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KB48의 후쿠오카 하카타 지역 아이돌 그룹 HKT48의 극장 공연. 출처= AKB48 페이스북, AKS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한류의 인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그만큼 한류를 두려워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일본이다, K-POP이 유입되고 자국의 인기가요 차트를 휩쓰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낀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사회 전반에 ‘혐한’의 분위기를 조성해 한류 확산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국 아티스트들의 뛰어난 역량 그리고 한국문화의 매력에 빠진 일본 젊은 세대들의 폭발적 한류 수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 AKB38을 이끄는 엔터테인먼트기업 AKS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자만’, 한계를 마주하다

문화 영역에 있어 과거의 일본은 한국을 한없이 얕잡아 봤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산업이라는 분야로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들의 품질은 확실히 우리나라의 것을 압도했다. 특히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 주요 방송사들의 황금 시간대(6~7시)를 완전 장악해 어린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외에 비주얼 록 그룹 ‘X-JAPAN’, 남성 아이돌 그룹 ‘아라시’ 등으로 대표되는 J-POP(일본 대중가요), 닌텐도·소니 등으로 대표되는 비디오 게임, ‘건담 프라모델’로 대표되는 취미 문화는 우리나라 젊은 층의 생활에 깊숙이 침투했다.

그러나 일련의 일본 문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문화의 주류 영역보다는 비주류 영역에 머무르며 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내지는 못했다. 또 다분히 일본적 정서가 반영된 내수 지향 문화 콘텐츠들(특히 음악, 영화 부문)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콘텐츠들에게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은 1억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어 내수 위주의 콘텐츠들을 양산해도 충분히 ‘팔리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한 자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한정된 국내 수요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 해외로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 있는 콘텐츠 생산에 몰두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 영역에서 우리가 일본을 앞지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프로듀스48> 그리고 J-POP의 확장 전략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M.net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은 국내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일본의 연예기획사와 합작한 작품이다. 이 방송의 목적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가요 시장을 아우르는 글로벌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는 우리나라의 연예기획사 연습생 48명과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 48명이 참가해 총 12명으로 구성되는 아이돌 그룹이 되기 위한 경쟁을 펼쳤다. <프로듀스48>은 방송 직후부터 인기 프로그램으로 떠오르며 프로그램에 출연한 다수의 연습생들은 개인 팬덤이 생길 정도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 엠넷과 일본 AKS가 합작한 경연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스48>로 탄생한 글로벌 걸그룹 아이즈원. 출처= CJ ENM

최종 경연에서 확정된 12명의 선발 연습생은 ‘아이즈원’이라는 이름의 글로벌 걸그룹 팀으로 결성됐고 이 중 AKB48 그룹의 일본인 멤버는 총 3인이 선발됐다.

<프로듀스48>의 성공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기획 자체가 화제가 된 것과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전까지 소수에 머물렀던 국내 AKB48 팬덤들이 양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인지도가 낮았던 AKB48 멤버들도 국내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으며 일본 아이돌 음악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한국인들도 점점 늘어나는 등 변화가 생겼다.

▲ 프로듀스48에 참가해 국내에 많은 팬들이 생긴 AKB48의 멤버 코지마 마코(小嶋真子). 출처= CJ ENM
▲ 한국 팬들의 요구로 추진됐다가 일본 측의 반대로 좌절된 코지마 마코의 한국 팬미팅. 출처= 코지마 마코 트위터

단적인 예로 AKB48을 포함한 일본의 젊은 연예인들이 실시간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인 쇼룸 라이브(SHOWROOM LIVE)에는 최근 한국인 이용자들이 폭증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멤버들의 한국 활동을 위한 팬덤들의 물밑작업이 전개되면서 실제로 AKB48의 인기 멤버인 코지마 마코(小嶋真子)의 한국 팬미팅이 추진(그러나 끝내는 일본 측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않았다)되기도 했다.

 

AKB48, 그들은 누구인가?

AKB48은 일본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 康)가 기획한 ‘걸 밴드’ 콘셉트의 아이돌 그룹 집단이다. ‘(팬이) 원하면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개념 그리고 가입과 졸업, 총선거 등 독특한 운영 시스템을 앞세워 화제가 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AKB라는 이름은 2005년 그룹이 탄생되면서 라이브 공연을 시작한 전용 극장이 있는 ‘아키하바라’ 지역의 이름에서 따왔다(따라붙는 숫자 48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어떤 상징성도 없는 숫자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일본의 국민 걸그룹 AKB48. 출처=AKB48 페이스북, AKS

AKB48의 인기가 유지되는 독특한 운영의 축은 ‘악수회’와 ‘총선거’다. 악수회는 말 그대로 팬들과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며 대화하는 팬미팅이며, 총선거는 일본과 해외를 포함해 약 600명에 이르는 모든 AKB48 그룹 멤버들의 인기 순위를 매기는 투표다.

AKB48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에게 주어지는 일본 레코드 대상 4회 수상, 일본 엔터테인먼트 그룹 파워랭킹 2년 연속(2011, 2012) 1위에 오른 국민 걸그룹이다. 대표 인기곡으로는 ‘会いたかった(보고싶었어)’,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헤비로테이션)’, ‘恋するフオーチュンクッキー(사랑하는 포춘쿠키)’ 그리고 ‘ハイテンション(하이텐션)’ 등이 있다. 물론 인기가 절정에 이른 2010년대 초와 지금을 비교하면 많이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AKB48은 매년 100만장 이상의 음반을 꾸준하게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여전히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 아키하바라를 시작으로 성장한 AKB48는 일본 각 지역에 ‘분점’ 개념의 자매 그룹을 두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후쿠오카 하카타의 HKT48, 오사카 남바의 NMB48, 니가타현의 NGT48, 나고야 사카에의 SKE48 등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야구 팀 지역 연고 같은 느낌이다.

 

<프로듀스48>를 M.net과 공동 기획한 엔터기업 AKS가 일련의 파급효과를 처음부터 의도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프로듀스48> 이후 AKB48 그룹의 일본 활동을 보면 한국의 팬덤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AKB48이 11월 발매하는 53번째 싱글 앨범에는 <프로듀스48> 최종 경연까지 진출한 모든 멤버들이 구성원으로 포함됐다. 이는 한국 팬들에게 인지도가 있는 멤버들을 의도적으로 앞세운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본 연예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2005년 결성된 이후 약 10년 이상 일본의 음악계를 뒤흔든 국민 아이돌 그룹 AKB48은 젊은 세대들에게 외면받으며 예전만큼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고, 여기에 K-POP 아티스트들의 인기에 밀려 자국 내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프로듀스48>은 AKB48이 일본이 아닌 해외, 특히 팝 음악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팬덤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한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