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처음 아이패드를 위시한 태블릿이 등장했을 당시 일각에서는 데스크톱과 노트북의 종말을 경고했다. 그 예상은 반은 맞았으나 반은 틀렸다. 전체 PC 시장에서 테스크톱과 노트북 비중이 낮아지기는 했으나 완전히 시장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태블릿의 위기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의 패블릿 현상이 강해지며 일반 노트북과 태블릿, 패블릿 스마트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0.1% 증가한 가운데 노트북과 데스크톱 시장도 여전히 평이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4분기 다시 시장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당장 노트북을 포함한 PC 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올해 3분기 글로벌 PC 시장이 인텔 CPU 공급 대란이라는 초유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주요국 중심의 성장세를 유지한 지점이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패블릿 기조를 키워가던 스마트폰이 폴더블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나섰다. 폴더블 스마트폰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고동진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삼성의 폴더블 전략 윤곽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9월4일(현지시간)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폴더블 스마트폰의 시장성을 확인했으며 " 폴더블 스마트폰의 철학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폴더블 스마트폰을 접었을 때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펼쳤을 때 기존 단말기와 비슷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면 소비자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고 사장이 폴더블 스마트폰에 대한 철학은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5회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SDC)에서 일부 구현됐다. 폴더블 스마트폰 전략 일부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시제품 공개가 아닌 약 10초 남짓한 폴더블 디스플레이 시연에 그쳤지만, 삼성전자의 미래 스마트폰 전략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평가다. 

무대에 오른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저스틴 데니슨 상무는 연설과 함께 재킷 안쪽에서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꺼냈다. 안으로 접히는 인폴딩 방식이며 펼치면 7.4인치다.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공개됐기 때문에 실제 구동 기능은 시연되지 않았다. 다만 접으면 외부 디스플레이에 일반 화면을 이어서 볼 수 있고 펼쳤을 때 자연스러운 사용자 경험이 완성되는 것은 확인된다. 가로가 아닌 세로로 접히는 구조며 큰 디스플레이에서는 인터넷 브라우징, 멀티미디어, 메시지 등 3개의 앱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다.

폴더블 스마트폰의 가치를 휴대성에 둔 상태에서 큰 화면으로 다양한 조작이 가능하며, 엣지 디스플레이처럼 굳이 스마트폰을 펼치지 않아도 지속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폴더블 스마트폰의 1차 전략으로 삼았다는 말이 나온다. 데니슨 상무는 이 제품을 인피니트 플렉스 디스플레이로 불렀다.

중국 디스플레이 전문 스타트업 로욜(Royole)이 지난달 31일 세계 최초로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 플렉스파이(FlexPai)를 공개했으나 아웃폴딩 방식인데다 기능성에 큰 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폴더블 전략은 확실히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삼성전자가 원UI를 공개한 대목도 중요하다. 아이콘을 간결히 정리하고 가독성과 접근성을 강화한 원UI는 폴더블 스마트폰과 기존 스마트폰의 연결고리가 될 전망이다. 스마트폰의 상단을 보는 구간으로 정하고 하단을 터치 구간으로 정해 화면이 커지는 폴더블 스마트폰의 조작 인터페이스 사용자 경험을 잡아냈다는 평가다.

▲ 삼성전자의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펼쳐졌다. 출처=갈무리

아직은 신중한 반응...'왜 펼치는가' 증명하라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 전략이 일부 공개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아직 조심스러운 반응 일색이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스마트폰의 가치를 구현했으나 시제품이 아닌 디스플레이로만 기능을 일부 공개했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이러한 반응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일반인들이 참여한 신제품 공개행사가 아닌 개발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위한 이벤트였기 때문에 핵심적인 폴더블 기능만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데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케이싱 디자인도 기밀 유출을 위한 장치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폴더블 스마트폰의 정체성에 있다는 평가다.

개발자 회의에서 데니슨 상무는 폴더블 스마트폰을 접었을 때도 일반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강조했다. 고 사장의 '왜 접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갤럭시노트 엣지를 통해 스마트폰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바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의 연장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올웨이즈 디바이스를 구현한 갤럭시노트 엣지의 기능과 관련된 사용자 경험을 폴더블 스마트폰에도 성공적으로 적용했으나, 그 이상의 비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왜 접어야 하는가'가 아닌, '왜 펼쳐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다.

현재 대부분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대부분 하드웨어 폼팩터가 슬림하다. 간혹 배터리가 폭발하고 디스플레이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도 제조사들의 스마트폰 슬림화 현상에 따른 '실수'라는 말이 나온다.

퀄컴이 지난달 홍콩에서 열린 4G 5G 서밋에서 새로운 QTM 052mmWave 안테나를 공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첨단 빔 포밍, 빔 스티어링(beam steering) 및 빔 트래킹(beam tracking) 기술을 지원하는 가운데 사이즈가 전작과 비교해 25% 줄었다. 현재 모든 프리미엄 스마트폰 하드웨어 폼팩터의 목표는 슬림화다. 뿐만 아니라 내부 칩 등 모든 부품도 실장면적을 줄이는 쪽으로 흐른다. 스마트폰의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최근의 트렌드와 관련이 깊다.

현존하는 스마트폰이 대부분 슬림화 폼팩터를 추구하는 상태에서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왜 접어야 하는가'에만 집중하는 것은 협소한 철학이라는 평가다. 오히려 '왜 펼쳐야 하는가'에 주목한 철학을 내세우며 태블릿을 위협하는 패블릿의 기조를 확장해야 한다. 물론 두 질문 모두 동일한 대답을 가지고 있으나 철학의 방향은 엄밀히 다르다.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을 접었을 때 올웨이즈 디바이스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펼쳤을 때 얼마나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 삼성의 새로운 덱스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9을 출시하며 3세대 덱스도 공개한 바 있다. 초기 덱스는 단순 미러링에 액세서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쓰임새가 낮았다. 그러나 3세대 덱스는 PC와 같은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단축키와 복사, 붙여넣기, 휠 스크롤 등이 가능하다. 사용자 경험은 더욱 ‘슬림’해졌고, 용도는 다양해진 셈이다.

덱스는 스마트폰의 다소 제한적인 사용자 경험을 일반 모니터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즉 스마트폰의 좁은 디스플레이를 넓은 화면으로 끌어내며 '왜 디스플레이를 펼쳐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을 보여줬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구글의 크롬캐스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광의의 개념으로 모바일 미디어 플랫폼 시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대화면 UHD TV 시대가 확장되는 장면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사용자 경험은 확장되고 있으며, 이미 이러한 시도는 벌어지고 있고,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도 철학의 방향을 접는 것이 아닌 펼치는 쪽을 향해야 한다.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철학의 방향성이 다르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항상 훌륭한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면서도 다소 아쉬운 철학의 부재로 마지막 고지를 넘지 못한 아픔이 있다. 폴더블에서는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