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ON 2018 태국의 피날레를 장식한 KPOP 아티스트 14팀의 콘서트 무대. 출처= CJ ENM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과거 우리에게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은 ‘문화 선진국’이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성장을 먼저 이룬 나라들이 생산하는 문화 콘텐츠들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가진 어떤 것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 이러한 일종의 사대주의(事大主義) 관점을 바꾼 기점이 바로 최초의 한류(韓流)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우리의 드라마들은 중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돼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는 해외로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K-POP’으로 명명되는 우리 대중가요의 수출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두 번째 한류다. 그러나 약 10년 이상 이어진 한류의 인기는 콘텐츠 플랫폼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 획일화 콘텐츠 그리고 한류의 주된 수요처인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경직으로 파급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80~90년대 전 세계를 뒤흔든 홍콩영화의 몰락을 예로 들면서 한류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류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멋지게 부활에 성공하며 다시 전 세계를 흔들기 시작했다. 일련의 현상은 ‘새로운 한류’, ‘제3한류’ 혹은 ‘한류 3.0’ 등으로 불리며 경제 파급효과의 요인을 계속 만들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이전과 다른 흐름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이 시대의 새로운 한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후 국내 콘텐츠 산업계가 그려나가야 할 대응 전략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한류 3.0, ‘이전과 다른’ 흐름
SNS로 무한확산, 전 세계를 흔들다

“Korean Wave Makes a Splash Worldwide (한류는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의 한류에 대한 전 세계 미디어와 업계의 찬사는 애써 찾지 않아도 그 파급력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017년 8월 24일 기사에서 ‘Splash Worldwide(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라는 강한 표현을 쓰면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Korean Wave(한류 열풍)’의 영향력에 대해 소개했다.

특히 <파이낸셜타임스>는 한류 문화축제 KCON의 성장을 예로 들면서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에서 개최된 작은 이벤트로 시작한 한국문화 축제 KCON은 이제 뉴욕·LA·도쿄·파리·멕시코시티·아부다비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최될 정도로 성장했으며 수많은 관객들은 자국에서 KCON이 개최되기를 기다린다”면서 이전과 달라진 한류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유튜브(YOUTUBE)에서는 최근 미국의 명문대학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한 경제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교수는 강의에서 “여러분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인재가 되고자 한다면 방탄소년단(BTS)와 같은 트렌드를 알지 못하고서는 (세계 시장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면서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학생들의 태도를 지적했다. 이처럼 최근의 한류가 세우고 있는 여러 가지 성과의 기록들은 전 세계 미디어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화의 흐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가 됐다. 한류는 약 20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류는 이전의 한류와 분명하게 다른, 그리고 더 강한 파급력들이 있고 그것은 수많은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출처= CJ ENM 

<사랑이 뭐길래>로 시작된 한류의 역사

현재의 한류는 큰 흐름에서 세 번째 변화 국면을 맞이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것이 학문적으로 구분하거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한류의 인기를 이끄는 콘텐츠의 종류 그리고 콘텐츠가 유통되는 속성으로 흐름을 구분하고 있다. 첫 번째 한류의 시작에 대해서는 이를 분석하는 이들마다 다른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부분은 1990년대 말 즈음 시작됐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윤재식 연구원의 <국가별 한류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한류의 시발점은 1997년 중국의 관영방송 CCTV에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가 방송된 시점부터다. 당시 중국 내 외국 드라마의 시청률은 보통 1% 내외에 머물렀던 반면 <사랑이 뭐길래>는 시청률 4.3%를 기록하면서 중국에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켰다. <사랑이 뭐길래>가 일으킨 한국 드라마 붐은 이후 <별은 내 가슴에>(1997) 등 여러 한국 드라마들이 중국에 수출되면서 확장됐고 당시 드라마의 주연이었던 배우 안재욱, 차인표, 김희선 등은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 일본 한류열풍의 시작 드라마 <겨울연가>. 출처= KBS

중국에 대한 드라마 수출로 시작된 첫 번째 한류 열풍이 정점을 찍은 계기는 바로 일본 열도를 뒤흔든 드라마 <겨울연가>(2002)다. <겨울연가>는 KBS 윤석호 PD의 <가을동화>(2000)에 이은 두 번째 계절 시리즈(<여름향기>(2003), <봄의 왈츠>(2006)로 완성됐다) 드라마다.

<겨울연가>는 한국에서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중국·홍콩·태국·싱가포르·베트남·말레이시아에 수출되면서 50만달러(약 6억6000만원)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당시 KBS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겨울연가>의 작품 수출만으로 벌어들인 총 부가가치는 134억3000만원으로 기록됐다. 이후 KBS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와 계약을 맺고 한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 수출가격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4400만엔(한화 약 4억4000만원)에 <겨울연가> 20부작을 수출한다. 2003년 4월부터 NHK의 위성방송 BS2채널에서 방송된 겨울연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후 2004년 NHK 지상파 종합채널에서 방송된다. 이후 일본 NHK는 “더빙되지 않은 배우들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일본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2004년 12월 20일부터 BS2에서 한국어 대사에 일본어 자막을 붙인 <겨울연가>를 방송하기도 했다.

BS2에서 방영된 <겨울연가> 최종회의 간토(關東)지역 시청률은 20.6%, 간사이(關西)지역 시청률은 23.8%를 기록했다. 이처럼 높은 시청률은 일본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 주요 언론이 ‘경이적인 일’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2004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겨울연가>는 일본에서만 1년간 1072억엔(약 1조72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 그리고 단일 드라마로는 사상 최고액인 192만달러(약 21억8000억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주연배우 배용준은 ‘욘사마’로 불리며 일본에서 국빈 대접을 받는 스타가 됐고 드라마의 배경인 남이섬은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겨울연가>를 기점으로 아시아 지역에는 수많은 한국 드라마 팬덤들이 생김과 동시에 이후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일본 등 해외에 진출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것이 첫 번째 한류다.

두 번째 한류는 K-POP에서 시작됐다. 첫 번째 한류가 드라마로 국내 아티스트들의 아시아권 국가 엔터테인먼트 시장 진출을 마련한 것에 힘입어 국내 K-POP 그룹들이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한류의 황금기를 이끈 K-POP 아티스트는 2003년 데뷔한 ‘동방신기(SM엔터테인먼트)’ 그리고 2007년 나란히 데뷔한 걸그룹 ‘소녀시대(SM엔터테인먼트)’와 ‘카라(DSP엔터테인먼트)’가 있었다.

▲ 일본에서 일어난 K-POP 걸그룹 열풍의 주역 소녀시대. 출처= SM엔터테인먼트

동방신기는 K-POP 한류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 일본에 진출해 거의 무명가수에 가까운 대접을 받으며 온갖 고생을 겪었으나, 뛰어난 실력으로 관객들을 설득하며 팬들을 늘렸다. 이후 동방신기는 연이은 대표곡들의 성공에 힘입어 입지를 만들며 일본의 가요 차트 상위권을 장악했다. 이후 동방신기는 일본의 최고 인기 가수들도 객석을 다 채우기 어렵다는 일본 5대 돔(도쿄·나고야·오사카·삿포로·후쿠오카)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진기록을 세우며 이후 K-POP 아티스트들이 일본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닦는다.

동방신기 이후 2009년 일본에 첫 진출한 카라는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끈 대표곡 <미스터>가 일본에서 대 히트를 치면서 2012년 한국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일본 최고 인기가수들만이 무대에 선다는 도쿄돔(요미우리 자이언츠 홈구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2010년 일본에 진출한 소녀시대는 현지 가요계의 모든 인기 차트를 휩쓸다시피 하면서 승승장구했다. 2018년 기준으로 소녀시대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이라는 길지 않은 공식 일본 활동기간 동안 음반 판매량 700만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드라마, K-POP이 각각 이끈 두 차례의 흐름으로 정리되는 초기 한류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큰 시장’에서의 눈부신 성공을 발판삼아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 이 시기의 성공은 이후 가수 싸이(PSY)의 인기곡 ‘강남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한류의 위기

2010년대 초반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K-POP 그룹의 활약은 계속됐으나 2015년을 전후로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 문제로 멤버들이 떠난 동방신기, 인기 멤버들의 탈퇴로 팀이 와해된 카라와 소녀시대가 이전과 같은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한류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역사와 영토 문제로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경직된 일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로 대표되는 우익(右翼)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류의 구심점이었던 일본 내 한류도 점점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우익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본의 20~30대 젊은 층에 ‘혐한(嫌韓, 한국과 관련된 것들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면서 한국 콘텐츠들의 일본 입지도 흔들렸다.

여기에 북한의 핵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2017년 우리나라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면서 이를 자국 방위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 중국이 한국 콘텐츠 유통을 제한하는 한한령(限韓令) 등 악재까지 겹친다.

일본이나 중국은 한류 콘텐츠에 대항하는 전략을 짜기 시작하면서 자국 콘텐츠의 강화에 들어갔다. 이러한 흐름에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카라 이후 해외에 진출하는 K-POP 그룹들이 예전처럼 현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한류는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한다.

이러한 한류의 정체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한류 파급효과 연구>에 따르면 2017년 한류로 인한 총 수출액은 82억1000만달러(약 9조3347억원)로 전년 대비 6.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우리나라 총 상품 수출이 15.8% 증가한 것을 고려할 때 한류가 우리나라 수출과 경제 성장에 기여한 정도는 예년에 비해 축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