정규 LP에서나 라디오에서는 들을 수 없었고, 해적판으로만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386들이 이 영화에 미칠 줄은 잘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명곡들이 이들을 떼창으로 인도했을 것이리라.

신문 기사(11월 7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음악을 듣다가 추억에 젖어 울고 말았다’ ‘실제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던 그 공연이 스크린에서 재현되는 걸 보니 목이 메었다’는 40~50대 남성들의 감상평이 올라오면서 관객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기사에서 인용한 CGV 통계를 보면 40대 남성(12.1%)과 50대 남성(6.2%) 관객 비율이 다른 영화보다 2배가량 많았다고 하는데, 과연 음악 하나만으로 이런 현상이 가능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노래를 주제로 하는 영화는 그 전에도 꽤 있었다. 최근에 개봉했던 <맘마미아> 역시 386들이 많이 듣던 아바의 노래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두 영화의 다른 점은 음악의 장르일 뿐일 텐데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점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고 LP바에 가서 친구들과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것이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음악을 둘러싼 맥락, 즉 그들의 청년시대를 느끼고 서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가 궁금한 것은 왜 40~50세대들이 그들의 청년시대를 지금 이야기하고 싶어졌는가다.

50세를 앞뒤로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어떤 이는 이미 퇴직을 했고 또 어떤 이는 퇴직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퇴직 이후라는 몇 년 앞으로 다가온 두 번째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왜 우리가 두 번째 인생이 필요한지를 잘 모른다. 이십몇년을 그냥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제 더 앞으로 갈 길은 없다고 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한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라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로 퇴직이라는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20년 이상 전문화된 영역에서 각자 잘 먹고 잘 살아왔다. 그런데 퇴직하면 내가 갖고 있는 전문성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것은 조직에 기반을 둔 직업적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직장이라는 조직을 나와 혼자 되는 순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진다. 누구나 이 단계에 도착하지만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에 대한 괴리감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게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 토요타의 부활은 ‘타도 토요타’ 라는 자기 부정의 정신에서 출발했다. 삼성은 ‘가족만 빼고 다 바꾼다’는 목표로 변화에 성공했다. 당신은 어떠한가. 현재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나로 변화해야 하는데 그럴 준비는 되어 있는가?

열심히 일했는데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은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까지 전문가는 한 업종에서 몇십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인 지금, 우리가 수십 년간 축적한 경험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보불공평의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모든 정보는 대량 복사되고 빠른 속도로 공유된다. 기술 역시 너무 자주 바뀌어 내가 갖고 있는 현재의 기술이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제 전통 장인이나 농업을 제외한 많은 업종들이 축적된 경험이 소용없는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전문가가 아님을 인정하고, 개인들이 축적한 경험이 모두 합쳐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곳은 아마도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곳이 될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감정이 북받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LP바에 가서 친구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의 막막함이 그 원인일 것이다. LP바가 되었든 영화관이 되었든 근교의 조그만 초막이 되었든, 함께 모여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해보자. 물론 추억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