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시럽이 뿌려진 막 튀겨낸 따뜻한 도넛.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간식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듯, 출출한 오후에 즐기는 도넛은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그렇지만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도넛은 지방과 당류 함량이 높아 매일 먹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자주 손을 대기에는 망설여지는 탓에 가끔 허용하는 길티 플레져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도를 넓혀 디저트나 간식이 아닌 식사나 술안주로는 어떨까요? 길티 플레져를 위해 기꺼이 먹는 도넛이지만, 식사 대용으로나 술과 함께 먹기에는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다. 도넛은 필요한 순간이 있으면서도, 적절한 상황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와 즐거움을 한 번에 충전해 주는 도넛을 더 자주 먹을 수는 없을까요? 도쿄의 히라카와초에는 도넛의 한계를 넘고 도넛을 일상에 더 가까이 가져온 도넛 가게가 있습니다. 높은 오피스 빌딩 숲 사이, 열대 숲을 옮겨 놓은 듯한 정원을 둔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 이야기입니다. 호커스 포커스는 도넛의 다양화를 통해 도넛의 용도를 넓히고, 도넛의 범위를 확장합니다. 한편 도넛의 고급화를 통해 도넛의 품격을 높이고, 도넛이 주는 기쁨을 배가합니다. 스스로를 ‘도넛 연구소’라고 지칭하는 호커스 포커스에서는 매일 새로운 도넛을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를 제품으로 내놓습니다.

▲ 호커스 포커스 매장 전경 ⓒ최경희

호커스 포커스는 도넛의 소재와 제법을 다양화해 도넛의 경계를 흔듭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도넛은 소맥분에 설탕, 버터, 달걀 등을 혼합하고 기름으로 튀긴 식품입니다. 그러나 호커스 포커스는 도넛의 정의에 도전합니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 콩가루를 사용하기도 하고, 쑥, 참깨, 녹차, 산초 가루 등 동양적인 맛과 향을 내는 재료를 사용합니다. 이런 과감한 재료들은 식사 대용식으로도 손색없는 모찌 도넛을 탄생시킵니다. 또한 럼, 쿠앵트로와 같은 알코올 성분의 재료를 사용한 도넛들은 술과 함께 먹기에도 궁합이 좋습니다. 게다가 제법 또한 튀기는 것에 한정하지 않고, 찌기도 하고 굽기도 해 새로운 식감과 담백한 맛을 구현합니다. 판매하는 모든 도넛에는 사용된 재료와 제법이 적혀 있어 메뉴를 고르는 일부터 재미를 더합니다. 신선한 소재와 제법은 도넛을 재정의하고, 도넛의 역할을 확장합니다.

▲ 호커스 포커스의 다양한 도넛 ⓒ최경희

호커스 포커스는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도넛의 격을 높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미니멀한 인테리어의 널찍한 매장은 물론, 모든 종류의 도넛을 1~3개씩만 유리관 안에 진열해 둡니다. 각 도넛 간의 거리도 일정하게 유지해 도넛이 망가질 일도 없습니다. 고급 시계 전문점이나 보석상점에서 판매하는 고가의 제품들처럼 유리관 속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도넛에서 우아함마저 느껴집니다. 고객이 도넛을 고르면 베이킹 팬 위의 신선한 도넛을 내어줍니다. 여러 개의 도넛을 집적해 두고 판매하는 도넛 가게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테이크아웃을 위한 포장 패키지 또한 도넛의 품격을 높이는 데 한 몫을 합니다. 낱개 포장 시 도넛 형태에 맞춘 투명 케이스에 포장이 가능하고, 여러 개 포장 시 고급스러운 대리석 무늬의 종이 상자에 포장해 줍니다. 대리석 종이 상자는 탑어워즈 아시아(Topawards Asia)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진열 방법과 포장 용기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 호커스 포커스의 포장 패키지 ⓒ최경희

호커스 포커스는 도넛을 먹는 데 빠질 수 없는 커피에서도 또 한 번 영리함을 발휘합니다. 커피는 달콤한 도넛의 맛을 중화해주고, 더 많은 도넛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도넛 연구소인 호커스 포커스가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호커스 포커스는 적당한 커피를 팔기보다는 도쿄의 유명 커피숍인 ‘리틀 냅 커피 스탠드(Little Nap Coffee Stand)’에서 맛있는 커피를 조달합니다. 핵심역량인 도넛은 깊이 파고들되, 핵심역량이 아닌 커피는 정상급의 외부 역량을 레버리지하는 것입니다. 간판이나 메뉴판에서 리틀 냅 커피 스탠드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 리틀 냅 커피 스탠드의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고객들은 양질의 커피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정상급 지위를 확보한 커피와 함께 페어링한 도넛도 정상급으로 여깁니다.

▲ 호커스 포커스의 도넛과 커피 ⓒ최경희

호커스 포커스는 도넛 연구소답게 도넛을 연구하는 자세도 진지하지만,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법도 진보적입니다. 도넛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도넛의 입지를 넓혔고, 세련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과 양질의 페어링은 도넛의 품위를 높였습니다. 그 결과 도넛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도넛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호커스 포커스 도넛의 변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