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채식주의에서 유래한 ‘비건’이 최근 화장품 업계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원래 비건은 동물성 재료가 포함된 음식은 먹지 않고 채소와 과일만 섭취하는 완전 ‘채식주의자’를 의미하는 용어다. 요즘은 동물로부터 얻은 원료로 만들어진 제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비건 라이프스타일’도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비건 화장품은 일체의 동물성 성분을 포함하지 않고, 성분개발 과정에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을 뜻한다. 최근 건강과 안전, 환경문제 등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화장품 성분은 물론 제조 과정까지 꼼꼼히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는 채식주의자와 반려동물 가구의 증가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커져가는 ‘비건 화장품’ 시장

비건 화장품의 선호도 증가는 해외 뷰티 시장의 트렌드가 국내로 옮겨온 것이다. 미국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의 조사 결과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2년 전부터 연평균 약 6.3% 성장하고 있다. 오는 2025년에는 208억달러(23조2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화장품 업계에선 비건 화장품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H&B스토어 올리브영의 올해 1~9월 매출 중 국내 비건 화장품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0% 늘어났다. 올리브영 커뮤니케이션팀 안창현 과장은 “비건이 매출에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국내 비건 화장품 업체 아로마티카의 경우 지난 1년간 매출액이 100% 늘었고, 다른 비건 화장품도 비슷한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글로벌 화장품 산업이 최근 2년간 연평균 5% 이상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친환경과 천연원료를 기반으로 한 화장품 시장을 중심으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코트라는 “식품부터 의류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건강을 위해 자연 성분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화장품 산업까지 넘어온 것”이라면서 “천연원료와 환경 친화적 제조가 구매 시 중요한 고려 요인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향후 2022년에도 착한 화장품이 해당 산업 성장을 주도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기초부터 색조까지 ‘비건 화장품’이 대세

비건 제품에 대한 글로벌 선호도가 높아짐에 따라 국내 뷰티업계에서도 비건 인증을 취득하거나 관련 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이 늘어났다.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전문기업 코스맥스는 지난 10월 프랑스 인증기관 EVE(Expertise Vegane Europe)에서 아시아 최초로 화장품 생산 설비에 대한 비건 인증을 획득했다.

▲ 코스맥스 화장품의 생산라인. 출처=코스맥스

원료부터 완제품·포장재·패키지까지 화장품의 전 요소를 비동물성 소재로 구성할 수 있음을 확인받은 셈이다. 이 회사가 비건 인증에 도전한 것은 국내에서도 비건·친환경 화장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이미 글로벌 화장품 시장은 비건, 할랄 등 친환경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졌다”면서 ”각 시장별로 특화된 인증을 통해 글로벌 고객사들의 다양한 니즈에 맞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아모레퍼시픽의 비건 화장품 '가온도담'은 온라인에서 시작해 서울 연남동에 단독 쇼룸을 오픈할 만큼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출처=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등 기존 뷰티 기업도 주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니스프리는 지난 9월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에서 커피 오일을 추출해 만든 ‘앤트러사이트’ 커피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니스프리 마케팅 담당자는 “커피 찌꺼기는 잘 썩지 않기 때문에 토양을 파괴하는 주범 중 하나였다”면서 “환경 쓰레기도 줄이면서 식물성 원료로 환경 친화적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 이니스프리의 커피 찌꺼기에서 커피 오일을 추출해 만든 ‘앤트러사이트’ 커피 시리즈 제품. 출처=아모레퍼시픽

라네즈는 지난 3월 영국 비건 협회에서 유기농 인증 마크인 비건 인증마크를 받은 ‘뉴 워터뱅크 에센스’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올해 1~9월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지난 5월 프리메라가 선보인 ‘내추럴 스킨 메이크업’ 라인은 처음부터 비건 인증을 받아 출시했다. 프리메라는 올해로 7년째 지구생명 원천인 생태습지를 보호하고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치며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집중하고 있다.

▲ 라네즈의 '뉴 워터뱅크 에센스' 비건 화장품. 출처=아모레퍼시픽

해외 브랜드 중에서는 지난 6월 말 국내 론칭한 미국의 대표 비건 색조 화장품 ‘아워글래스’가 돋보인다. 수입 판매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10월 아워글래스 매출이 목표치의 120%를 달성했고, 이달 들어선 매출 목표의 232%를 기록 중이라고 밝혔다.

▲ ‘비건’ 콘셉트를 내세운 색조 화장품 아워글래스의 제품. 출처=신세계인터내셔날

KT CS의 유기농 화장품 ‘루트리’는 지난 9월 미국 럭셔리 쇼핑몰 ‘사우스 코스트 플라자’에 입점하면서 브랜드 콘셉트의 도움을 받았다. KT CS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이런 비건 제품들을 찾는 고객층이 확고하게 성숙돼 있고, 이에 힘입어 입점 과정에서 MD에게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루트리 역시 올해 1~9월 누적 국내외 매출이 전년 대비 59% 올랐다.

 

‘비건 화장품’ 어떻게 구별할까?

비건 화장품은 제조과정이 까다롭다. 천연 성분이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아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로마 성분은 피부에 자극을 줄 수도 있어 안전성 검증도 필요하다. 비건 화장품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제품을 찾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미국의 ‘비건 액션’,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등 유명 채식협회의 정식 인증과 전 제품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리핑 버니(깡충 뛰는 건강한 토끼 상징)’ 인증 등이 제품에 표기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비건 화장품의 인증의 '리핑버니' 표식. 출처=리핑버니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말기름으로 만드는 마유크림이나 달팽이크림,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스쿠알렌, 꿀, 콜라겐 등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지 않았는지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자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면 국내 동물보호단체 카라 등 자체 자료 수집을 통해 동물 실험·동물성 원료를 배제한 비건 회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 이를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한준 한국채식비건협회 국장은 “이미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비건 제품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어 국내도 이를 따라 비건 산업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국내에서도 올해 협회가 구성된 만큼 정부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소비자들이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지원 사업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동물성 라놀린, 합성 향기나 색상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화장품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친환경적 성분을 활용한 비건 브랜드는 소비자들도 직접 윤리적 소비를 한다는 느낌에 높은 만족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