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가 주말에 지방 일정이 있어 공항에 데려다 준 일이 있었습니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섰음에도 중간에 수산 시장 들러 꽃게를 사느라

시간을 허비해서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내가 그리 급하게 운전하는 편이 아니고,

최근 지방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운전이 좀 서툴렀나 봅니다. 급정거도 하고,출발은 늦게 하고..

마음이 급했을 아내가 공항에 도착하면서 내게 긁는 소리를 했습니다.

‘운전감이 많이 떨어졌네. 힘들면 내게 넘겨도 되어요’

과거에 바로 이런 경우에 내가 아내에게 무리를 많이 했던 생각이 나서,

‘그렇지?’라고 짐짓 쿨하게 대답하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였습니다.

켜둔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 나오는데,

꼭 오래된 엘피판에서 나는 것같이 지지직 음반을 긁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노래를 엘피판으로 들려주어 그러나 했는데,

다음 곡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아내 말에 쿨하게 답은 했지만,

실제 마음은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노래도 긁는 소리로 들리나 하며 실소를 했습니다.

좀 더 있다가 파악했는데, 그 소리는 라디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차 뒤 바닥에 놓은 살아있는 꽃게가

비닐봉투 속에서 움직이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가 신기하게도 음반을 긁는 소리와 똑같이 들렸던 것입니다.

민망해서 정말 한바탕 크게 웃었지요.

뒤에 놓아 둔 꽃게를 잊어먹는 것이나,

아내의 긁는 소리를 마음에 담고 궁시렁 거림도

인생의 가을에 어울리는 해프닝이라 생각되어졌습니다.

 

올림픽 대로를 벗어나 한강변에 차를 대고 커피 한잔을 마셨습니다.

꽃게가 이렇게 살아서 몸으로 전해주는 얘기는

궁시렁 거림으로 나의 속 좁음을 표내는 것을 알게 해준 것 이상인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낡아짐이 찾아온다는 것.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말이죠.

그걸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느낌을 고스란히 아내와 얘기한다면,

헐거워짐을 자연스레 서로 인정하게 되고,

세상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뒤에서 여전히 움직이는 꽃게가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한강으로 보내주고 싶은데,

바다 꽃게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