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통신사들이 운영하는 IPTV가 케이블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 전반의 지각변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인수합병 이뤄질까
IPTV 업계의 케이블 인수 시도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현 CJ헬로) 인수 시도다.

지난 2015년 11월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인수해 유료방송 업계의 맹주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2016년 4월까지 지분인수를 마치고 SK텔레콤의 100%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를 CJ헬로비전에 흡수시킨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할 경우 시장의 질서가 흐려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장 경쟁 IPTV를 비롯해 지상파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방송협회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불허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현행 방송법과 개정중인 통합방송법의 방송사업자간 소유제한 규정에 위배될 뿐더러, 방송시장을 급격히 황폐화시킬 수 있고,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방송협회는 “IPTV사업자의 소유 겸영 제한을 명시하고 있는 통합방송법을 국회에 발의한 부처는 미래부이다. 미래부가 관련 법안을 직접 발의해놓고 이에 어긋나는 인수합병을 승인해준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라며 “일자리도 4만8천명이나 늘어난다고 주장하지만 중복 업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는 줄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세기의 빅딜은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6년 7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경쟁제한적 우려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기업결합 자체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질적 성장을 이끌고, 나아가 소비자 후생 증대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추진했다”며 “그 동안 SK텔레콤은 최선을 다해 이번 인수합병의 당위성을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 관계기관을 설득하지 못하고 불허 결정을 받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후 유료방송 업계는 IPTV 업체의 몸집 불리기와 케이블 업체의 위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심각한 양극화에 시달렸다. 지난 4월 제주에서 열린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기자회견에서 김성진 회장이 "케이블TV가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면서 "제4이통사 설립으로 유효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케이블의 비전과는 별개로, 현재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평가다.

유료방송 업계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가운데 올해부터 IPTV 업체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아지고 있다. ICT 기술의 도입, 키즈 콘텐츠 강화 등 다양한 카드를 꺼내들며 광폭행보를 벌이는 한편 인수합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IPTV 업계 1위 KT가 움직이고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일몰을 계기로 강력한 마케팅과 인수합병 카드를 동시에 꺼내들 조짐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전체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중 특정 기업이 33.3% 이상 점유율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IPTV 1위 사업자이자 위성방송까지 보유한 KT의 전체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은 31% 수준이며, 규제가 사라지면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KT스카이라이프가 지난 5월24일 성명을 통해 "합산규제가 일몰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케이블 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성명을 통해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일몰되면 시장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면서 “그 피해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산업의 부담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IPTV 시장에서 활동하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도 유료방송 합산규제 일몰을 줄기차게 반대했다.

결론은 KT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지난 6월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일몰되며 KT의 행보에 거칠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회 일각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요원하다는 평가다. KT는 이 기세를 몰아 케이블 딜라이브 인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도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놓쳤던 CJ헬로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올해 초부터 한국거래소가 LG유플러스에 CJ헬로 인수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할 정도로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설이 파다하다. LG유플러스는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하현회 부회장이 새로운 동력 확보를 위해 CJ헬로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글로벌 OTT 사업자 넷플릭스와의 협력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3위 IPTV 사업자 LG유플러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한 때 CJ헬로가 딜라이브를 인수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계의 상황은 일종의 시계제로에 빠져있다.

▲ 하현회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LG

문제는 없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년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보고서 보면, IPTV 시장에서 KT는 20.21%, SK브로드밴드는 13.65%, LG유플러스는 10.89%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KT의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는 10.33%다. 케이블 플랫폼인 MSO는 CJ헬로가 13.10%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티브로드가 10.24%, 딜라이브가 6.54%, CMB와 현대HCN이 각각 4.93%와 4.28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KT가 합산규제 33%를 넘어 외연을 확장하는 한편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에 성공하고 SK텔레콤이 깜짝 카드를 꺼내들면 유료방송 업계는 사실상 IPTV 체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디어 시장 독과점 우려가 나온다. ICT 플랫폼 인사이트 연구소의 박천구 부소장은 "외국의 사례를 봐도 통신사들이 미디어 회사를 인수하는 사례가 많으며, 이러한 현상은 업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도 "다만 외국은 글로벌 시장을 중심으로 콘텐츠 사업을 전개하려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에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결국 인수합병에 나서는 통신사들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염두에 두어야 시장성과 시장 독과점 논란 제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