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혹시 ‘셀리악병’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셀리악병(Celiac Disease)은 소장에서 일어나는 알레르기 질환이다. 장내 영양분 흡수를 막는 밀 단백질인 글루텐(Gluten)에 과민반응이 일어나면서 증세가 나타나는데, ‘HLA-DQ2’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발병이 많다. HLA-DQ2 유전자는 동양인이나 흑인보다 주로 백인에게 많은 편인데,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글루텐 성분이 없는 이른바 ‘글루텐프리(Gluten Free) 식품’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 국내 기술로 개발한 세계 최초 밀 단백질 알레르기 저감 밀 품종인 ‘오프리’의 이삭. 출처=농촌진흥청

2023년 글루텐프리식품시장 65억 달러 육박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글루텐프리식품시장 규모는 최근 5년간 10%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며 40억 달러(한화 약 4조5700억 원)를 넘어섰다. 이 중 미국이 단일국가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유로모니터는 2023년에 관련 시장규모가 65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변형(GMO)이 아닌 인공교배를 통해 주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제거된 밀인 ‘오프리’를 개발해 국내외 특허를 출원한 점은 향후 해외시장 진출에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오프리는 밀 알레르기 유발 주요성분 제거된 국산 밀
오프리(O-free)는 농촌진흥청과 전북대학교, 미국의 농무성과 협업해 개발한 밀 품종이다. 국내 밀 품종인 금강과 올그루의 인공교배로 탄생했다. 연구 분석 결과, 오프리는 오메가-5-글리아딘을 비롯해 셀리악병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저분자 글루테닌과 감마글리아딘, 천식을 유발하는 알파 아밀라아제 인히비터 등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단백질 성분들의 일부가 제거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단백질 분석과 혈청반응 실험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없고, 오프리로 빵과 쿠키를 만들었을 때의 가공적성(가공에 적합한 성질의 정도) 역시 일반 밀 품종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밀연구팀의 강천식 농업연구사는 “오프리는 국내 밀 품종 중에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금강과 수량성이 높고 쓰러짐에 강한 올그루를 인공교배한 품종이다. 인공교배 후 세대가 진전되면서 염색체 내 4종류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단백질 성분이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밀 알레르기 결손 확인과 환자 혈청을 이용한 실험 등은 국립농업과학원과 미국 농무성의 농업연구청, 프랑스 국립농학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 알레르기 면역반응 확인. 알레르기 환자 혈청과 항체를 이용했는데, 금강과 올그루에 비해 오프리에서 알레르기 면역반응이 현저히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농촌진흥청

GMO·화학적 처리가 아닌 국산 밀 품종간의 인공교배…안전성 확보
밀을 주로 먹는 서양인의 5%는 셀리악병 환자이며, 미국 전체 인구(지난해 기준 약 3억2700만 명)의 6%가 밀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때문에 밀 알레르기가 있는 소비자와 환자를 위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없거나 적게 포함된 식품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지만, 대부분 유전자 변형 기술이 적용되거나 화학처리를 통한 알레르기 제거 기술이 주를 이뤄 이에 대해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Non-GMO 국산 밀인 ‘오프리’는 해외시장 진출과 수출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의 송윤찬 변리사는 “국내외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글루텐프리식품에 적합한 기술로, 기존 품종과 차별화된 밀과 밀가루, 가공식품을 생산할 수 있어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용가능성이 우수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밀을 주식으로 하는 국가에 관련기술과 종자 수출이 가능한 만큼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오프리의 제빵 적성은 일반 밀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왼쪽부터 오프리, 금강, 올그루 품종으로 만든 식빵. 출처=농촌진흥청

국내외 특허 출원…수출 ‘기대감’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제거된 세계 최초의 Non-GMO 밀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 농진청은 국내뿐만 아니라 주요 밀 생산국이자 수입국인 미국과 유럽, 중국에 국제특허 출원을 이미 완료했다. 오프리는 일반 밀과의 혼입을 막기 위해 계약재배로 보급할 예정이며, 밀 생산자 단체·밀가루 가공업계와 연계해 전문재배단지가 조성될 계획이다.

다만 오프리가 수량성이 다소 떨어지고(헥타르당 일반 밀 금강은 4.22t, 오프리 3.86t) 병충해 저항성이 낮은 점은 숙제다. 이에 강천식 연구사는 “오프리 품종 개발을 시작으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없으면서 수량성과 병충해 저항성 등의 면에서 우수한 품종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할 계획”이라며 “오프리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재배매뉴얼을 만들어 농가에 보급하는 한편, 산업계와 함께 수출용 환자식이나 영유아식에 맞는 가공제품 개발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