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러 경제전문기관들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7% 이내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동산 버블, 주가폭락, 가계부채 증가, 내구재 소비부진 등 많은 경제 지표들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간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예측이 틀리면 좋겠지만 그렇더라도 미리 겪은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는 ‘학습효과’가 큰 만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만일 일본의 1991~2011년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일본 소비자들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첫째 소비를 줄이는 계층, 둘째 소비를 억제하는 계층 그리고 여유가 있는 계층이다.

우선 각각의 특징을 보자. ‘소비를 줄이는 계층’은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인데 가능한 한 지출을 줄이고 절약과 저가격을 지향하게 된다. ‘소비를 억제하는 층’은 비교적 소득에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불황기에는 이전 생활수준을 유지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소비를 줄이는 계층과 동일하게 절약을 한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층’은 비교적 부유층이기 때문에 경기가 좋을 때만큼 눈에 띌 만한 구매는 하지 않지만, 구매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각 계층별 소비성향도 다르게 나타났는데 불황이지만 꼭 사야 하는 상품, 즉 생필품은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구매를 한다. 다만 차이점은 ‘소비를 줄이는 층’과 ‘소비를 억제하는 층’은 구매량을 줄이거나 저가상품으로 기대치를 낮춰 구매했다. 이들 두 계층은 백화점에서 구입하던 것을 디스카운트스토어에서 구입했고, 그마저 여력이 안 되면 신상품을 구매하는 대신 리사이클 제품을 이용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의 ‘전국소비실태조사’를 보면 디스카운트 및 양판점에서 사용한 금액이 94년에는 1인당 월평균 5400엔이었지만 10년 뒤인 2004년에는 2배 이상 늘어난 1만3000엔이었다.

그렇다면 업종별로 어떤 소비변화가 있었는지, 실제로 비싼 업종들은 잘 안 팔렸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업종의 소비패턴을 일반화해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대표적인 업종 몇 가지를 들여다보면 확실히 저가업종이 눈에 띄게 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일단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업종으로는 가계 소비지출 총액(100%)을 기준으로 백화점은 9.7%에서 8.1%로, 일반 소매점은 41.6%에서 31.8%로 나타나 비싸거나 정상가격 판매점 이용률은 줄었다. 하락폭이 큰 또 다른 업종으로는 고가인 보석 전문점이 11.2% 감소했고, 불요불급한 악기 및 CD 전문점 등은 7.2%, 신사복 전문점은 5.7% 떨어졌다.

반면 늘어난 업종으로는 디스카운트스토어가 3.6%에서 9.8%로, 통신판매(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쇼핑몰)는 1.5%에서 2.8%로 각각 늘었다. 또한 슈퍼마켓은 29.4%에서 32.8%로 비중이 늘었고, 편의점도 1.1~1.8%로 배 가까이 늘어났다. 변화가 거의 없는 업종은 생활협동조합인데 5.6에서 5.5%로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충성도 높은 조합원 덕분이다.

가계지출 비중이 늘어난 또 다른 업종으로는 캐주얼 의류(+7.3%)와 해외여행자다. 여기서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늘어난 해외여행자 수인데 사실 일본 국내여행보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가까운 해외여행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황 스트레스를 저가 해외여행으로 풀어보려는 심리도 작용했다고 일본의 한 연구소는 분석했다.

해외여행자가 늘어난 이유를 우리나라 상황에서 조금 더 들여다보자. 경제 위기설이 나돌던 2016년 추석 때 해외관광을 떠난 여행자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매년 휴가철이면 최고치를 갱신 중이다. “이 불경기에 무슨 해외여행이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주 가던 국내여행을 줄이고 그 돈을 모아서 단기 저가여행을 가는 것이다.

주요 여행국을 보면 일본 36%, 중국 21%인 데 반해 미주와 유럽을 합해 9.6%에 불과했다. 단기적 저가여행에 집중됐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남녀 비율이 46대 54인데, 그 가운데 20~30대가 47%로 절반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뜯어보면 젊은이들이 여유가 있어서 간 게 아니라 불황으로 인한 피로감 회복과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이성소비 행태로 봐도 무방하다.

요약하자면 백화점 같은 비싼 업종은 매출이 많이 줄어든 반면 디스카운트스토어나 생활밀접 업종, 예컨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은 많이 늘었다. 장기불황 시대에는 중산층 이하 소득자는 저가로 수렴하고, 고소득자는 구매횟수는 줄이지만 상품의 질은 그대로 유지하는 소위 지성소비 행태를 보였다. 특이한 점은 그 당시 통신판매가 고도 성장기를 누렸는데, 이유는 맞벌이가 늘어나고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보니 여유롭게 쇼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기 수혜업종은 따로 있었다. 언급한 디스카운트스토어와 리사이클 상품을 비롯해서 100엔숍, 280엔 덮밥, 삼각주먹밥, 조각과일, 청바지, 비즈공예 등이 히트반열에 올랐다. 당시 유행어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는데,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92년 유행어는 다운사이징, 94년에는 ‘가격파괴’였고, 2007년에는 ‘무제한 음식’이었다. 94년부터 2년간 방영된 당시 드라마 가운데 <집 없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대사 중에 히트했던 말이 “동정하려면 돈을 달란 말이야”였을 정도로 생존에 더 무게가 실렸던 때다.

반면 한번 올라간 소비 수준이 쉽게 후퇴하지 않는 현상 즉, ‘톱니효과’로 명품의류에 익숙했던 계층은 소득이 줄었지만 무명브랜드를 입지 않고 구매횟수를 줄이거나 중고명품점을 찾았다. 여러 명품을 한자리에서 20~30% 싸게 파는 편집매장이나 중고명품점이 상종가를 친 시기가 바로 잃어버린 10년 차의 시기다. 우리나라도 병행수입제가 허용된 96년부터 편집매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IMF 직후에 청담동을 중심으로 중고명품점이 들어선 점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가 싼 것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인의 구매행동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값은 싸지만 실제로 품질은 뒤지지 않는 제품’을 주로 구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보면 불황이라도 무명보다 유명메이커를 선호했는데 2000년에 32.9%이던 것이 2003년에는 34.1%, 2006년에는 38.4%로 오르더니 다시 3년 뒤인 2009년에는 44.3%까지 올랐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소위 가성비를 따진다.

반면 “어찌됐건 싸면 무조건 산다”는 소비자는 2000년에 50.2%였지만 10년 뒤인 2009년에는 45.4%로 5%가량 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싼 가격이 소비의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단일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횟수가 줄게 되면 결국 싸게 팔아야 기업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소비행태의 변화를 보면 창업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업종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업종보다 전통업종으로, 퓨전음식보다 단품중심으로, 양식보다는 면류업종으로 가는 것이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격은 중가는 없고 ‘하이앤로우(High and Low)’ 정책이 유리하다. 무엇보다 창업자들에게 과거와 같이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창업보다는 자존감을 살리면서 사회참여에 가치를 둔 자세가 멀리 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