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던 맨해튼의 동네 레스토랑을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가 바뀐 동네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식료품을 사기 위해 늘 들리던 슈퍼마켓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텅 빈 공간에 ‘임대(Rent)’라는 광고문만 크게 붙어 있었다.

같은 골목을 조금 내려가서 있던 의류매장은 제법 큰 규모였는데, 역시 텅텅 빈 채로 새로운 세입자를 찾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여름이면 곧잘 찾던 아이스크림 가게는 공실이 된 지 오래된 모양으로, 유리창에 이런저런 낙서와 함께 뽀얗게 먼지가 쌓였다.

▲ 이미지투데이

한 번도 물건을 구입한 적은 없었지만 이 지역에서 꽤 오래 영업한 것이 분명했던 잡화점은 28년간의 영업을 접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한때 살았던 동네여서 애착이 있었던 때문인지 변한 모습에 다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주말이면 아기들을 태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부모들과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노부부들을 만날 수 있고 거리를 따라 늘어선 식당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이제는 눈에 띄게 군데군데 빈 점포가 보였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점포는 대형 은행 한 곳뿐이었다. 소매점포들이 공실로 바뀐 현상은 한때 자리가 없어서 입점을 못 하던 맨해튼 5번가까지 유효하다.

부동산 회사 더글러스 엘리먼의 조사에 따르면 맨해튼의 점포 공실률은 20%로, 불과 2년 전인 2016년의 7%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맨해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 중의 하나인 브로드웨이 애비뉴는 대형 점포들이 즐비했는데 이 길을 따라서 있는 공실 점포가 무려 188개나 된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자신의 25년 부동산 중개 경력 동안 이렇게 공실이 많은 것은 처음이라고 울상이다.

1년 내내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불야성을 이루는 타임스퀘어에서 딱 한 골목만 더 들어갔을 뿐인데 셔터를 닫은 점포들이 눈에 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뉴욕 로고가 박힌 티셔츠와 볼펜 등을 팔던 기념품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과거 타임스퀘어가 환락가였던 시절부터 영업을 하던 성인용 비디오를 팔던 점포도 지난 봄부터 문을 닫았다.

문 닫힌 셔터에는 어지럽게 그래피티가 그려져서 우울했던 80년대 뉴욕을 연상케 한다.

한때 맨해튼보다 더 잘나간다던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도 빈 점포들이 눈에 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맨해튼에서 밀려나 자리를 잡았던 윌리엄스버그는 이제 월스트리트에서 억대연봉을 받는 금융가 사람들이 자리 잡았고,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던 작은 카페나 음반점은 모두 문을 닫아 골목에 한두 점포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는 곳도 있다.

브루클린의 다른 지역들도 소규모의 옷가게, 음식점, 커피점 등이 잇달아 문을 닫은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잇단 공실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이 들어오면서 기존 세입자들이 밀려나가는 현상으로 설명하기에는, 맨해튼의 어퍼웨스트나 어퍼이스트에서도 공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물주들이 무조건 높은 렌트를 받기 위해서 기존 임차인들을 몰아낸다고 악덕 건물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건물주들도 장기로 입주할 세입자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환영한다고 반박한다.

이들의 주장은 온라인 쇼핑몰이 발달하면서 점포를 임대하려는 숫자가 일단 줄어들었고, 임대를 하려는 사람들도 10년간의 장기 계약보다는 단기간의 계약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온라인쇼핑으로 구매가 불가능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실이나 네일숍, 음식점, 스파 등이 그나마 남아있는 점포인데, 이들 점포가 무한정 증가할 수는 없으니 건물주들도 고민인 셈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맨해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든 옷이나 생필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강 건너 뉴저지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