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e스포츠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즈음인 2000년대 초반 한 공영 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을 게스트로 불러놓고 사회자는 이런 질문을 했다. ‘게임을 하면 누군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십니까?’, ‘임요환 선수도 사이버머니가 1억원이 넘습니까?’, ‘게임 중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그 정도로 게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역경을 딛고 e스포츠는 지난 20여년간 발전했다. 산업 규모와 대중의 인식 모두 그렇다. 이제는 정부에서도 e스포츠를 진흥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관련 지원을 하고 있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나아졌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올해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채택돼 전 세계에 인기를 여실히 드러냈고, 그 중심엔 한국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e스포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 게임 산업이 발전하고 프로게이머가 등장하면서부터다. 특히 2000년 21세기 프로게임협회(현 한국 e스포츠 협회) 창립 행사에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축사에서 이 단어를 언급하며 널리 퍼졌다고 알려졌다.

 

스타크래프트, 전국 PC방을 장악하다

한국의 e스포츠 발전을 과정을 설명하려면 스타크래프트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상 2010년대 이전까지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역사가 e스포츠의 역사와 같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

1998년 정부주도 IT 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초고속 인터넷이 구축되고 전국에 PC방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오락실, 당구장, 만화방 등이 놀이문화의 집결지였는데, 그 흐름이 PC방으로 바뀐다. 일각에서는 놀이 문화의 중심이 PC방이 된 이유에 대해 IMF 사태 이후 악화된 경제상황 속에서 적은 돈으로 오래 즐길 수 있었던 게 PC방이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환경과 맞물려 혜성처럼 등장한 게임이 있었으니, 그것이 블리자드에서 내놓은 스타크래프트다.

스타크래프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청소년들을 PC방으로 집결시켰고 PC방 사장님을 미소짓게 했다. 이 게임은 대전 게임인 만큼 ‘누가 잘하느냐’가 관심사였는데, 게임 내 승리 포인트인 래더 점수를 통해 실력자를 줄 세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론 아쉬웠다. 동네 최고 실력자를 가르자는 취지로 전국에서 오프라인 PC방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게임 내 유명세를 떨치던 실력자들이 속속 참가했고 유명 플레이어들이 이름을 날렸다.

 
 

방송 생중계 통해 대중화된 스타 리그

방송에서 게임대회를 생중계하며 스타크래프트 대회의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그 첫 번째 방송이 1999년 투니버스에서 시작한 ‘99년 프로게이머 오픈’이다. 그 이후 흥행 가능성을 확인한 타 방송사인 MBC게임도 리그를 시작해 양대 리그를 주축으로 스타리그 판이 만들어졌다.

어떤 종목의 스포츠가 흥행하기 위해선 슈퍼 플레이를 펼치는 ‘스타’ 플레이어가 필요하듯, e스포츠에도 스타 플레이어들이 등장했다. 그 주인공이 ‘테란의 황제’ 임요환, ‘폭풍 저그’ 홍진호, ‘천재 테란’ 이윤열 등이다. 이처럼 팬들이 별명을 붙여줄 만큼 이들의 인기는 아이돌 못지않았는데, 특히 임요환의 경우 기발한 전략 플레이 스타일과 멀끔한 외모 등이 맞물려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인터넷 팬카페 회원 수는 2000년대 중반 62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 숫자는 같은 기간 팬카페 회원 수 1위였던 동방신기(97만명) 바로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었다. 보아(53만명), 신화(45만명)보다 많았다.

이 같은 스타리그의 인기에 힘입어 대기업 삼성이 2002년 스타크래프트 프로팀의 후원을 시작했으며, 이는 e스포츠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기업의 후원을 바탕으로 스타리그에는 개인 리그 외에도 팀 대항전인 프로리그가 출범한다. 리그의 인기는 계속 커졌으며, 이를 증명하는 대표 사건이 바로 ‘광안리 대첩’이라고 불리는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결승전이다.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이 대회장에 약 10만명의 관객이 결승전 경기장을 찾았다. e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는 걸 또 한 번 증명한 셈이다.

2000년대 후반으로 달려가며 e스포츠는 리그의 형태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선수들은 대회에서 매해 발전한 실력을 선보였다. 이 시기부터는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e스포츠 요소가 있는 다른 온라인 게임 종목 대회도 생겨나며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플랫폼의 발전으로 ‘보는 게임’ 훨훨

2012년 이후엔 스타크래프트의 위상을 리그오브레전드가 이어받았다. 스타크래프트로 쌓아온 e스포츠 DNA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또 하나의 스타 플레이어인 이상혁(Faker) 선수를 배출했고 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스타 리그에 이어서 e스포츠 시장을 끌고 갔다.

이때 e스포츠 시장을 다시 한 단계 키울 수 있게 해준 주요 변화가 있는데, 바로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에 따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의 등장이다. 트위치,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의 발전은 시청자들이 보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을 제공했다. 이들 플랫폼은 TV방송만 송출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고, 많은 시청자 수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줬다. 시청 수요가 많아지자 수익 모델이 좋아졌고 산업이 커졌다. 자연히 e스포츠는 진흥시켜야 하는 산업으로 더욱 굳혀졌다. 이런 변화는 아시아 경제 대국인 중국과 북미 유럽지역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전 세계의 e스포츠 시장이 커졌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는 시범종목으로 채택됐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2022년 대회에서 e스포츠는 정식종목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