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이었을 때부터 보석에 대한 눈썰미가 있어 보석 사업을 하고 싶었던 애디나 캄크핫치는 현재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둔 수백만 달러 매출 회사의 CEO가 되었다.   출처= Adina’s Jewel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애디나 캄크핫치는 대학생이었을 때부터 보석에 대한 눈썰미가 뛰어났으며, 보석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가진 돈이 별로 없었다.

“값비싼 보석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고 저렴하고 품질 좋은 보석은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장신구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당시 애디나는 브루클린 칼리지의 신입생이었고 1주일에 수업이 이틀밖에 없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지요. 어머니에게 보석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적극 찬성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저축했던 1000달러의 돈을 가지고 애디나는 도매상에서 구슬, 진주, 돌, 가죽 줄, 체인 등과 같은 재료를 구입해 부모님 집의 부엌 식탁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에 할머니 때부터 물려받아 온 이름인 애디나의 이름을 따 ‘애디나 보석’(Adina’s Jewe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느 정도 제품을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면서 고객에 접근하기 위해 뭔가 더 좋은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동네 수영복 가게 주인을 찾아가 그녀의 보석을 가게 탁자에 진열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 아이디어는 잠시 동안 효과를 내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판매가 줄기 시작했다. 수영복 사업 자체가 여름에만 찾는 사람이 많을 뿐 비수기에는 찾는 사람이 적어 판매량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님은 마을 중심가에 있는 미용실에서 물건을 팔자고 제안했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미용실은 (계절에 관계 없이) 연중 고객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물건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판매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로부터 4년 후, ‘애디나 보석’은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 수만명의 팔로워들의 관심을 끌면서 수백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되었다. 현재 애디나의 회사는 브루클린에 매장을 운영하면서 웹사이트를 통해 600여가지의 보석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배우 겸 가수인 아리아나 그란데, 배우 겸 모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패션가의 유명 모델인 벨라와 기가 하디드 자매 같은 유명인들이 애디나 보석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대한 애디나의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애디나의 목걸이, 귀걸이, 반지, 팔찌가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초심이었던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같이 부유한 집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아름다운 보석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처음부터 꿔왔던 꿈이니까요.”

애디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작품을 직접 디자인한다. 그녀가 디자인한 순은(純銀) 제품과 14k 금도금 제품들은 50~250달러(5만~30만원)에 판매된다.

▲ 애디나 보석은 배우겸 가수인 아리아나 그란데를 모델로 삼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출처= Adina’s Jewel

“자신의 보스가 되라”

애디나의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녀의 오빠인 메이어 캄크핫치가 회사에 합류했다. 그가 합류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회사의 웹사이트를 완성했다.

다음 단계는 회사의 브랜드에 관한 소문을 널리 퍼트리는 일이었다. 메이어는 “소셜 미디어에서 패션에 영향을 미치는 패션 블로거들을 접촉했고, 그들이 우리 제품에 대한 호평을 자신의 블로그에 계속 올려주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성장의 돌파구가 되었다. 회사의 웹사이트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매출도 함께 크게 성장했다. 메이어는 “눈덩이처럼 매출이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문은 계속 퍼져나갔다.

메이어는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 겸 가수인 아리아나가 우리 반지를 착용한 것을 보고, 같은 반지를 원했다”고 말했다.

메이어는 18~34세 사이에서 브랜드 인기도가 매우 높다며 그들을 ‘핵심 패션 포워드’(Core Fashion Forward,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애디나의 보석은 14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메이어는 운영 및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고, 애디나는 제품 디자인 및 고객 관계(Customer Relations)에 집중하고 있다.

두 남매에게 기업가 정신은 매우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목표였다.

부모님은 모두 어려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였다. 아버지는 25세에 시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고, 어머니는 16세에 이스라엘에서 미국으로 왔다. 메이어에 따르면 아버지는 시리아에서 방직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현재 부모님은 각각 다른 회사에서 판매 일을 하고 있다.

애디나는 “부모님은 항상 우리가 독립적으로 우리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기를 바라셨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애디나의 어머니는 애디나가 (남의 회사의) 종업원 그 이상이 되라고 격려했다.

“어머니는 제게 ‘애디나, 다른 누구를 위해서 일하지 말고 네 자신의 상사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애디나와 메이어 두 남매는 어머니의 충고를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립글로스나 헤어 액세서리 같은 것을 팔았지요. 그때도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일찌감치 다 팔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 더 어렵다”

애디나와 메이어는 지금까지도 ‘애디나 보석’ 운영에 자금을 차입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업의 모든 측면을 직접 관리했지요. 힘들긴 하지만 그래야 믿을 수 있으니까요.”

회사는 2016년에 첫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다. 이웃의 한 매장이 문을 닫자 애디나는 재빠르게 그 매장을 인수했다.

“매장의 크기는 500ft2(14평)로 보석 매장으로는 적당한 크기에 불과했지만, 매장을 갖는다는 것은 회사에 일종의 권위와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부모님 집 한켠에서 작업을 해오다, 지난 8월에 드디어 사무실을 얻어 이사했다. 현재 애디나 보석에는 12명의 직원들이 마케팅, 웹 디자인, 포장, 그리고 국내외 배송 일을 하고 있다.

두 남매는 자신들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것이 부모님 덕분이지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성장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업 조언이 필요하면 늦은 밤에 전화를 해도 항상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