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한류 열풍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은 경직된 외교 관계, 우익 정권의 장기집권 등으로 지난 몇 년 동안 혐한(한국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젊은 세대까지 확산됐다. 이것으로 전 세계 음반 산업 규모 2위인 일본 시장이 한국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바뀌자 K-POP 그룹들의 행보도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초기 한류의 성공을 이끌었던 드라마의 파급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한류의 부진에는 아시아 지역의 문제와 함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과 SNS로 중심으로 변화하는 글로벌 미디어 업계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류는 이 위기와 격변의 시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이전의 영향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글로벌 미디어 업계의 변화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NETFLIX)의 성장은 영상 콘텐츠의 실시간 스트리밍 플랫폼의 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의 중요성을 대두시켰다. 이에 콘텐츠 기업 월트 디즈니는 713억달러(약 81조원)라는 천문학적 자본을 투입해 20세기폭스 지분을 매입하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을 만드는 마블 스튜디오를 인수해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에 이른다. 완다그룹, 텐센트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대기업들은 헐리웃의 스튜디오들을 인수하며 콘텐츠 부문 역량을 점점 확장했다.

콘텐츠 확산에 있어서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의 성장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SNS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빠른 콘텐츠 공유와 수용자의 빠른 피드백이 이뤄지는 미디어 생태계를 만든 유튜브의 성장은 미디어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한류 콘텐츠들은 외교 장벽의 문제와 업계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전략들을 고심하기에 이른다.

한류 3.0의 특징

새로운 한류가 이전의 한류들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유통 플랫폼의 변화다. 이전 한류의 콘텐츠 유통은 주로 오프라인에 기반한 네트워크에 의존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콘텐츠 유통이 OTT(온라인 송출 동영상 서비스)와 SNS를 중심으로 구조가 변하면서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도 온라인과 모바일이 연결된 플랫폼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싸이, BTS, 소녀시대, 트와이스 등 유명 K-POP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음반의 뮤직비디오가 발매되면 우선 유튜브에 가장 먼저 공개하는 것을 보면 일련의 변화들을 짐작할 수 있다.

트와이스·BTS, 한류 부활의 주역

한류 정체의 벽을 넘어서는 계기는 K-POP 영역에서 나왔다. 대표 주자는 2015년 음악 전문채널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SIXTEEN>으로 탄생한 걸그룹 트와이스(JYP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모든 행보가 콘텐츠 업계의 역사가 되고 있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엔터테인먼트)다.

트와이스는 탄생부터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음악 시장 진출을 목표로 철저하게 기획된 걸그룹이다. 당초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가 <SIXTEEN>으로 선발하기로 한 인원은 총 7명이었다. 여기에 박 프로듀서는 일본인 멤버 1명(모모)과 대만인 멤버 1명(쯔위)을 각각 JYP 스탭과 시청자들의 추천으로 추가해 현재의 트와이스 멤버 9명을 완성했다. 총 9명의 멤버에는 4인의 외국인(일본인 3명, 대만인 1명) 멤버를 포함한 것에도 K-POP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과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고 있다.

트와이스의 일본 진출은 사실 JYP가 의도한 시기보다 조금 더 빨리 이뤄졌는데, 이는 2016년 10월 발표된 트와이스의 곡 ‘TT’의 노래와 안무가 정식 진출 전부터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JYP는 2017년부터 바로 트와이스의 일본 진출을 추진했다. 이후 트와이스는 일본에 진출한 모든 해외 아티스트의 데뷔 연도 흥행기록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전부 갈아엎는 기염을 토한다. 또 일본 진출 첫해인 지난해 트와이스는 일본 가요계의 연중 최고 행사인 NHK <홍백가합전>에 참가하면서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현재의 새로운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는 걸그룹 트와이스. 출처=JYP엔터테인먼트 

JYP는 SNS를 이용하는 젊은 콘텐츠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아티스트와 팬의 원활한 소통을 트와이스의 무기로 앞세운다. 모든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글로벌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려 팬들의 실시간 반응을 확인하는가 하면, V-LIVE라는 실시간 온라인 소통 채널 활용을 멤버들에게 권장하면서 팬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충분하게 갖도록 했다. 일련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트와이스의 친근한 이미지는 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에 트와이스의 TT 뮤직비디오는 지난 9월 한국 걸그룹 최초로 유튜브 조회수 4억뷰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트와이스가 한동안 주춤했던 아시아 지역의 K-POP 열기를 되살렸다면, 방탄소년단(BTS)은 K-POP 한류의 인기를 전 세계로 확장시키며 한류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었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6월 한국에 데뷔한 7인조 보이그룹으로 프로듀서 방시혁의 기획으로 탄생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다. 사실 방탄소년단은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3사(SM·JYP·YG)의 아이돌 그룹들처럼 데뷔 이전부터 생긴 팬덤들의 지원에 힘입어 인기를 얻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멤버 각자가 가진 예술적 역량을 강조함과 더불어 개별 멤버들의 SNS 활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방시혁 프로듀서의 전략은 방탄소년단의 경쟁력이 됐다. 아울러 영어 구사가 자유자재로 가능한 팀의 리더 RM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둔다.

K-POP 인기의 범주를 아시아권에서 전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출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한국인 국적을 가진 가수로는 최초로 미국의 인기가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2곡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면서 방탄소년단은 한류를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로 끌어올린다. 미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방탄소년단은 팝 그룹 최초로 UN(국제연합) 회의에서 평화를 주제로 연설하는 그룹이 된다.

방탄소년단은 서울과 북미, 유럽, 일본 라이브 공연 티켓 모두를 조기 매진시킨 데 이어 한국 아티스트로서 최초로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글로벌 한류를 이끄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새로운 한류는 문화 콘텐츠 외의 영역에도 변화들을 일으켰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공연 이후 뉴욕시 지하철의 안내 시스템에는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안내가 표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의 대학 입학시험 바칼로레아의 외국어 선택 과목에 ‘한국어’를 추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류의 경제학

<한류 파급효과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한류로 인한 생산유발효과는 17조8014억원으로 2016년 대비 약 4% 증가했다. 증가율 측면에서 문화콘텐츠 상품 중에는 방송이 53.1%로 가장 높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남상현 연구원은 “일련의 수치들은 한류가 여러모로 위기를 맞은 2017년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며, 특히 한류 콘텐츠 수출액 1위, 2위 국가인 중국, 일본과의 외교 경직은 한류 확장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면서 “그러나 최근 중국·일본과의 외교 긴장도 지난해와 비교해 많이 풀어진 상태고, 여기에 새로운 한류를 이끄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한류의 영향력을 반영한 경제 효과는 올해에 큰 폭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