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Ag(OpenAg)의 창업자 칼렙 하퍼가 MIT 실험실에서 향이 최적화된 바질(허브의 일종)을 검사하고 있다.  출처= MI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뉴텔라(Nutella) 잼을 만드는 이탈리아의 제과회사 페레로(Ferrero)는 항상 헤이즐넛 수급에 문제가 있었다. 헤이즐넛의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전 세계 헤이즐넛의 70%는 터키의 흑해 연안에서 자라는데, 이 지역이 우박 폭풍과 늦은 서리로 헤이즐넛 수확이 황폐화되었기 때문이다.

페레로는 2016년에 MIT 미디어 랩(MIT Media Lab)의 오픈 어그리컬처 이니셔티브(Open Agriculture Initiative, OpenAg)에 가입했다. OpenAg는 고온 현상, 산불, 가뭄, 전쟁, 간혹 발생하는 방사능 유출 같은 재해가 발생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작물을 안전하게 재배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MIT의 핵심 연구소 중 하나다.

OpenAg는 페레로를 위해 강철 구조물과 스티로폼 패널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냉장고 같이 생긴 실내 농장을 만들고 이 실내 농장을 헤이즐넛 컴퓨터라고 명명했다. 실내 농장 안에는 16그루의 헤이즐넛 나무가 자라고 있다. LED 조명으로 태양을 시뮬레이션하고, 공기 온도, 습도, pH 농도, 이산화탄소 농도, 물 공급 등 모든 변수를 인공 지능으로 제어해 최적화 조건을 만든다. OpenAg의 알고리즘이 이상적인 헤이즐넛 재배법을 결정하면, 페레로는 그것을 전 세계 각 지방의 기후 및 토양 데이터와 비교해 가장 비슷한 조건의 새로운 농장을 찾는다.

OpenAg의 설립자인 칼렙 하퍼 연구소장은 “우리는 그것을 기후 탐색(Climate Prospecting)이라고 부른다. 페라로는 재배 농장을 거대한 나무 상자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퍼의 거대한 상자를 찾는 곳은 페레로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 타깃(Target)은 부패하기 쉬운 약초인 바질(Basil, 허브의 일종)의 향을 최적화하고 매장에서 가까운 곳 또는 매장 내부에서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OpenAg의 도움을 요청했다. 웰스펀 인디아(Welspun India)라는 회사는 물과 인력이 적게 드는 목화를 재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페레로, 타깃, 월스펀은 MIT 미디어 랩에 도움을 요청한 80개 이상의 회원 중 일부로, 연구에 협력하기 위해 최소 연간 25만달러(2억8000만원)의 비용을 부담한다.

MIT에서 도시 계획을 연구하던 2011년에 하퍼는 일본 후쿠시마를 여행했다.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된 직후였다.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를 연구하기 위해 갔지요. 농작물 재배에 대해서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AI가 통제하는 퍼스날 푸드 컴퓨터(Personal Food Computers)로 이상적인 기후를 만들어 작물을 재배한다.  출처= MIT

하퍼는 텍사스 중부의 한 농장에서 자랐고, 후쿠시마의 황폐한 풍경은 그의 고향을 생각나게 했다. 후쿠시마의 농민들은 핵 유출과 쓰나미가 다가올지 모른다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퍼는 “그런 재앙을 겪은 곳에서 다시 안전하고 지속적인 기후를 설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회상했다.

보스톤으로 돌아온 그는 전공을 바꿔 기후 재건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고 그것이 OpenAg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과학자와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Noma)에서 일했던 과학자들이 합류했다.

벤처 캐피탈 옵비우스 벤처스(Obvious Ventures) 난 리 전무는 ‘농업을 최적화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관한 한 하퍼가 최고의 ‘사상적 리더’라고 부른다. 난 리는 OpenAg가 민간 스타트업이었다면 금방 유니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실내 농업 회사와는 달리 OpenAg의 정신은 공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질의 재배법에서부터 페레로나 타깃과 함께한 연구 결과까지 그들이 연구하는 모든 것은 오픈 소스다. 하퍼는 모든 조건이 통제된 실내 농장이든 연구에 의해 탐색된 지역이든 이상적인 제조법에 따라 작물이 재배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하퍼는 OpenAg의 재배법에 접속하는 것은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만큼 쉽다고 말한다.

OpenAg의 연구실에 실내 농장을 하나 만드는 데는 약 10만달러의 비용이 든다. OpenAg는 지난 10월에 실험실과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제어되고 한 번에 네 그루의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12인치×12인치(30cm×30cm) 큐브의 퍼스널 푸드 컴퓨터(Personal Food Computer, PFC)를 공개했다. 현재 PFC의 제작 비용은 700달러인데, 하퍼는 앞으로 몇 년 내에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PFC는 이케아 가구처럼 평평한 곳에 설치할 수 있으며 조립할 도구나 볼트도 필요하지 않다. 비상시에 음식을 재배하기 위해 전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다.

▲ OpenAg의 퍼스널 푸드 컴퓨터의 제작 비용은 현재 약 700 달러인데, 하퍼는 앞으로 몇 년 내에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출처= MIT

처음 제작되는 60대의 PFC는 보스턴 지역 공립학교 25곳을 대상으로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내년 1월에는 PFC 키트를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그는 PFC가 OpenAg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 걸친 수천명의 사람들 – 이들은 자신들을 얼간이 농부(#NerdFarmers)라고 부른다 - 에게 큰 호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 기술이 기후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지구에서 농작물 재배 지식을 널리 보급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요리 관련 단체인 제임스 비어드 재단(James Beard Foundation)의 미첼 데이비스 최고전략책임자(CSO)는 하퍼의 연구소가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도 커다란 보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리사들에게 하퍼 연구소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들의 눈은 밝게 빛난다”고 격찬했다.

하퍼는 역사적인 농작물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와인까지도 그의 실내 농장에서 재창조되는 날을 상상한다.

“1982년산 최고의 보르도 와인을 만든 포도를 실내 농장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