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벨기에 브뤼셀에서 데이터 보호 프라이버시 커미셔너 국제컨퍼런스가 열리는 가운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24일(현지시간) 자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비판해 눈길을 끈다. 명칭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몇몇 테크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상업적 무기로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팀 쿡 CEO의 발언을 두고 "구글과 페이스북 등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 팀 쿡 CEO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유럽연합과 실리콘밸리 전선...애플만 예외?
유럽연합과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지금 전시상태에 돌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연합의 구글 과징금 부과, 이에 따른 구글의 앱 사용료 신설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7월18일 구글을 대상으로 시장 독과점 혐의로 43억4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과징금 규모는 지난해 6월 가격비교 쇼핑 검색 반독점 위반으로 구글에 부과한 24억유로의 두 배에 달한다. 유럽연합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앱스토어인 구글플레이를 사용하기 위해서 구글 제조사들이 크롬과 맵 등 구글 앱과 브라우저를 깔도록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성명을 통해 “구글은 그동안 안드로이드를 검색 엔진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행동은 경쟁업체들의 혁신과 그들과의 경쟁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럽 소비자들이 모바일 분야에서 효율적인 경쟁을 통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를 겨냥하며 글로벌 ICT 업계의 판을 흔들었던 유럽연합이 이번에는 구글을 정조준한 셈이다.

구글도 반격에 나섰다. 미국의 IT 매체 더버지는 20일 구글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하며 "구글이 유럽에 소위 앱 사용료 신설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럽 지역에서 제조사들이 구글 플레이 스토어 등이 포함된 구글의 서비스를 선탑재할 경우 최대 40달러 가량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유럽연합이 구글의 시장 독과점을 지적한 가운데 구글이 앱 사용료 신설을 검토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구글은 유럽연합의 시장 독과점 현상을 일부 수용하면서 현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늘리는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단말기 가격이 필연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리스크는 여전하지만, 여기에는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진입한 이들이 쉽게 플랫폼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다.

유럽연합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과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세금 포탈 문제, 시장 독과점 등의 현안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럽 ICT 업계 장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평가다. 특히 구글의 경우 유럽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정서가 팽배하다.

구글의 유튜브도 유럽에서 수난이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저작권 지침을 통과시키며 유튜브에 소위 링크세와 업로드 필터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유튜브가 강력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국내에서도 감지된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유튜브에 저작권 위반과 관련해 시정 요구를 한 건수는 26만1042건이다. 이는 네이버와 다음, 아프리카TV 등에 시정 요구한 사례와 비교해 66배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 역차별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수치다.

유튜브도 반격에 나섰다. 수잔 보이치키 유튜브 CEO는 22일 유럽연합의 저작권 지침 13조를 비판하며 유럽의회의 유튜브 압박에 대항하고 나섰다. 그는 분기 뉴스레터를 통해 "수 백만 유튜버들의 업로드 능력을 박탈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이 외에도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유럽연합의 강력한 규제 정책에 고전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이 영국 부총리를 지낸 닉 클레그를 글로벌 정책 및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선임한 것도 유럽과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한 결과라는 말이 나온다.

▲ 신형 아이폰이 보인다. 출처=갈무리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유럽연합과 대립을 거듭하는 가운데 유독 애플은 논란의 사각지대에 남아 있다.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유럽연합의 칼날에 맞서는 사이 애플은 상대적으로 원만하게 현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연합이 실리콘밸리 전체 기업을 두고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최소한 운신의 폭은 있다는 평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애플의 샤잠 인수를 승인한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애플이 영국 음악인식 앱 업체 샤잠 인수를 추진하는 가운데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샤잠의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애플이 인수한다고 유럽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시장의 경쟁을 감소시키는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유럽 7개국이 애플의 샤잠 인수를 두고 공정한 시장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유럽연합에 조사를 요청했으나, 유럽연합은 애플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고질적인 세금 탈루 논란도 해결 국면에 돌입했다. 유럽위원회가 2016년 8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애플이 유럽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추징금 134억유로를 부과한 가운데, 애플은 최근 이를 완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애플이 더블 아이리시로 불리는 특유의 세금 절세 기술을 고수하는 한편 유럽연합과 소송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불씨는 남았다는 평가다.

▲ 애플은 특유의 개인정보보호 지침을 가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애플이 개인정보에 단호한, 단호할 수 있는 이유
애플이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과 달리 유럽연합과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팀 쿡 CEO의 24일 발언에 담긴 행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팀 쿡 CEO는 "매일 고객이 클릭하는 선호도와 관련된 데이터가 수십억 달러에 거래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개인정보를 이용해 광고를 파는 사업은 '데이터 산업 콤플렉스'로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팀 쿡 CEO는 테크 기업들을 '데이터산업복합체(Data-Industrial Complex)'로 부르며 거대 군산복합체에 비유하기도 했다.

팀 쿡 CEO는 유럽연합의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극찬하기도 했다. GDPR의 등장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유럽 현지 사업이 일부 제동이 걸리는 가운데, 팀 쿡 CEO만 이를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미국도 GDPR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WSJ는 팀 쿡 CEO의 발언을 두고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으나, 구글과 페이스북 등 개인정보를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들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했다.

애플이 개인정보를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들을 지적한 행간이 중요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애플이 개인정보와 관련해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점이 핵심이라는 평가다.

애플은 2016년 미 연방수사국(FBI)과 소위 백도어 문제로 날을 세운 바 있다. 당시 FBI가 2015년 12월 총기난사사건을 일으킨 테러범의 아이폰 메시지 암호화를 풀려고 애플에 백도어를 요청했으나, 애플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팀 쿡 CEO는 "모든 정보는 보호받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애플의 정신"이라면서 "아이폰 보안 기능을 무력화할 경우 일명 백도어 문제의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밝혔다.

애플의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당시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지지했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적법한 법적 명령에 의거해 사법기관이 정보에 접근할 여지는 있다”면서도 “고객의 기기와 정보를 해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가 요청하는 것은 곤란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인사이자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진이었던 스티븐 시노프스키도 "기술 업계 전체가 애플을 지지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정부감시개혁(RGS)도 성명을 내고 “범죄와 테러에 대한 억제는 매우 중요하지만, 어떤 업체도 자사 기술의 백도어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않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당시 안드루스 안시프 유럽연합 부위원장도 애플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는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보안기능의 뒷문을 만들면 전자투표나 전자금융 신뢰도가 깨진다"면서 "인터넷이 세상 모든 나쁜 일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애플은 자사 개인정보 보호 카테고리까지 공개하며 개인정보보호 방침을 분명히 했다. 애플은 당시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며 “정보 제공 요청을 받으면 먼저 소환장 또는 영장 등 적법한 법률 문서가 함께 제공되었는지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정보들을 요청받는지에 관해서, 법률이 허용하는 한 투명성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모든 요청은 합법적이고 타당한 근거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한 후 특정 수사 대상에 해당하여 법 집행 기관에서 적법하게 획득 가능한 데이터에 대해서만 요청을 수락한다”고 강조했다.

또 “당사의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 내부에 '백도어'를 만드는 일에 대해 어떤 국가의 어느 정부 기관과도 협력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우리 서버에 대한 정부 기관의 어떤 액세스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지난 18일 미국에서 프라이버시 포털을 공개하기도 했다. 고객이 애플 기기를 사용하면서 입력한 개인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포털이다. GDPR에 따라 유럽에서만 가동되던 것이 미국에도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애플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접근방식을 잘 보여준다. 애플은 인공지능을 위한 빅데이터 기술에도 비식별 정보에 집착하는 등, 비슷한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애플이 개인정보보호에 유독 강력한 입장을 고수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로 특유의 하드웨어 플랫폼 비즈니스가 꼽히기도 한다. 애플은 다른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과 달리 개인정보확보에 집중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지만 하드웨어 제품인 아이폰에 iOS라는 사용자 경험을 탑재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며,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개인정보를 취합할 동기는 낮다는 평가다. 물론 애플이 최근 핀테크와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연이어 출시하는 한편 스마트 헬스 시장에 진출하거나 콘텐츠 분야를 강화하면서 개인정보보호를 두고 내적인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애플의 입장은 여전히 개인정보보호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다. 애플이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일부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다.

한편 페이스북도 데이터 보호 프라이버시 커미셔너 국제컨퍼런스에서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미국의 GDPR 도입에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눈길을 끈다. 페이스북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여전히 빅데이터 운용과 관련이 있지만, 초유의 데이터 유출과 해킹 사태로 몸을 사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