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부터 1943년까지 구(舊) 일본제철(지금의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인 고(故) 여운택 등 원고들은 2005. 1.경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2005. 2.경 일본 기업인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 2심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하였으나, 대법원은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판결(이하 제1차 대법원 판결)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제1차 대법원 판결 이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어 온 2심은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라 피고가 원고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위자료 1억 원씩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피고는 이에 불복하여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지난 30일 대법원은 피고가 원고들에게 위자료 1억 원씩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을 받아들여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 땅에서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의 일이다.

 

- 이번 사건 관련하여 대법원이 심리대상으로 삼은 쟁점은 크게 4가지였다

우선은 원고들 중 일부가 2005년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일본 법원에서 패소, 확정된 사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은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국내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 확정된 것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은 일본 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이 ‘판결의 내용과 소송절차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하여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3호에 위배되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밖에 피고인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는 구 일본제철이 원고들에게 부담하고 있는 손해배상책임을 피고가 당연히 승계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만약 피고가 그와 같은 법적 책임을 승계한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인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피고에 대하여 청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구 일본제철과 별개로 볼 수 없어 피고는 구 일본제철의 법적 책임을 승계하게 되고,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으므로, 피고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남은 쟁점은 ‘한일 간의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도 소멸하는가?’였는데, 여기에는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렸다. 우선 다수의견인 7인의 대법관은 한일청구권협정에는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아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 도의적 책임을 언급한 것에 불과했고 당시 타결된 3억 달러의 무상지원 합의도 법적 책임에 의한 배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금액이 적다는 것이다. 다수의견과 견해는 같으나 이유가 다른 이른바 별개의견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제1차 대법원 판결에서 판단된 바가 있어 재론할 여지가 없다는 의견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이는 그 청구권에 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한 것이지 원고들이 대한민국 내에서 피고르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권리는 여전히 잔존한다는 의견이 존재했다. 물론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반대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어쨌든 원고들은 13년 8개월의 지리한 소송 끝에 피고에 대하여 각 1억 원 씩을 배상받을 수 있는 권리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 이번 판결이 향후 재판에 미칠 영향과 집행 가능성은?

이번 판결은 현재 일본강점기 강제징용 관련하여 법원에 계류 중인 다른 사건들에도 일종의 ‘리딩 케이스’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는 일종의 판례경향이나 법리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소송을 청구하는 원고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일본강점기에 강제징용을 당했고,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법원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입증을 해야 한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의 입증책임은 전적으로 원고에게 있으므로, 입증부족에 따른 책임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판결과 같이 소송에서 승소, 확정된 경우라도 과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들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만약 피고인 일본기업들 소유의 재산이 국내에 있다면, 이를 대상으로 강제집행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비롯한 강제징용과 관련한 일본기업 대부분은 국내에 특별히 집행 가능한 재산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피해자들은 대한민국 법원에서 승소, 확정된 판결을 근거로 일본 법원으로부터 일본 내에서 이들 재산을 집행할 수 있는 권원을 얻어 집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는 있겠지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하여 이미 패소 판결을 내렸던 일본 법원이 과연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집행 승인을 해 줄 지는 미지수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자신들의 젊음을 빼앗긴 노인들에게 이번 소송, 그리고 이와 유사한 후속 소송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결코 금전적으로 배상받지 못할 것에 대한 ‘명예소송’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