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장안동(長安洞)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장안평은 조선시대 목마장으로 유명했던 ‘장안벌’, 즉 장안평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목마장이란 말을 기르던 곳을 말한다.

장안평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운영하며 말을 기르던 목마장의 일부이고, 목장 안쪽의 벌판이라고 해 ‘마장안벌’로 부르던 것이 ‘장안벌’로 줄어들었다. 이를 한자음으로 표현한 것이 장안동이다.

조선 후기부터 1936년까지 이곳은 마장리라고 불렸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마장리가 되었으며,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마장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뀌어 성동구 마장동이 되었다.

즉 이 터는 오래 전부터 말을 키우던 곳이었다. 현재 장안동은 중랑천 옆에 있으며 맞은편으로 중곡동이 있다. 장안동 중심사거리 기준으로 서북방에 배봉산이 있고 오른쪽에는 용마산이 있다.

배봉산은 산세가 약간 산이고 용마산 앞에 중랑천이 있어 산의 기운을 이어받지는 못했다. 풍수에서 산의 기운은 물의 기운에 의해 끊긴다. 지난번 마장동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물이 앞에 있는 터는 장터의 기운으로 발달한다. 배를 띄울 수 있어 무역업이 용이해서일 수도 있고 부지활용에 있어서 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장안동의 중랑천은 직선이 아닌 약간 활처럼 휘어 있는 모양인데 안으로 굽지 않고 밖으로 볼록하게 휘어있다. 이 역시 마장동에서 언급한 것처럼 볼록 튀어나오면 나가는 물건을 취급함에 용이하다. 도매업이나 수출업, 키워서 내보내는 것에 유리하다. 이것은 풍수에서의 음양(陰陽)의 이치에 있다. 음은 안으로 끌어당겨 모으고 응축하는 기운이고 양은 튀어나와 있으며 밖으로 내보내고 발산하는 것이다.

마장동은 도로가 직선으로 잘 뻗어 있고 구간별 도로도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인접으로 동부간선도로와 내부간선도로 진입이 수월하며 용마산터널을 통해 고속도로 진입도 수월해 강북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장점이 많다.

사실 장안평은 말을 키우던 곳보다는 우리에게 중고차시장으로 매우 유명하다. 중고차는 장안평이라는 등식이 있었다고나 할까. 1979년 11월 약 1만평의 대지에 중고차 전시장만 약 6000평으로 64개 업체가 모여 개장된 대규모 중고차 매매시장이다.

과거 조선시대부터 말을 키우던 곳이어서일까? 지금까지 우리에게 중고차시장으로 역사가 이어진다는 것은 이 터가 탈 것과 관련된 남다른 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지리적 여건으로 보더라도 중고차시장이 자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풍수적으로도 장터의 요건으로 내보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장안평 중고자동차 시장은 과거에 비해 명성을 많이 잃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인터넷 기반 직거래와 유통방식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장안평의 가장 큰 상업적 업종은 중고차 관련 매장임은 분명하다.

2015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장안평 자동차산업 복합단지 조성’를 발표했다. 시는 50만8390㎡ 규모에 축적된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자동차 매매, 부품 산업을 활성화할 계획으로 튜닝산업과 재제조산업(중고부품 재생산)을 새롭게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현재 제재조산업 또 한편으로 도시광산산업으로 현재 추진 중이다.

말을 키우던 지역에서 중고차시장으로 현재까지 100년이 넘도록 역사가 진행 중인 이 터는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터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터는 내보내는 기능을 하는 장터의 터로써 그 매개체가 바뀌더라도 지속될 것이다.

이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국가의 정책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탈 것을 취급하는 기운이 점차 약해지지만 장터의 터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