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ill Alice>에서 저명한 언어학 교수 앨리스는 50세의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자부심으로 평생 쌓아왔던 자신의 지적 역량과 소중했던 기억을 잃어가는 두려운 과정에 있어서, 기억은 사라져도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로 담담히 맞서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변호사 큰 딸과 의사인 아들과 달리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인 연극의 길을 택한 막내딸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로서 반응력과 언어조차 거의 잃어가던 중, 막내딸이 읽어주는 연극 대본을 듣는 동안 희미했던 그녀의 동공이 반짝거린다. 막내딸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반응을 이끌어내려 애쓴다. ‘엄마, 내가 읽은 거 들었어? 무슨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앨리스는 다시 눈의 초점을 잃어버리는 순간까지 힘겹게 입술을 움직여 말한다. “Love….” “응 맞아, Love.”

나이 들어감에 따른 노화를 막을 수 없다. 특히 치매 등 특정 질환을 동반한 투병의 길로 들어선 경우 그 길은 매우 지난한 과정이다. 고령사회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는 돌봄 수요의 급격한 증가일 것이다. 돌봄과 요양에 대한 필요가 늘고 전체 노인의 70%가 평균 2~3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현실 가운데 주기적 관리 및 장기요양에 대한 적절한 공급체계가 요구된다.

돌봄체계는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시대적 요구에 따른 국가의 정책적 과제로 받아들여져 이미 초반 작업이 시작되었다. 취약노인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실시하면서 일정 기준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중증 즉 와상 노인이며 주변의 도움 없이는 대체적 혹은 전적으로 일상생활이 되지 않는 자는 1,2 등급을 부여해 시설기관에 입소가 가능하다. 시설기관이란 가족과 떨어져 대형시설에서 기거하는 요양원 등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는 3,4등급을 부여 받으며, 치매 판정을 받은 자는 5등급, 이후 범위를 확장해 등급 외 분류까지 포함했다. 3급 이상은 시설 대신 재가급여기관에서 케어를 제공하며, 이 경우 주야간보호센터 혹은 자택에 머물면서 방문요양, 방문간호, 방문목욕 등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 비율이 전 인구의 14%가 되었고, 고령이나 질병 등의 사유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보행, 식사, 배변 등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 돌봄이 필요한 인구는 전체 노인의 8.7%다. 이 층은 계속 증가 추세에 있어서 2023년에는 9.7%에 이를 것이며 그에 따른 의료 및 요양복지 비용 또한 막대하다.

때문에 돌봄은 전적으로 가족에게만 부담 지울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이고, 전적으로 시설에 부담시키기에는 본인의 자기결정권과 존엄, 외로움이 제기되는 관계와 비용의 문제이다. 최근에는 탈시설화해 지역사회로 이동하자는 ‘커뮤니티 케어’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들도 제도의 양적 성장이 안정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역사회 중심의 접근을 통해 보건복지체계의 체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다. 대형 시설과 가족 의존적 돌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서비스 제공 체계의 소위 회전문 현상을 지양하기 위해, 돌봄의 사회화라는 개인 생활공간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보건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어차피 걸어가야 할 그 길을 어떻게 만들어 가겠는가다. 젊은 시절 당당하고 생명력 있었던 삶을 회상할 때면 더 이상 그렇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좌절과 무의미함 속에 마지막 날만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무척 많다. <Still Alice>에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딸 앞에서 또렷해지는 앨리스의 눈동자에 시선이 멈춰 섰다. 생명력을 되찾게 되는 그 순간. 하루 중 5분이 되어도 좋다. 오늘의 5분이 내일의 5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5분이 1년 후, 5년 후의 5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생명력 있는 그 순간을 살아가는 앨리스의 삶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감동, 무반응 속의 의미 없어 보이는 긴 시간들은, 짧지만 생명력 있는 그 5분이라는 점과 점으로 인해 서로 연결되어 어느덧 선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혼자 서지 못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순간을 살아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돌봄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보호와 케어에서 나아가 생명력과 만나는 그 순간을 찾아줄 수 있는 노력은 무척 중요하다.

극히 짧더라도 의미가 되는 그 순간을 발견하도록 조성되는 여건은 가족 의존적 환경이든 시설이든 커뮤니티 케어이든 망라해 돌봄을 위해 취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단순한 보호와 케어가 아니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인간에게는 내·외부적 재앙에 대해 극복력(Resilience)이 있다. 치매 노인들의 젊은 시절 직업이나 취미를 살려도 좋겠다. 미용사였던 일본의 치매 할머니는 개호보호사의 네일 손질과 머리 감기기를 하면서 미소를 회복하게 되었다. 인지능력은 손상되었음에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스스로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덕이다. 무감동인 치매 환자의 특성을 뒤로 하고 미소와 활력이 살아나는 순간이며,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세포 속의 자생력을 자극한 결과이다.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과 몸 안의 자생력을 믿고 짧은 순간이라도 의미의 공간으로 초청하는 것은 삶의 자세에 있어 엄청난 차이다. 노화로 인해 신체기능도, 인지능력도 떨어져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때에도 이런 순간이 있기를 갈망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시설 및 공동생활가정으로 구성된 5200여개의 시설급여기관을 비롯해 1만4000여개의 재가급여기관이 포진해 있다. 재가급여기관은 1만1000개의 방문요양기관, 600개의 방문간호 기관, 2400개의 주야간보호기관 등으로 구성된다. 제도적 돌봄체계가 양적 성장으로 달려왔던 지난 10년을 맞는 오늘날 본격적으로 질 관리가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일부 기관의 부패와 비리, 종사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질 낮은 요양서비스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가 이루어지고 외부 인식의 변화와 내부 가치관의 변화가 이어져야 한다. 아울러 보호와 안위에서 나아가 다음 단계로 악화되는 속도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예방 및 재활이 이루어져야 하고, 대상자의 상태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내재된 극복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